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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집 있는데 왜?" 이 말 하고 '아차' 싶었다

요약
  • 서울의 극심한 전월세난과 집값 상승 속에서 청년들은 계층 상승과 주거 안정, 일자리를 위해 서울 입성을 갈망하거나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 부동산을 매입하지 못하고 월세 등으로 거주하기만 할 경우 자산 증식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청년들을 치열한 주거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사는 건(Live) 돼도 사는 것(Buy)은 쉽지 않은 서울... 전월세난에 갇힌 서울 안팎 청년들의 고민【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사진은 7월 19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 연합뉴스

친구와 SBS 예능 프로그램 <합숙맞선2>를 봤다. 출연자가 부모님과 함께 나와 결혼 상대를 찾는 포맷이다. 오가는 대화는 꽤 진지하고 단도직입적이다.

한 어머니가 사윗감으로 점찍은 남자 출연자에게 대화를 청한다. 서울에 집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 딸은 경기도에 사니,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 혹시 이쪽으로 와서 같이 살 수 있는지 묻는다. 친구와 나는 그 순간 혀를 내두른다.

"에이, 서울에 집 있는 사람한테 왜 경기도로 오라고 해?"

우리는 서로 맞장구를 치고, 유튜브 댓글 역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문득 '아차' 싶었다. 평소 서울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앞으로도 내가 태어난 김포에서 쭉 살 생각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내가 왜 어머니의 멘트에 코웃음을 치는 걸까. 나조차도 서울과 경기도 사이의 암묵적인 위계질서를 인정하고 있던 셈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전월세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세 사기가 터지며 세입자들은 전세를 피하기 시작했다. 집주인 또한 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지자 목돈을 쥐고 있느니 다달이 월세를 받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다. 원래도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던 서울 전세는 이제 더 찾기 어렵다.

이는 청년들에게 유독 심각하게 느껴진다. 집값은 더 이상 엄마 아빠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성세대에게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청년들 내면에는 서서히 사회적 계층 이동의 사다리에 오르고 싶은 욕구가 움트고 있다.

서울에 건물을, 아니 작은 집 한 채라도 매입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계층 상승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누군가는 미래 아이의 학군지를 위해, 누군가는 오고 가는 직장에서 체력을 보전하기 위해 서울 입성을 꿈꾼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울 안팎을 드나드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안팎의 청년들

▲  서울 안팎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mygallery on Unsplash

세 살과 다섯 살,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가장인 지인은 서울 강서구에서 전세를 살다 경기도 신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계약을 갱신할 때 집주인이 7000만 원을 올려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가끔 나오던 녹물과 밤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던 주차난도 그 집에 두고 온 참이다. 신도시는 깨끗하고 넓어 아이 키우기에 제격이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서울로 들어가야죠"라며 의지를 다진다. 이 말을 듣던 주변 어른들은 "서울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 힘들어"라며 하나같이 입을 얹는다고 한다. 처음엔 왜 굳이 초를 치나 싶었다. 곰곰이 씹어보면 그 말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어 보였다.

첫째, 쾌적한 환경에 익숙해지면 주차난과 낡은 집을 다시 견디기 어렵다. 둘째, 아이가 클수록 살림이 늘어나 큰 집을 포기하기 어렵다. 혼자라면 서울 원룸에라도 몸을 욱여넣겠지만 아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셋째, 서울과 경기도는 집값이 오르는 속도 자체가 달라 한 번 나오면 그 격차를 따라잡기 버겁다.

사실 경기도 신도시에는 이런 걱정을 덮고도 남을 장점이 많다. 그런데도 그의 선택이 합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이탈'처럼 비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서울을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골든 티켓'처럼 바라보고 있다. 서울을 떠난 이가 이유 모를 상실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번에는 서울에 꼭 입성하겠다는 꿈을 안고 재테크에 매진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기업 5년 차의 건실한 미혼 청년인 그는 매일 네이버 부동산을 들여다본다. 화면에 찍힌 숫자는 9억 원에서 10억 원. 나는 옆에서 기함하며 눈을 돌린다. 그는 성실하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앞으로 얼마를 모아야 하고 얼마가 더 필요한지 따져보며, 실거주 의무나 대출 규제처럼 빡빡해지는 정책에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하도 궁금해서 대체 서울이 왜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니 세 가지 이유를 답한다. 첫째, 지금 부동산 시장에 올라타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기 때문에. 서울과 경기도의 집값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 둘째, 주류에 속하고 싶은 마음. 여의도와 광화문, 강남처럼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정보가 오가는 곳 가까이에 있고 싶은 마음이다. 셋째, 훗날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 나라의 중심지에서 자란 아이가 누릴 만남의 질과 양은 확실히 다르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직장 때문에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서울에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매달 80만 원의 월세를 내는 그는 늘 고향 부산을 그리워할 뿐 서울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그가 서울에 머무는 유일한 이유는 일자리다. 그가 종사하는 업종은 지방이나 경기도보다 서울에 훨씬 많다. 오직 그 때문에 서울에 산다. 서울을 꿈꾸는 것도, 밀려난 것도 아니다.

그저 서울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쓰기만 하는 사람이 가장 큰 손해를 본다. 매달 사라지는 80만 원은 어디에도 쌓이지 않는다. 사지 않고 살기만 하면 서울은 비용이 된다. 앞선 두 사람이 어떻게든 서울을 '사려고(Buy)' 애쓰는 본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지 못하면 결국 서울에 청춘만 바치고 빈손으로 물러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나의 '골든 티켓'을 고민하며

▲  지난 7월 23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이날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대토론회에서 재건축·재개발의 주택 공급 효과를 놓고 참석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 연합뉴스

세 사람의 이야기를 관통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서울 공화국'에 무관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히 운이 좋은 덕분이다. 경기도 본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회사가 있고, 출근길은 자차로 다닐 만큼 쾌적하다.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다. 이 중 단 하나라도 다르다면 나 역시 서울을 꿈꿀 테다.

틈틈이 이직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접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쪽의 큰 회사들은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고, 김포골드라인 같은 지옥철에 몸을 싣는 순간 삶의 질이 얼마나 떨어질지 눈에 훤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눈에 서울은 여전히 쟁취해야 할 값진 것으로 가득한 도시다. 그래서 그들은 부동산 불패를 믿으며 서울을 꿈꾼다.

그러나 그 값어치는 과연 정말 정상적으로 책정되어 있을까. 우리가 골든 티켓이라 부르는 '강남'의 원래 이름은 '영동'이었다고 한다.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1966년 도시 계획에 부도심으로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채소를 대던 시골 마을일 뿐이었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1967년 압구정과 신사 일대의 땅값은 평당 약 200원이었다. 당시 돈으로 짜장면 서너 그릇 값이다.

제3한강교가 놓이자 3000원, 경부고속도로가 뚫리자 1만 원. 1976년 경기고가 삼성동으로 옮겨온 것을 시작으로 강북 명문고들이 따라 내려오며 학군이 생겼고, 그렇게 '골든 티켓 한 장'이 됐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약 20년이다. 어찌 보면 골든 티켓은 천국에서 내려온 부동의 땅이 아니라, '어쩌다가 만들어진' 시대적 흐름인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의 예능으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질문은 지역을 뒤집으면 지극히 평범한 문장이 된다. 딸 직장이 서울에 있으니 경기도가 아닌 이곳에서 살 수 있는지.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서 어머니가 눈치를 보는 이유는, 그리고 시청자들이 실소를 터트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 마음속에 서울을 우위에 둔 위계질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아직도 골든 티켓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서울에 입성하려는 청년들의 열망은 정당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딛고 선 발밑의 땅을 다시 한번 다져볼 참이다. 혹시 모른다. 내가 서 있는 이 변두리가 언젠가 또 다른 시대의 중심이 되어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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