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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누린 친정 명절,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요약
  • 평생 시댁을 우선시하며 명절을 보냈던 필자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92세 친정어머니 곁에서 추석을 보냈다.
  • 오남매와 조카들까지 모인 북적이는 명절을 보내며 친정 부모님께 무심했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는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92세 엄마 곁에서 보낸 첫 추석, 시부모 돌아가신 후 찾아온 변화【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예전에 나는 명절 때마다 영락없는 '시댁 귀성객'이었다. 시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당연했다. 임신했을 때나 젖먹이 갓난아기를 안고도, 끙끙 앓아 누웠을 때도 시댁 가기는 늘 1순위였다. 폭설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마비되었다는 예보도 무시한 거스를 수 없는 사명이었다.

직장 다니랴, 애들 키우는 틈에도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부터 조퇴하여 시댁을 찾았다. 상경하는 날은 또 어땠나. 시동생 부부와 어린 조카들이 떠날 때 우리는 함께 떠날 수 없었다. 부모님만 그곳에 남겨두고 훌쩍 떠나는 게 죄스러워서였다. 연휴 마지막 날 늦은 밤까지 남아 시부모님 곁을 지켰다. 집으로 향할 때 우리 부부의 표정은 무거웠다. 차에 오르면서도 마치 큰 불효를 저지르는 사람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엄마는 "시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용돈을 드려도 "네 시부모께나 잘 해드려라"라면서 물리셨다. 나는 시댁에만 신경 썼고 친정은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엄마는 보이지도 않았다. 명절 연휴를 고스란히 시부모님을 위해 쓰고 나서, 뒤늦게 친정을 찾았을 때는 명절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은 뒤였다.

엄마의 슬픈 거짓말

▲ 친정 엄마 집으로 모인 오 남매 추석날 엄마 집으로 모인 친정 식구들. 오 남매를 키울 때는 고생했어도 다 키워 놓고 보니 좋다고 웃는 엄마의 모습. 엄마는 소파의 중심에 앉아 유튜브 본 얘기와 명심보감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신다. 모두의 눈초리가 엄마를 향하고 있다. 우리 집안의 중심인 엄마가 계셔서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 AI 이미지 활용

유교 사상이 뿌리내린 엄마의 교육 탓이라고 항변해 본다. 하지만 그 교육 뒤에 숨겨진 엄마의 진짜 마음을 나는 너무 몰랐다. 상 위에 오른 생선 살을 발라 자식들 접시에 얹어주며 "나는 생선 머리가 제일 맛있더라"면서 웃어 넘긴 엄마와 그 슬픈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세간에 떠도는 딸. 결혼 후 엄마 생신상에 생선 대가리만 수북하게 대접했다는 철없는 딸이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친정 부모님께 참 무심한 딸이었다. 시댁에는 좋은 소고기를 사 가는 게 당연했으면서, 엄마에게는 돼지고기 몇 근조차도 머뭇거렸으니.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해 아까워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랬을까.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와 답답해진다.

명절을 친정에서 쇤다는 건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내게 몇 해 전부터 큰 변화가 찾아왔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명절을 친정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동생들과 모여 함께 음식을 장만하고 조카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맛봤다. 시댁이 서울인 동생들은 추석 다음 날이라도 친정에 올 수 있었지만 나는 그마저도 없었기에 만남이 더욱 애틋했다. 이 평화롭고 좋은 시간을 왜 진작 누리지 못했을까.

이번 추석은 조카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였다. 엊그제 여동생이 본 새 사위까지 모두 참석해서 집안이 꽉 찼다. 북적대는 집안에 활기가 돌며 비로소 진짜 명절 같은 풍경이 완성됐다. 지난해 결혼한 조카의 아기를 품에 안아보니 감개무량했다. 아기가 어쩜 그리 순하고 예쁜지, 나도 하루빨리 손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날씨가 우중충했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집안 전체를 가을 하늘처럼 쾌청하게 바꿔주었다.

이번에도 우리 오 남매는 서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국산 참기름, 황태포와 마른 새우, 향기 좋은 샴푸 세트 등을 받았다. 나는 질 좋은 하루 견과류를 준비했다. 고가의 물건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건강을 챙기려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값진 선물이다.

올해 추석 상차림의 주메뉴는 뜻밖에 '보쌈'이었다. 동생 댁이 늘 준비하던 갈비 대신 보쌈이 올라온 사연이 좀 특별하다. 치아가 부실한 엄마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한마디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으니까.

"부드러운 보쌈이 먹고 싶구나."

셋째 여동생이 열여섯 식구가 먹을 고기를 사와 보쌈을 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함께 어울려 준비한 음식들이 식탁을 가득 채웠을 때, 형제들의 웃음꽃도 함께 피어올랐다. 젊은 조카들과 소통을 척척 해내는 쉰 넘은 남동생이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바람에 더욱 화기애애할 수 있었다.

소파 한가운데에 앉은 92세 엄마의 입담은 단연 최고로 빛났다. 유튜브에서 들은 얘기며 명심보감 얘기를 각색하여 만담처럼 마음껏 발휘해 식구들을 웃겼다. 처음 만나는 손녀사위들에게 빳빳한 용돈 봉투까지 받고 쑥스러워하면서도 감동한 엄마. 늘 베풀기만 하고 받기는 거부하던 엄마한테 다가온 예의 바른 손길이었다. 엄마의 머쓱한 얼굴에 생기를 돌았다.

밤이 깊어지자 동생들이 짐을 꾸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훈훈하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허전함이 맴돌았다. 나마저 떠난다면. 그때 내 마음속에서는 간절한 바람이 일었다. '오늘은 여기서 엄마와 함께 자고 싶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들한테 눈짓을 보냈다. 흔쾌히 좋다는 신호가 왔다.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야 하는 남편한테도 살짝 눈짓했더니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자고 갑시다."

여벌 옷도 없이 와서 잠자리도 불편할 텐데 내 마음을 알아준 남편과 아들이 고마웠다.

엄마와 나란히 침대에 누우니 세상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효'라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부모님을 위해 마음 쓰는 일이지만 결국 내 마음의 짐을 덜고 스스로 편안해지려는 행동이 아닐까. 다음 날 아침 한 끼를 해드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내게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명절에 하루만큼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그 자리를 우리 가족이 조용히 채워야겠다는 꿈 말이다.

늘 그랬듯 엄마는 우리가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사이, 곧장 베란다로 걸어가셨다.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봤다. 17층 베란다에서 울려 퍼진 엄마 목소리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했다. 몇 번이고 '잘 가거라!'하는 엄마의 인사말을 오래오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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