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국회에서 열린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민주당 독약 게이트 아닌가.”
9월15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제넨셀 의혹’에 붙인 이름이다. 한동훈 의원의 표현인 ‘독약 로비’가 ‘민주당 독약 게이트’로 확장된 것이다. 김승원 후보자와 더불어민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한 의원이 녹취를 ‘선택적’으로 발췌·공개한 것에 대해 ‘정치공작’이라고 맞섰다. 김 후보자는 한 의원을 “민주주의의 큰 적”이라고 불렀다.
독한 언어가 청문회장을 채우고 넘쳤다. 그러나 정작 의혹의 ‘코어’로 접근하는 통로는 점점 희미해졌다. 사건의 핵심은 ‘독약’이나 ‘발췌·편집’이 아니다. 2021년 가을 제넨셀 임상시험 승인을 둘러싸고 움직였던 사람과 돈의 거대한 흐름이다. 누가 이익을 봤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은 수년 뒤 펼쳐진 ‘정치연극’ 판에서 사건을 자신의 분장 도구로 재활용했을 뿐이다.
2021년 가을, 이 사건의 중심에는 세종메디칼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2019년 기준 매출액 약 162억원, 총자산 약 495억원의 코스닥 상장 의료기기 제조업체였다.
회사의 성격은 2021년 7~8월, 경영권이 ‘투자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급변한다. 타임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업체가 약 125억원을 투입해 세종메디칼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 업체와 함께 엠오비컨소시엄, 마사 신기술조합, BMC 컨소시엄, 뉴하라19호 등 재무적 투자자(FI)들이 함께 세종메디칼의 주요 주주 자리를 확보했다. 이후 회사는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연이어 발행하며 수백억 원의 외부 자금을 조달했다. ‘투자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바이오 부문이 세종메디칼의 사업 목적에 추가되었다.
이런 변화는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021년 세종메디칼의 매출액은 이전 1~2년과 비슷한 약 172억원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덩치(총자산)는 2020년 약 540억원에서 2021년엔 약 912억원으로 부풀어 올랐다. 본업이 성장해 몸집이 커진 것이 아니었다. 외부 자금 조달이 자산 팽창을 이끌었다. 2021년 영업 활동에서는 현금 약 90억원이 빠져나간 반면 재무 활동에서는 약 477억원이 순유입됐다. 주식 발행과 CB·BW 발행 등이 주된 원천이었다.
이 여유자금은 어디에 쓸 것인가. ‘투자 세력’의 눈이 한 ‘비상장’ 회사를 포착했다. 바이오 기업 제넨셀. 창업자인 강세찬 경희대 교수가 최대주주였다. 제넨셀은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이었다. 2021년 9월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약인 ES16001의 국내 임상시험 승인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20일가량 지난 10월12일, 김승원 당시 민주당 의원이 등장했다. 그는 지인인 브로커 양 아무개씨의 부탁을 받아 김강립 당시 식약처장과 통화하고 다음과 같은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담당 실무진이 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회사는 제넨셀입니다.’
일주일 뒤인 10월19일, 제넨셀의 최대주주가 강세찬 교수에서 세종메디칼로 바뀌었다. 세종메디칼은 이 인수에 약 113억원을 투자했다. 약 63억원으로는 강씨 보유 주식을, 나머지 50억원은 제넨셀 발행 CB를 샀다.
‘투자 세력’은 출구를 알고 있었나?
이로부터 다시 일주일 뒤인 10월26일, 식약처는 ES16001의 임상 2·3상 시험계획을 승인했다. 치료제의 효능을 인증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신약 개발의 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재료였다. 제넨셀은 비상장 회사지만 기업가치는 치솟아 오를 터였다. 이는 지배주주인 세종메디칼의 주가에 반영된다. 승인 다음 날부터 세종메디칼의 주요 FI 가운데 세 곳이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이들이 7~8월부터 10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 거둔 매매차익만 약 183억원으로 추산된다. 최대주주인 타임인베스트먼트는 당시엔 주식을 팔지 않았다. 대신 약 1년 동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다가 경영권 전체를 묶어 다른 투자자들에게 팔고 ‘엑시트(탈출)’한다.
이 과정에 ‘의혹’으로 불리는 정황들이 있다. 2021년 10월에 세종메디칼 주가가 천장(종가 기준 7840원)을 친 것은 ‘임상 승인’ 발표 직전인 10월25일이었다. 정작 ‘임상 승인’이 발표된 다음 날부터는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10월29일엔 4115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장기적 주가 하락과 거래정지로 상당수 일반주주는 큰 손실을 입었다.
승인 직후 대규모 매도와 주가 급락이 겹쳤다는 점에서 사전 정보 공유 여부는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정보 유출을 단정할 수는 없다.
세종메디칼 법인은 부실해졌다. 2022년 재무제표에 따르면, 매출액은 제자리걸음 또는 줄어들었으나 총자산은 2019년의 3배(1382억원) 가까이 부풀어 오른다. 그 80% 이상이 부채였다. 중견 제조업체인 이 기업은 투자회사처럼 바뀌었다. 외부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뒤 이를 본업(의료기기)의 설비 확장이 아니라 금융상품 매입 및 외부 바이오 기업들에 투자했다. 그중 하나가 제넨셀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22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손실이 약 976억원이다. 부채비율은 2019년 8%대에서 2022년 400%를 훌쩍 넘어섰다. 약 63억원을 주고 취득한 제넨셀 지분은 전액 손상 처리되었다. 세종메디칼이 투자한 다른 업체들의 기업가치도 하락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FI들은 ‘엑시트’했고, 상당수 일반주주는 손실을 입고, 회사에는 부실이 남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승원 당시 의원의 식약처장 접촉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그의 식약처장 접촉과 임상 승인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긴 어렵다. 실제로 제넨셀의 임상 심사 기간은 당시 코로나19 치료제들의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김승원의 전화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빠른 승인이 이뤄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연락이 식약처 내부 업무를 움직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김강립 처장의 비서는 김 후보자의 문자 캡처를 담당 과장에게 전달했다. 담당 과장은 사무관에게 제넨셀 심사 경과를 서면으로 작성해 코로나19 주간점검회의에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다만 이 조치가 최종 승인 판단을 바꿨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김 후보자는 공인으로서 선의를 가졌을 수 있다. 2021년 가을은 코로나19의 절정기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식약처장 접촉이 “심사가 왜 지연되는지 알아봐달라는 공익성 민원의 전달”이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에서 김 후보자가 FI들의 주식매도 계획이나 임상 승인 시점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가 직접 경제적 이익을 취한 것도 아니다. 최근 공개된 2023년 11월 서울서부지검 수사보고서는 강씨가 효능을 부풀려 김 후보자를 속였을 가능성을 검토했다. 김 후보자 역시 청문회에서 “10만원대로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을 너무 믿은 것은 아닌지 후회스럽다. 보좌진을 통해 처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청문회 이후 준비단은 “의약품 효능과 제출 자료의 진위는 식약처가 판단할 문제였으며 김승원은 제넨셀 내부의 동물실험 자료 조작을 알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선의와 부적절 사이, 지워지지 않는 질문
질문은 남는다.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의 사안을 국회의원 신분으로 규제기관 수장에게 전달했다는 것 자체는 부적절하다. 더욱이 김 후보자는 제넨셀이 승인을 받으면 “수천억 원”의 가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브로커 양씨와의 대화에서 언급했다. 양씨는 승인 이후 자신의 회사에 제넨셀(강세찬) 측으로부터 8억~10억원의 투자가 들어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김승원이 윤석열 검찰에게 탈탈 털렸지만 재판에 넘기지 못했다’는 방어 논리를 여러 차례 동원했다. 과거 김건희씨를 둘러싼 의혹에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반복한 주장과 놀랄 만큼 닮았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신약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브로커 양 아무개씨(가운데)가 9월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공판에 신변 보호를 받으며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그렇다고 야권의 주장이 민주당 측보다 더 단단한 것도 아니다. 한동훈 의원이 공개한 녹취엔 ‘발췌·편집’ 의혹이 제기된다. 전체 녹취와 공개본을 대조하면 김 후보자에게 유리한 문맥이 빠지고 일부 발언은 다른 위치에 재배치된 사례가 확인된다. 그야말로 ‘독한’ 편집이다.
한 의원이 ‘유행’시킨 ‘독약’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동물실험에서 햄스터가 죽고 토혈·폐 비대 등의 이상 소견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제넨셀 측이 일부 내용을 삭제한 자료를 식약처에 제출한 행위는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됐다. 그러나 해당 시험의 대상은 독성이 아니라 약효였다. 당시 식약처 심사관은 법정에서 햄스터 사망을 후보 물질의 독성 때문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한 의원의 ‘독약’은 ‘정치’로 ‘사실’을 압도하기 위한 표현이다. 그는 관련 자료의 구체적인 입수 경로도 밝히지 않고 있다.
9월15일 청문회와 같은 시간 서울서부지법에서는 양씨와 강세찬씨의 뇌물공여 약속 사건 재판도 열렸다. 이날 예정된 결심은 연기됐다. 재판부는 강씨의 별도 형사사건 항소심 결과를 본 뒤 11월12일 재판을 이어가기로 했다.
결국 청문회에서도 법정에서도 결정적 의문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누가 언제 임상 승인 관련 정보를 미리 알았으며 그 통로는 어디였는가. 정보 취득자들의 돈과 주식은 어떻게 움직였는가. 식약처가 제출 자료의 왜곡을 걸러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승인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김 후보자는 민원인들이 임상 승인으로 거대한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가.
청문회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남은 것은 ‘독약 게이트’와 ‘정치공작’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유독한 언어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