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땅 안 팔리고 장바구니 비고 청년 떠난다"…추석에 터진 지역민심

요약

고물가 여파로 추석 명절 소비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농촌에서는 고령 농민들이 팔리지 않는 농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는 등 지역 사회의 깊은 시름이 이어지고 있다.

고물가에 명절 소비 줄고 농촌은 농지 처분 막막…청년은 수도권 일자리 바라봐 추석을 앞둔 17일 서울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2026.9.17 /사진=뉴스1 추석을 앞둔 17일 서울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2026.9.17 /사진=뉴스1

"추석 특수는 옛말입니다. 온기가 사라졌어요." 이른바 '대목'인 추석 명절이 지났지만, 전국 각 지역에서 만난 시민과 상인, 농민, 취업준비생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고물가에 명절 소비는 눈에 띄게 줄고, 농촌에서는 농지를 팔고 싶어도 팔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일자리 고민이 깊은 지역 청년은 여전히 수도권만 바라봤다.

27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추석을 전후해 대전과 경기 평택의 전통시장에서는 손님이 찾아와도 필요한 만큼만 사가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강원 횡성에서는 고령 농민들이 농지를 처분하지 못하는 현실을 호소했으며, 전북 군산에서는 지역에 남고 싶지만 일자리 때문에 수도권 기업에 지원한다는 청년의 목소리가 나왔다.

■배추 한 포기 9000원, 굳게 닫힌 지갑
대전 전통시장에서는 추석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데 신중했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이 9000원을 넘나드는 등 장바구니 부담이 커진 데다 차례상과 명절 음식을 간소하게 준비하는 가정까지 늘었다.

추석 연휴 첫날인 25일 대전 동구 용운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배추 세 포기가 2만8000원에 이를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고 했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물건을 한참 살펴보다 돌아가거나 필요한 양만 조금씩 구매했다.

이 상인은 "배추 세 포기에 2만8000원씩 할 정도로 물가가 턱없이 오른 데다 요새는 명절 음식을 크게 차리지 않는 문화까지 더해져 시장 온기가 싹 가라앉았다"며 "물건을 둘러만 보고 선뜻 지갑을 열지 않으니 '대목 특수'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라고 토로했다.

추석을 하루 앞둔 24일 경기도 평택 통복시장의 전집 앞에는 갓 부쳐낸 전을 사려는 손님들이 줄을 섰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시장 골목을 채웠다. 그런 상인들이 체감하는 씀씀이는 과거와 달랐다.

손님들은 예전처럼 장바구니를 넉넉하게 채우기보다 먹을 만큼만 골라 샀다.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는 가정이 늘고 핵가족화까지 이어지면서 명절 음식 자체를 준비하는 양이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얘기다.

전집을 운영하는 A씨(55·여)는 "예전에는 명절이면 한꺼번에 많이들 사 가셨는데 요즘은 먹을 만큼만 조금씩 사 간다"며 "명절 때라도 좀 벌어야 하는데 갈수록 손님들이 지갑을 더 닫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는 계속 오르고 사 가는 건 줄고,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는 물가 부담에 지방재정을 둘러싼 걱정까지 더해졌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사실상 부도', '재정 위기' 등을 언급한 데 이어 추석 전 추가경정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면서 도민들 사이에서도 돈 걱정이 화제로 올랐다.

초·중학생 자녀를 둔 일부 학부모 사이에서는 10월부터 학교 급식비 등의 지급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명절 장바구니 물가는 뛰었지만 월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추석 장보기에 나선 송현주씨(47·여)는 "이번 추석은 모든 걸 작은 것으로만 사게 된다"며 "송편도 작은 것, 모둠전도 작은 것을 골랐는데도 나가는 돈은 작년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명절을 앞두고 기분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 점이 가장 아쉽다"며 이란 전쟁이 끝나 기름값이 내리고 주식시장도 오르는 등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에 위치한 남광주시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매년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단골 가게에서 죽상어 구이를 사는 데, 지난해 한 마리에 5만원 했던 게 올해는 6만원으로 1만원이나 올랐다"면서 "말로만 듣던 '고물가'를 실감했다"라고 전했다.

반면 건어물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손님이 뜸한 데다, 도맷값이 올라 팔아도 남는 게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특별시민들은 또 전남광주 행정통합에 대해선 "현재로선 무엇이 달라진 지 모르겠다"면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통합특별시로서 인공지능·에너지·문화수도로 발전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대해선 "부지 문제가 큰 진척을 보인 만큼 용수 및 전력 공급도 차질 없이 추진돼 오는 2030년 첫 양산이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한 목소릴 냈다.

농지 전수조사에 대해선 "정부에서 고령농과 임차농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농촌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면서 "농지 가격 하락 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팔고 싶어도 못파는 농지
강원 농촌에서는 물가보다 당장 농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땅을 처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고령농들의 답답함이 컸다.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횡성 주민 70대 한모씨는 "투기만 골라내겠다고 하는데 시골 농지를 사서 어떻게 수익을 냈다는 건지 구체적인 사례는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며 "경기도처럼 대도시 주변이라면 모를까 인구가 빠르게 줄어 아무도 관심 없는 강원도 시골 땅에 어느 투기꾼이 돈을 넣어 수익을 내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씨는 전국적인 농지 조사를 두고 "투기를 잡겠다며 매번 전국을 한꺼번에 뒤지는 건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고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농촌에서 당장 부딪히는 문제는 투기보다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는 농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고령농에게 농지는 재산인 동시에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일거리이기도 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농사를 그만두려 해도 땅을 살 사람이 없으면 농지를 계속 떠안아야 한다.

한씨는 "시골에는 몸이 힘들어 더는 농사를 못 짓는 60대 이상 고령농이 대부분인데 땅값이 떨어져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다"며 "정부는 농지은행에 맡기거나 팔면 된다고 하지만 강원도 농지은행에는 이미 접수된 농지가 산더미이고 돈도 없어 언제 사줄지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실정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전수조사가 농촌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북 군산에서는 일자리가 청년들의 명절 고민거리였다. 고향에 남으면 주거비를 비롯한 생활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취업할 만한 기업을 찾다 보면 결국 수도권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취업 고민에... 반갑지 않은 추석
군산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이모씨(30)는 "추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명절이면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데 내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웃었다. 대기업과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도권 기업에도 지원한다고 했다.

이씨는 "여기 있으면 집이나 지역사회 적응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많이 해결되니 남고 싶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여전히 수도권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청년을 지역에 정착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알지만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기는 사업은 듣지 못했다"며 "취업 준비생에게는 좋은 일자리가 가장 우선"이라고 했다.

추석 하루 전인 지난 24일 전통시장인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이 문이 잠김 개방 화장실 앞에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사진=최수상 기자 추석 하루 전인 지난 24일 전통시장인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이 문이 잠김 개방 화장실 앞에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사진=최수상 기자
■추석 때 폐쇄한 개방형 화장실
반면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서는 제사와 이바지 음식을 파는 점포 앞에는 하루 종일 긴 줄이 이어졌다. 명절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기보다 완성된 음식을 사는 가정이 늘면서 전과 동그랑땡, 튀김 등을 파는 점포로 손님이 몰렸다.

일반 음식점 가운데 몇몇은 수년 전부터 설과 추석이면 평소 메뉴 대신 명절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 명절 음식을 판매했다는 한 한식당 사장은 "주로 전과 동그랑땡, 튀김 종류를 부쳐서 팔아왔는데 매년 판매가 늘어 올해는 사람을 두 명 더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한 보리밥집에는 추석 전 쉬는 날이 하루뿐인 탓에 손님이 한꺼번에 몰렸고 준비한 음식이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동났다. 사장은 "추석 전 노는 날이 하루뿐이다 보니 한꺼번에 많은 손님이 몰려 점심때가 끝나기도 전에 음식을 다 팔았다"고 웃었다.

다만 이 주인은 곧바로 "명절 때를 제외하면 손님은 예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몰린 신정시장에서는 뜻밖의 불편도 발생했다. 시장 내 개방화장실 2곳 가운데 신정시장 상인회가 관리하는 한 곳이 폐쇄돼 시민들이 이용하지 못했다.

울산 남구청 당직실 관계자는 "수차례 상인회에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폐쇄 이유와 개방 여부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시장 상인들은 화장실이 막혀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심리 회복에도 건설경기 '뚝↓'
제주에서는 소비심리가 한 달 만에 기준선 100을 회복했지만 추석 연휴 현장에서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보험업을 하는 전만호씨(53)는 "사람들을 만나면 경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보다 돈 쓰기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며 "보험도 가계에 여유가 있어야 새로 가입하거나 보장을 늘릴 수 있는데 지금은 새로운 지출을 만들기보다 기존 지출부터 살피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건설·개발과 연결된 업종에서는 소비보다 '다음 일감'에 시선이 쏠렸다. 제주지역 공사업체 청암기업 김재홍 이사(57)는 "건설경기가 어렵다"며 현장에서 체감하는 경기 상황을 전했다. 김 이사는 "예전보다 신규 수주가 쉽지 않고 공사를 따내더라도 자재비와 인건비, 금융비용까지 고려하면 수익성을 낙관하기 어렵다"며 "지금 하는 공사를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들어올 일감이 얼마나 이어질지가 더 걱정된다"고 했다.

공사업은 수주 이후 자재와 인력, 장비 등에 먼저 비용을 투입한 뒤 공사 진행에 따라 대금을 회수하는 구조여서 신규 수주와 공사원가, 자금 흐름이 경영상 중요한 변수다. 건설·토목 신규 사업 감소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시공업체뿐 아니라 전기·통신 등 관련 공사업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환경 관련 엔지니어링업체 ㈜산들엔에서 환경영향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양승철 이사(53)도 앞으로의 일감을 걱정했다. 그는 "주택건설 경기가 꺾인 이후 신규 계약 건이 눈에 띄게 줄었고 주변에서도 일감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토목 신규 사업이 생겨야 설계용역이나 환경영향평가 분야도 일감이 만들어진다"며 "지금 진행하는 사업보다 앞으로 새로운 사업이 얼마나 생길지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