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할 때 모두가 고참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같은 생각을 말한다면 조직은 조직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위험 신호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칠 수 있다. 윗사람이 자기 말에 절대 복종할 것을 강요하며 따르지 않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조직은 건전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많은 성현들의 말이나 역사가 알려주는 이런 사실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나와 눈길을 끈다.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캐나다 웨스턴대 아이비경영대학원 공동 연구팀은 구성원이 ‘나는 이 조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안정그룹애착’을 가질 경우 주류와 다른 의견도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고 다른 구성원들도 이를 갈등이 아닌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실렸다.
‘조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안정그룹애착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주류와 다른 의견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고 조직에서도 쉽게 받아들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이스트 제공안정그룹애착이란 소속된 집단을 안정적인 관계의 기반으로 여기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구성원은 집단으로부터 정서적·관계적 지지를 받고 자신이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안정그룹애착을 형성한다. 이러한 애착이 강할수록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실제 조직에서는 다수와 다른 의견을 가진 구성원이 중요한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알고 있더라도 관계 손상이나 부정적 평가를 우려해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 또 같은 조직 구성원에게는 다수 의견과 일치해야 한다는 기대가 작용하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내기란 더욱 어렵다.
연구팀은 안정그룹애착이 관계적 부담을 줄여 구성원들이 타인의 반응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의견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소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과 이를 받아들이는 다수 구성원의 관점으로 나눠 두 차례의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은 미국 클라우드소싱 플랫폼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MTurk)에서 모집한 남녀 113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팀원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을, 나머지 한 그룹은 평범한 회의를 떠올리도록 했다. 3명이 참여하는 마케팅 회의에서 2명이 반대한다고 알려주고 반대자가 같은 팀일 때와 다른 팀일 때를 가정하고 참가자가 쓴 의견서의 분량과 정교함, 설득력을 평가했다.
그 결과 안정그룹애착이 유도된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더 많은 어휘를 사용해 자기 의견을 구체화하고 더욱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는 참가자들이 관계에 대한 걱정보다 주어진 문제와 의견 내용 자체에 집중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MTurk에서 모집한 참가자 121명에게 다수파 역할을 맡긴 뒤 소수 의견자가 작성한 주장을 평가하도록 했다. 3명의 마케팅 회의를 가정하고 실험 1 참가자가 쓴 반대 의견서를 읽도록 했다. 글쓴이가 안정감 조건이었는지는 알리지 않고 반대자가 같은 팀인지 다른 팀인지만 알려준 뒤 그 의견에 불만이 있는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반영할 의향이 있는지를 9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안정그룹애착이 유도된 소수 의견자의 주장을 더 설득력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해당 의견이 집단의 기대를 거스른다고 느끼는 정도가 낮았으며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할 의향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집단 내부 구성원이 제시하는 소수 의견과 외부 집단 구성원이 제시하는 소수 의견도 구분해 살펴봤지만 안정그룹애착과 내외집단 구분 간의 상호작용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다만 안정그룹애착이 과제 집중을 높이고 소수 의견의 표현과 수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내부 구성원의 의견에서 일관되게 관찰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내부 구성원은 집단의 통념이나 다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기대를 더 크게 느껴 문제점이나 부정적 피드백을 제시하는 데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만약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구성원으로서 관계나 위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런 부담이 줄어든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 왼쪽부터 김태현 카이스트 박사과정 연구원, 이수진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정승원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조이 키니아스 캐나다 웨스턴대 교수 카이스트 제공이수진 카이스트 교수는 “구성원이 조직의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알고 있더라도 관계 악화나 부정적 평가를 우려해 말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내부에 축적된 지식과 위험 신호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내부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발언 기회를 주는 것뿐 아니라 구성원이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함께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업, 연구기관, 공공조직에서 집단 사고를 줄이고 구성원이 가진 지식과 관점을 활용하기 위한 조직문화와 리더십 설계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리더가 공개적으로 반론을 요청하고 소수 의견의 기여를 인정하며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조직 내 관계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지속해서 주고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승원 카이스트 교수는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을 한 조직에 모으는 것만으로는 다양성의 효과를 충분히 얻기 어렵다는 점을 이번 연구는 보여준다”며 “구성원에게 반대 의견을 말할 기회만 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구성원이 다수와 다른 생각을 안전하게 제시하고 다른 구성원도 이를 갈등이나 조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다양성이 실제 의사결정과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