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인공지능(AI)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3D프린팅' 역량을 상당 수준 갖추는 게 필수라는 제언이 나왔다. 세계 1위 3D프린팅 업체 스트라타시스의 진단이다.
안드레아스 랑펠트 스트라타시스 최고매출책임자(CRO)는 최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이미 해외 유명 제조기업들은 3D프린팅으로 공정 효율을 높이고 있다"며 "한국도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D프린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989년 설립돼 3D프린팅의 밑바닥을 다졌던 스트라타시스는 현재 산업용 3D프린팅 1위 업체로 자리 잡았다. 에어버스, 보잉, 록히드마틴, 도요타 등 해외 유명 제조사들이 스트라타시스의 솔루션을 제조 현장에서 사용한다. 보유한 적층제조 특허만 약 2700건으로, 3D프린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췄다.
해외 제조사들이 3D프린팅을 제조 현장에 도입하는 것은 부품을 가볍고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부품을 만들려면 설비를 구축해야 했지만, 3D프린팅은 기기 한 대만 있으면 즉각적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육중했던 제조업을 '린(lean)'하게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랑펠트 CRO는 "제조업이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 고속 생산'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AI 적용으로 실시간 최적화가 필요한 시대에 제조업에서도 3D프린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최근 세계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3D프린팅은 제조업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부품을 주문형으로 즉각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이고, 더 값싸게 부품을 조달할 수 있다. 스트라타시스 측 분석에 따르면 현재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주요 산업용 부품의 60%를 더 싼 가격으로 대체할 수 있다.
미 해군은 지난 7월 항공모함 안에 금속 3D프린팅 장비를 처음으로 배치했다. 함정 수리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을 함정에서 바로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서다. GE에어로스페이스도 미 공군과 함께 F-16 등 전투기 엔진 부품을 3D프린팅으로 제조하고 있다. 단종된 부품을 소량 생산하려면 기존 생산라인을 다시 돌리는 것보다 3D프린팅이 경제적이라는 판단이다.
'적층제조'라는 특징 때문에 금속 부품을 경량 소재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랑펠트 CRO는 "이전에는 3D프린팅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최종 부품 제작에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무게에 민감한 항공우주나 방산 분야에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에어버스는 3D프린팅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부품이 누적 20만개를 넘었고, 보잉은 최근 3D프린팅을 사용해 수십만 달러를 절감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스트라타시스는 최근 마크포지드를 인수해 소재 포트폴리오를 보완했다. 3D프린팅 업계에서는 소재가 다양할수록 만들 수 있는 부품이 많아지기 때문에 소재 포트폴리오가 회사 경쟁력의 주요 지표로 꼽힌다. 마크포지드가 갖춘 탄소섬유 소재는 가볍고 복잡한 부품을 만들 수 있어 항공우주와 방산 쪽에서 수요가 많다.
AI는 3D프린팅 사용의 문턱을 낮춰 제조업의 3D프린팅 전환에 부스터를 달았다. 랑펠트 CRO는 "이전에는 좋고 비싼 3D프린팅 장비를 설치해놓고도 데이터 세팅이나 설계를 할 줄 몰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AI를 통해 많이 해소됐다"며 "10대 청소년도 전문가 도움 없이 원하는 적층제조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제조업 전통이 강한 한국은 아직 3D프린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게 스트라타시스 측 평가다. 기존 제조업 역량이 강한 탓에 변화에 인색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 세계 트렌드인 3D프린팅 전환에서 뒤처지면 향후 제조업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다고 스트라타시스는 강조한다. 랑펠트 CRO는 "한국은 디지털 전환 선도국이자 제조업 강국이라 3D프린팅에 필요한 역량이 갖춰져 있다"면서도 "다른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3D프린팅을 프로토타입 제작에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조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세계적 추세에 맞게 혁신이 필요하고, 3D프린팅이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