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경쟁 핵심...약국 '입지 경쟁력' 흔들려
정부가 비대면진료와 처방의약품 배송 확대를 추진하면서 소비자단체와 플랫폼 업계는 찬성, 약사단체는 반대로 각을 세우고 있다. 양측 모두 '국민건강'을 내세우면서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과 약배송 안전성을 우려하는 입장으로 갈린다.약사 단체의 입장을 더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약국은 병원 옆이라는 입지를 기반으로 환자를 확보해왔다. 약 배송이 열리면 이 구조가 흔들린다. 환자가 약국을 고르는 경로가 바뀌고, 상권 단위로 나뉘어 있던 경쟁이 온라인으로 넓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의 아마존 사례와 같이 유통권을 플랫폼 업체가 쥐게 되면 약국이 수수료·광고비를 떠안는 '플랫폼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접근성 높이자는 정부, 안전성 우려 약사회
정부는 지난달 20일 일부 취약계층 등으로 제한된 비대면진료 처방약 배송 대상을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로 확대하는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2월24일 비대면진료 제도 시행을 앞두고 추가 법 개정과 함께 의약품 품질관리·복약지도·수령 확인 등 안전성 확보 방안도 검토한다는 구상이다.
약사단체는 곧바로 맞섰다. 배송 중 의약품 변질과 복약지도 부실 등을 우려하며, 제한적 배송을 허용한 제도를 먼저 시행하고 평가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9일에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20일 전국 약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찬성 쪽 목소리도 있다. 환자·소비자단체 일부는 비대면으로 진료받고도 약을 받으러 이동해야 한다면 접근성 개선에 한계가 있다며 확대를 요구한다. 플랫폼 업계도 지난 21일 지역약국 중심의 배송체계와 안전기준을 함께 설계하자며 약사회에 민관협의체 참여를 요청했다. 하지만 약사회는 확대를 전제로 한 협의체에는 참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온라인 경쟁…약국도 셈법 달라진다
명분 공방의 이면을 보려면 약국이라는 사업의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산업적으로 약 배송은 약국의 고객 확보 방식을 바꾸는 변수다. 약국이 배송에 민감한 것은 약사 면허를 기반으로 진입이 제한되는 데다, 입지와 지역 상권이 영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어서다.
처방약 조제 비중이 높은 약국은 인근 병원에서 나오는 환자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자리에서 기대하는 수익은 임대료와 권리금에도 반영된다. 이른바 '자릿세'를 치르고 좋은 입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배송이 가능해지면 이 같은 입지 경쟁력도 희석된다. 약 배송이 도입되면 환자는 거리 외에 의약품 재고나 배송 시간, 상담 편의 등을 따져 약국을 고를 수 있다. 병원 앞이라는 이유로 확보하던 처방전이 다른 약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뜻이다. 높은 입지 비용을 치른 약국일수록 배송 확대에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약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약국은 좋은 목을 잡으면 매출이 유지되는 구조여서 안정성이 높았지만, 약 배송으로 온라인까지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을 약사분들이 우려하는 것 같다"며 "약국은 환자가 조제약을 받아가며 건강기능식품 등을 함께 사는 단골 장사이기도 한데, 비대면화로 이런 매출이 줄어들 것도 걱정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규제 완화가 약값을 끌어내린 사례도 있다. 2012년 편의점 안전상비약 판매가 허용된 뒤 약국 밖에 판매처가 생기면서다. 김지형 성균관대 경제학과 박사는 논문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제도 도입에 따른 경쟁효과'에서 약국 한 곳당 판매업소가 하나 늘 때 상비약 가격이 1.1~2.6%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아마존 사례, 약사들 경쟁심화 우려
약사단체가 말하는 '플랫폼 종속'도 약국의 비용을 늘리고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변수로 지목된다. 플랫폼 이용료나 광고비가 새로운 영업 비용으로 등장할 수 있어서다. 기존 임대료와 인건비에 온라인 고객 확보 비용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실제 약 배송이 시행 중인 미국에서는 아마존 같은 대형 플랫폼이 이미 약국 시장에 들어와 있다. 아마존은 2020년 처방약을 집으로 배송하는 '아마존 파머시'를 선보였고, 당시 CVS·월그린 등 기존 약국 체인이 위협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내 약사들이 경쟁 심화를 우려하는 것도 이런 선례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서울 공덕동의 40대 약사는 경쟁 심화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했다. 그는 "약사가 된 이후 배출 인원이 늘면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졌다"며 "힘들게 약국을 개업했는데 약 배송까지 시작되면 경쟁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