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운임 폭등에 원유 가동률 최대 12% 감축 우려
디젤가에 중간선거 비상…‘자율 자제’ 대안 타진미국 행정부가 치솟는 내수 기름값을 잡기 위해 ‘경유(디젤) 수출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디젤 수출이 막혀 재고가 쌓이게 될 경우, 미국 정유업체들이 원유 처리량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이 반영된 결과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간의 가격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WTI 선물 가격은 브렌트유 대비 배럴당 최대 12.02달러나 낮게 거래됐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이는 지난 5월 6일 이후 가장 큰 할인 폭이다.
WTI 가격이 브렌트유보다 저렴해질 경우, 해외 트레이더들이 차익 거래를 노리고 미국산 원유를 대량 매수해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해운 운임이 폭등하면서 이 같은 공식이 깨졌다. 현재 이란과의 전쟁으로 미 걸프만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운임은 전쟁 전 1600만달러에서 현재 5000만달러 수준까지 3배 이상 뛰어올랐다.
운임 상승 탓에 이달 기준 3개월 평균 원유 수출량은 지난 2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석유 거래업체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는 비싼 운임 때문에 해외 시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켄지는 보고서를 통해 “디젤 수출이 전면 금지될 경우 일일 70만배럴에 달하는 과잉 공급물량이 재고로 전환되고, 주요 저장 거점은 한 달 이내에 가득 찰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재고를 줄이기 위해 정유업계가 원유 처리량을 하루 200만배럴 이상 줄여야 할 것”이라면서 “이는 현재 미 정유사 전체 가동률의 12%를 감축하는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최대 디젤 수출국으로, 일일 생산량 510만배럴 중 약 120만배럴을 순수출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은 러시아가 자체 디젤 수출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수출 중단은 글로벌 디젤 대란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실제 디젤 수출 금지가 시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디젤 수출 금지론이 힘을 받는 배경에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국내 디젤 가격이 있다. 디젤 가격은 트럭 운송과 농업 비용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유가가 식료품과 물류비 등 전반적인 물가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의 평균 경유 가격은 상승 흐름을 지속해 왔다. 지난 17일에는 갤런당 6.40달러로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경유 가격이 계속 오르면 트럭 운송을 비롯한 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생산비용 증가를 초래해 광범위한 물가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11월 미국 중산 선거 표심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 제한은 단기적으로 미국 내 공급이 늘어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 업계와 일부 경제·시장 분석가들은 수출 제한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정유업체의 생산·수출 구조가 바뀌면서 국제 시장의 디젤 공급이 줄고, 유럽 등 해외 가격이 상승할 경우 미국에도 비용 상승 압력이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수출 금지로 기름값을 잡기는 어렵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최근 정유업계 경영진과 접촉해 ‘자율적 수출 자제’를 당부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주유소 경유가격 안내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