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국채 금리가 일제히 치솟으면서 저금리 시대에 쌓인 막대한 국가 부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10여 년 전만 해도 연 0~1%대 금리로 국채를 발행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영국은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5%대, 독일, 일본은 연 3%대로 치솟아 있다. 과거 낮은 금리로 빌린 돈의 만기가 속속 돌아오고 있다. 이들 정부는 이 빚을 갚으려면 과거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새 국채를 찍어야 한다. 저금리 시대에 쌓아 올린 막대한 빚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각국 정부에 ‘이자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영국 국채 10년물 5% 넘어
최근 한 달 사이 주요국 국채 금리의 상승세는 가파르다. 일본과 독일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 선을 넘어섰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24일 5.2%를 넘는 등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유로존 벤치마크인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도 연 5%대로 치솟아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도 한꺼번에 겹쳤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으로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진 데다 인공지능(AI) 투자 붐도 새로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발전·송전시설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전력과 각종 설비·원자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드러냈지만, 장기 국채 금리의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백형선·Gemini만기 닥친 국채, 고금리로 갈아타야
이번 국채 금리 상승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10여 년 전 초저금리 시절, 연 0~1%대 금리로 발행한 막대한 국채의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갚기 위해 새 국채를 발행해 기존 빚을 갚는 차환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거보다 금리가 크게 높아진 지금은 빚을 더 늘리지 않고 같은 규모로 유지하기만 해도 이자 부담이 커진다.
특히 앞으로 몇 년간 차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의 고정금리 국채 가운데 약 3분의 1이 2026~2028년 만기를 맞는다. 저금리 때 발행한 국채가 만기를 맞을수록 더 높은 금리의 국채로 교체되면서 각국 정부의 이자 부담도 시차를 두고 계속 커진다.
이미 각국 정부의 이자 지출 부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올해 연방정부 세입을 5조6000억달러, 순이자 지출을 약 1조달러로 전망했다. 연 세입의 18%에 달하는 금액이 이자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프랑스 역시 올해 정부의 부채 이자 비용이 약 650억유로로 전년보다 2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IMF에 따르면 세계 공공부채는 지난해 세계 GDP의 94%에 육박했고, 2029년에는 100%에 이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경제가 불어나는 이자 부담을 감당할 만큼 성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의 성장세는 높아진 금리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IMF가 지난 7월 내놓은 전망에 따르면,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미국 2.3%, 일본 0.6%, 독일 0.7%, 프랑스 0.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사미 차르 롬바르드 오디에 수석 경제학자는 “성장률이 6.5%라면 국채 금리 5%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장률이 5%인데 금리도 5%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