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말
시끌벅적하게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언제나 '말'이 있습니다. 명절이라 반가운 마음에 건넨 한마디가 비수가 되기도 하고, 관계를 망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피하고 어떤 말을 나눠야 할까요. 한가위의 말을 고민합니다.
시부모님은 옛날 사람이긴 해도, 나쁜 분들은 아니다. 10년을 이어온 결혼생활 동안 음식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언제 아이를 낳을 거냐 채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명절에 시댁을 다녀오면 마음 한편에 외로움이 생겼다."막내야."
시댁에서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삼남매 중 막내이니 자연스럽게 나도 '막내'가 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감도 나쁘지 않았다. 막내라니, 어딘가 귀엽고 다정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 후 잃게 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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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후 남편의 가족 내 위치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호칭이 생겼다. |
| ⓒ 픽사베이 |
해가 거듭될수록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막내가 아닌데 결혼 후 시댁이 생기자 막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가족 안에서 차지한 위치 때문에 생긴 이름이 아니라, '막내아들의 아내'라서 막내가 된 셈이다. 남편의 가족 내 위치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생긴 호칭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대부분 어디서나 내 이름으로 불렸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드라마를 쓰는 지금도 그렇다. 원고의 첫 장에도, 방송의 엔딩 크레디트에도 내 이름이 그대로 올라간다. 그 이름으로 커리어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댁에 가면 그 이름이 사라진다. 시부모님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거의 묻지 않는다. 요즘 무엇을 쓰는지, 새로 시작한 작품은 있는지, 일이 잘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은 쉽게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집필을 마친다고 모두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편성이 확정된 드라마도 하루아침에 무산되기도 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 봐 일부러 묻지 않는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에게도 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나의 일에 대해 별로 궁금한 게 없어 묻지 않는다는 걸. 그걸 처음 선명하게 느낀 것은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을 때였다.
사업하는 남편에게 쏟아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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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부모님은 사업하는 남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
| ⓒ jess33mx on Unsplash |
시부모님은 남편의 사업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잘되고 있는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남편의 일로 이어졌고, 질문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말이 돌아왔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니 '막내(나)'가 옆에서 잘 북돋워 주고 내조 잘하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외로움의 이유를 알게 됐다.
비슷한 기분을 느낀 일은 또 있다. 시누이는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틈틈이 시험공부해서 공무원이 됐다. 나 역시 그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이 하나를 돌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넷을 키우면서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했다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시부모님 역시 딸의 그 과정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어떻게 공부했는지 묻고, 합격한 게 얼마나 기특한지 하나하나 정확히 칭찬했다. 나도 맞장구를 치며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서운함이 일렁였다. 예전에 내 드라마가 방영했을 때가 떠올라서다. 마음 졸이며 첫 방송을 챙겨보던 나와는 달리, 시부모님은 TV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과연, 우리 부모님이었다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해 명절, 집필 마감 일정이 겹쳐 밤을 새워서 대본을 쓰다가 겨우 내려갔다. 그때 시부모님이 퀭한 내 얼굴을 보고 한 말은 "고생 많았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했다. 건강을 걱정해서 하는 염려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일을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렇게까지 해서 그 일을 하는 이유가, 그 일이 왜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으면 어땠을까. 조금은 덜 서운하지 않았을까.
결국 남편과 이 문제로 다퉜다. 시댁만 가면, 내가 그동안 이룬 크고 작은 모든 성취가 하찮게 느껴진다고. 나라는 사람이 너무 희미하고 작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겉으로는 다정한 부모님이기에 남편은 내 기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반발했다. 내가 예민한 거라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 감정이 맞다고,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자기 부모님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원래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나쁜 의도는 없었을 거라고 해 크게 낙담했다. 결국 나는 당신들의 며느리일 뿐이라서, 가족이 아니라서, 내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말처럼 들렸다.
서로를 궁금해하는 관계였으면
생각해 보면 내가 바랐던 것은 거창한 인정이 아니었다. 내 직업을 대단하게 여겨 달라는 것도, 내가 쓴 작품을 모두 찾아봐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이해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무엇 때문에 바쁜지, 어떤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 궁금해해 주길 바란 것뿐이다.
그저 '막내'라는 호칭이 싫었던 게 아니다. 이 가족 안에서 '막내'라는 역할로만 존재하는 게 싫었던 거다. 나는 아내이고 며느리이지만, 누군가의 친구이고 동료이고,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뭐가 재미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되고 있는지. 속상한 일은 없는지. 무엇을 잘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남편의 아내이자, 당신들의 며느리인 나를. 하지만, 이번엔 그 호칭 뒤에 있는 '나'라는 사람까지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친정에서는 남편을 '사위'가 아닌 'OO아' 하고 이름으로 부른다. 호칭 덕분인지, 남편은 우리 부모님 앞에서도 남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리기도 하고, 말대꾸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꿈꿔본다. 나도 시부모님께 일이 잘 풀릴 땐 자랑도 하고, 안 풀릴 땐 푸념도 하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그런 날을. 벌써 결혼 10년 차인 지금도, 아직은 요원해 보이지만 말이다. 그날이 온다면, 시부모님의 명절 인사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내 이름 두 글자를 다정하게 불러주는 인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