반도체 호황 현금 쌓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목
하이닉스 올해 채권 60조원 매입설…크레딧 '큰손'
매수 줄이자 공사채 금리도 흔들…시장 영향력 확인
美 10년물 5% 돌파…큰손도 평가손실 부담
데이터 제공: 코스콤CHECK[파이낸셜뉴스] 국공채와 은행채 등 우량채 공급이 쏟아지면서 국내 채권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쌓인 대규모 현금이 채권 공급을 받아줄 새로운 수요처로 주목받고 있지만,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이들 기업 역시 채권 투자를 무한정 확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6일 코스콤CHECK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국내 채권 잔액은 3186조9730억원으로 지난해 말 3093조421억원보다 93조원 넘게 증가했다. 2020년 말 2326조7792억원과 비교하면 5년여 만에 약 860조원, 37% 불어난 규모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늘어난 채권 물량을 누가 받아줄지가 시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국채와 은행채, 공사채 등 초우량물이 대거 공급되면 여전채와 일반 회사채 등 크레딧 시장의 수급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한정된 기관 자금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아진 우량채로 이동하면서 여전채와 회사채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현재 상황을 신용경색보다는 발행물량이 투자수요를 웃도는 수급 불균형으로 보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지금 채권을 아무도 사지 않는 신용경색 상황은 아니다"라며 "문제는 사려는 돈보다 발행하려는 물량이 많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채나 공사채가 높은 금리로 발행되면 결국 일반 회사채까지 스프레드 확대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시장의 시선은 AI 반도체 호황으로 대규모 현금을 확보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향하고 있다. 기존 은행·보험·연기금·자산운용사 등에 더해 기업의 유휴자금이 채권시장의 새로운 수요 기반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반도체 기업의 자금은 이미 채권 수급을 떠받친 것으로 분석된다. KB증권은 올해 6~8월 은행채 순발행 과정에서 반도체 기업의 여유자금이 유입되면서 수요를 보완해 공급에 따른 시장 부담을 낮춘 것으로 분석했다. 향후 채권시장의 주요 모니터링 변수로도 '반도체 대기업 자금의 유입 시기'를 꼽았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채권시장의 주요 매수 주체로 떠올랐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해 들어 여전채와 공사채 등 크레딧물을 중심으로 사들인 채권이 60조원 안팎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금투업계에서 올해 들어 하이닉스가 채권을 60조원 정도 샀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정확한 규모는 회사가 밝히고 있지 않지만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채권시장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은 매수세가 주춤하면서 오히려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SK하이닉스가 신규 채권 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전채를 비롯한 일부 공사채가 민평금리를 웃도는 수준에서 발행되는 등 크레딧 시장의 투자심리가 흔들렸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주로 여전채나 공사채를 많이 사줬는데 이 수요가 빠지면 스프레드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하이닉스가 없었다면 시장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공급물량을 받아주는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머니'가 채권시장의 공급 부담을 계속 떠받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금리가 다시 빠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14일 장중 5.014%까지 치솟았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올린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향후 3.25%를 거쳐 내년 상반기 3.50%까지 추가 인상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금리가 오르면 기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높은 금리로 새 채권을 매입하면 이자수익을 높일 수 있지만 이미 보유한 채권에서는 평가가치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투자 규모가 수십조원에 이르면 작은 금리 변동에도 포트폴리오의 평가가치 변동폭이 커질 수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채권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규모 신규 수요자가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이들 역시 금리 상승 위험을 감수하면서 시장의 공급물량을 무한정 받아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