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는 가운데 미 국채 30년물 금리가 5.319%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AFP연합뉴스미국 장기국채 금리가 20여년만에 최고치로 치솟았지만 국내외 증시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오랜 공식이 힘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경기 호조와 인공지능(AI) 투자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설비투자가 금리 상승에 따른 금융시장 부담을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AI 투자 열기가 꺾이거나 장기금리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늘어난 부채 때문에 경기가 급격히 꺾이고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장중 5.22%까지 올라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5.1%대로 높은 수준이다. 30년물 금리도 5.5% 안팎까지 뛰며 2004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10년물·30년물 등 장기 국채 금리는 글로벌 경제에서 ‘돈의 가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예·적금과 채권의 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주가는 보통 내려가는 게 ‘공식’이다. 실제로 10년물이 직전에 5%를 넘었던 지난 2023년 10월에는 나스닥이 직전 고점 대비 12.3% 급락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지난달 첫 거래일부터 지난 23일까지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0.43%포인트 오를 때 미국의 대표증시인 S&P 500은 1.4% 올랐다.
코스피 지수도 같은 기간 13.2% 오르며 ‘7000피’를 회복했다. 시장이 과거와 달리 ‘5% 고금리’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셈이다.
시장이 꼽는 첫 번째 이유는 ‘경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2%로 상향 조정했다. 특히 한국은 6월 전망치에서 1.1%포인트나 올려 올해 3.7% 성장을 예상했다.
이정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27일 “2023년에는 리세션(경기 침체) 우려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장기금리가 치솟자 이것이 경기를 더 악화시킬 거라는 두려움이 커졌다”며 “반면 현재는 침체 우려는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금리의 역할 자체가 바뀌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엔 금리를 낮춰야만 수요가 살아나던 시기와 달리, 최근에는 AI 발전과 공급망 개편에 따른 대규모 설비투자가 시작되면서 금리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수요가 생겨났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10년대 금리는 다른 변수들을 결정하는 원인이자 주연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변수들에 의해 결정당하는 조연의 자리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 중심에 AI 투자가 있다.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오라클 등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 5곳의 올해 설비투자 추정치는 8437억달러다. 내년에는 1조10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금리가 올라도 빅테크가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코스피가 버틴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빅테크가 돈을 쓸수록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형 종목의 실적이 함께 불어난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을 190조원대로 전망하고 있다.
장기금리 5%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뉴 노멀’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현재의 금리 수준을 정당화하는 근거로는 미국 경제의 명목 성장률이 6%를 웃도는 점,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5.5% 수준에 이른다는 점 등이 꼽힌다. 사무엘 마르티네스 뱅가드 포트폴리오매니저는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새로운 체제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금리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6개월 새 1%포인트 이상 오르면 S&P500이 10% 넘게 떨어질 확률은 뚜렷하게 높아진다. 이를 최근 흐름에 대입하면 10년물 5.2~5.3%부터 주가 부담이 커진다는 뜻으로 최근 금리가 이 구간에 속한다.
AI 투자라는 ‘엔진’이 언젠가 식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성환 연구원은 주가·금리의 동반 상승 국면을 두고 “대개 강세장 후반부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다음은 주가·금리가 동반 하락하는 국면일 것”이라고 말했다. AI 인프라 공급이 지나치게 늘어 설비투자(CAPEX) 정점을 지나면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부채를 갚는 과정에서 경기와 물가가 함께 둔화돼 주가와 금리가 동시에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