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2학기 개강을 앞둔 서울의 한 대학교 앞 부동산 중개업소에 원룸 월세가 표시돼있다. 연합뉴스개강철 대학가에서 여성 자취생들이 범죄 불안 탓에 더 비싼 월세를 감수하는 ‘치안 프리미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물가와 월세 상승 속에서도 CCTV와 공동현관 출입장치 등 방범 시설을 갖춘 집을 찾다 보니 선택지가 줄고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27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는 김모(26) 씨는 당초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80만 원대 투룸을 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혼자 살려면 무조건 치안이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만류하면서 계획을 바꿨다. 김 씨는 “CCTV나 공동현관 보안이 잘돼 있고 귀갓길도 안전한 곳을 찾다 보니 월세가 100만 원을 넘는 집밖에 남지 않았다”며 “월세 부담 때문에 아예 자취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에 재학 중인 이모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씨는 “남자 동기들은 골목 안쪽에 있거나 오래된 건물이라도 가격이 싸면 일단 보러 가는데, 나는 밤에 혼자 다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집은 처음부터 제외하게 된다”며 “무섭지만 않았어도 더 싼 오피스텔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한 신림동 대신 비용을 더 부담하더라도 서울대입구역 일대에서 방을 구하려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화여대 앞에서 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60대 후반 김모 씨는 “딸 손을 잡고 방을 보러 온 부모들이 가장 먼저 묻는 건 딱 두 가지, 안전과 가격”이라며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부모들은 대부분 계약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딸이 혼자 살 집이다 보니 CCTV나 공동현관 출입장치가 있는지, 밤늦게 다녀도 괜찮은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대학가 월세 부담은 이미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이화여대 인근 원룸의 평균 월세는 76만7000원으로 서울 주요 10개 대학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10개 대학가 평균인 62만5000원보다 22.7% 비싼 수준이다. 이화여대 인근에 신축 오피스텔이 상대적으로 많고 입지 차이도 월세에 영향을 미치지만, 현장에서는 여성 세입자들의 보안시설 선호도 가격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화여대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오늘만 해도 여학생 손님을 3명 받았는데 대부분 가장 먼저 묻는 게 공동현관 보안이나 CCTV 설치 여부였다”며 “조금 낡고 싼 집보다 월세가 비싸더라도 신축이나 보안이 갖춰진 곳을 고르는 경우가 많아 여성 세입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안전 비용을 추가로 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가 중개업소 관계자도 “같은 가격대라면 여성들은 큰길과 가까운지, 건물 입구가 외부에 노출돼 있는지 등을 훨씬 꼼꼼하게 본다”며 “조건을 하나씩 따지다 보면 결국 더 비싼 매물만 남는다”고 했다.
문제는 추가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서 범죄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내세우는 방범시설 상당수가 CCTV와 공동현관 출입장치 정도에 그치는 데다, 건물 밖 귀갓길이나 골목길까지 안전을 보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 자취생들은 치솟은 월세에 더해 범죄 불안을 줄이기 위한 비용까지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