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발전속도라면 미래 전쟁터에 터미네이터가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최근 중국에서 이미 인간형 로봇들이 격투기 케이지에 올라 주먹과 발차기를 주고받고, 상대 로봇의 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격렬하게 싸우는 대회까지 열렸다. 영화 ‘터미네이터’ 속 로봇전쟁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속도지만, 정작 미래의 실제 전장에서는 두 발로 뛰며 총을 쏘는 인간형 로봇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국방·안보 전문 유튜브 채널 ‘KFNplus’의 ‘밀사친 탐구생활’에 출연한 최홍섭 마음AI 대표는 군사용 피지컬 AI와 로봇 기술의 전력화 가능성을 분석하며 인간형 전투로봇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은 익숙한 형태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험준한 산악지형을 오르거나 포탄을 피해 엎드리고, 좁은 참호와 건물 사이를 이동하고, 순간적으로 엄폐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굳이 사람의 몸을 그대로 복제한 구조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사람 모양 로봇이 총을 들고 터미네이터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전장 환경에서는 그리 효율적인 로봇은 아니다”며 “무인화가 진행되더라도 반드시 총을 들고 다니는 휴머노이드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휴머노이드는 기존 무기체계와 미래 무인체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운용 중인 전차와 차량, 각종 무기체계는 대부분 사람이 조종석에 앉아 핸들과 레버를 움직이고 버튼을 누르는 것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모든 장비를 한꺼번에 완전 무인체계로 교체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존 운전석에 사람의 상체를 닮은 로봇을 앉혀 차량을 운전하고 버튼을 조작하도록 하는 방식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를 로봇이 그대로 조작하게 하는 것이다.
피지컬 AI의 발전은 로봇의 가격도 크게 낮출 가능성이 있다. 과거 산업용 로봇은 관절 하나하나를 극도로 정밀하게 제어해야 해 고성능 모터와 센서가 필요했다. 장비 가격이 수억원에 달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AI가 수많은 동작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람이 물건을 집을 때 손가락 관절 각도를 하나씩 계산하지 않는 것처럼 로봇도 경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필요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정밀도가 낮고 값싼 부품을 사용해도 임무 수행이 가능해져 군사용 로봇의 대량 보급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문제는 AI 자체가 새로운 공격 목표가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위협이 ‘적대적 공격(Adversarial Attack)’이다. AI가 사물을 판단하는 인공신경망의 특성을 역이용해 사람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표시나 물체를 배치하는 것만으로 AI의 판단을 왜곡하는 방식이다.
자율주행 AI가 도로 표지판에 찍힌 작은 점이나 스티커 때문에 표지판을 전혀 다른 물체로 인식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공격이 전장으로 옮겨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군용 차량의 외관을 특이하게 꾸며 AI가 민간·의료시설 등 다른 대상으로 오인하도록 유도하거나, AI가 학습 과정에서 접하지 못한 생소한 물체를 전장에 의도적으로 배치해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미래전의 승부는 누가 영화 속 ‘터미네이터’를 먼저 만드느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특정 임무에 최적화된 값싼 무인체계를 얼마나 많이 배치하고, 동시에 적의 AI를 속이면서 자신의 AI는 속지 않도록 만드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피지컬 AI 시대의 군비 경쟁이 로봇의 팔과 다리를 만드는 경쟁을 넘어 ‘AI의 눈과 두뇌’를 지키고 교란하는 싸움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의미다.
임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