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금으로 생계 유지도 못해
농지연금은 예산 소진돼 대기
고령농 은퇴 이끌 유인책 부족
청년농 육성 사실상 중단 상태
전문가 "국가농업 존폐의 문제
노후보장 위한 제도개선 시급"
고령농 은퇴를 유도해 청년농에게 농지를 이양하려는 정부의 핵심 정책들이 비현실적 제도와 예산 한계로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지를 넘기는 조건으로 지급하는 '농지이양 은퇴직불금'은 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했고, 노후생활을 뒷받침하는 '농지연금'은 신청자가 몰리며 대기자가 쌓였다. 농지를 직접 사들여 청년농 등에게 공급하는 '공공매입 규모'도 전체 농지의 0.1%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고령농이 안심하고 농지를 넘길 수 있도록 은퇴 소득 보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농지를 청년농에게 집중시켜 농업의 규모화와 생산 구조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3명 중 2명 월 30만원 이하 수령
27일 한국농어촌공사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4~2025년 2년간 농지이양 은퇴직불 가입자는 총 3792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지급된 직불금은 고작 월평균 31만원에 그쳤다.
지급액별로 보면 3명 중 2명이 월 30만원 이하를 받았다. 특히 월 10만원 이하가 22.7%인 859명으로 가장 많았다.
10만원 초과~20만원 이하가 21.0%인 797명, 20만원 초과~30만원 이하가 20.9%인 794명이었다. 이어 30만원 초과~40만원 이하가 13.4%인 508명, 40만원 초과~100만원 이하가 19%인 719명이었고, 100만원 초과는 3.0%인 115명에 그쳤다.
은퇴직불금은 농지 매각 대금이나 임대료와 별도로 지급돼 월 31만원이 은퇴농의 노후소득 전부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농을 중단하면 농업소득과 연간 130만원의 소농직불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걸림돌이다. 소농직불은 영세한 중소규모 농가를 상대로 면적과 관계없이 정액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실제 은퇴직불 가입자의 22.7%는 월 10만원 이하를 받아 연간 지급액이 12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농지를 즉시 또는 약정 기간 종료 후 매도해 소유권과 매도 이후의 지가 상승 가능성도 내려놓아야 한다. 현재의 은퇴직불금만으로는 고령농의 은퇴를 끌어낼 충분한 추가 유인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수요 감당 못하는 농지연금
농지를 담보로 매월 생활자금을 받는 농지연금은 지급액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지연금은 주택연금과 유사한 역모기지 상품이다. 가입자는 농지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거나 임대할 수 있다. 연금으로 충분한 노후소득을 확보한 고령농이 직접 경작을 중단하고 농지를 임대하면, 해당 농지가 청년농 등 후속 세대의 영농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농지 소유권을 당장 이전하지 않더라도 경작권의 세대교체를 촉진할 수 있는 셈이다.
2025년 농지연금 신규 가입자의 월평균 지급액은 167만원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신청자 3907명 가운데 신규 가입자는 2015명에 그쳤다. 신청자의 48.4%인 1892명은 연말까지 가입하지 못해 다음 해로 넘어갔다.
예산을 남겨 놓고 가입자를 받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2025년 농지연금 예산현액 2745억원 가운데 2740억원이 집행돼 집행률이 99.8%에 달했다. 배정된 재원을 사실상 모두 쓰고도 신청 수요의 절반가량을 그해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2024년에도 신청자 5111명 중 3115명만 신규 가입하고 1996명이 연말 기준 대기자로 남았다.
◆ 공공 고령농 농지 매입은 미미
고령농의 농지를 공공이 직접 사들이는 통로도 좁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농어촌공사가 2025년 공공임대용으로 매입한 농지는 2195㏊로 전체 농지의 0.15%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농가에서 사들인 농지는 1719㏊로 전체 농지의 0.11% 수준이었다. 2024년에도 65세 이상 농가 매입 면적은 1709㏊로 전체 농지의 0.11%에 머물렀다.
공공임대용 농지 매입은 고령농에게 농지 매각 대금을 지급하고, 공사가 확보한 농지를 청년농 등에 장기 임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대교체 효과가 가장 직접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농지가격 상승으로 같은 예산으로 살 수 있는 면적이 제한되는 데다 지역과 농지의 질, 필지 규모가 청년농 수요와 맞지 않는 문제도 있다. 단순히 매입 면적을 늘리는 것과 함께 흩어진 필지를 규모화하고 실제 영농 수요가 있는 지역에 공급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고령농의 은퇴를 촉진하려면 농지 매입과 농지연금, 은퇴직불을 개별 사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령농이 실제로 농사를 그만둘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하나의 '은퇴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경호 농업제도정책연구원장은 "농지 매입과 농지연금, 은퇴직불금, 기초연금 등을 묶어 고령농이 실제로 생활할 수 있는 은퇴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김용태 의원은 "농촌의 세대교체는 대한민국 농업의 존폐가 걸린 국가적 과제"라며 "턱없이 부족한 금액으로 평생 일군 땅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농민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농에게는 노후 불안 없이 은퇴할 수 있는 든든한 안전망을 보장하고, 청년농에게는 희망을 품고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확실한 진입로를 열어주도록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이양 은퇴직불
1997년 도입된 경영이양 은퇴직불을 2024년 확대 및 개편한 제도. 고령농이 소유한 농지를 매도하거나 장기 임대해 농사에서 은퇴하면 정부가 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최예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