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자금 대형 건설사·수도권 사업장 쏠림
브리지론 공급 축소에 신규사업 ‘언감생심’
중소·중견 건설사 본PF 잔액도 90% 급감
재건축 현장 전경. 연합뉴스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자금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중소·중견 건설사의 주택 공급 기반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2022년 9월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권이 신규 PF 취급을 줄인 데다 제한적으로 공급되는 자금마저 수도권 우량 사업장과 대형 건설사에 집중되면서다.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중소·중견사의 공급 물량은 사태 이전보다 60% 가까이 줄었다.27일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사의 주택 공급 물량(임대 제외)은 2021년 16만 9000가구에서 지난해 6만 9000가구로 58.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부동산114가 집계한 전국 아파트 분양 물량은 29만 7793가구에서 19만 5553가구로 34.3% 줄어드는 데 그쳤다. 중소·중견사의 공급 감소 속도가 전체 시장보다 훨씬 빨랐던 셈이다.
전체 분양 물량 가운데 중소·중견 건설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약 57%에서 지난해 35.7%까지 내려앉았다. 20%포인트 넘게 비중이 축소되면서 지역 주택 공급을 담당해온 중소·중견사의 역할 자체가 크게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급 위축의 배경에는 PF 시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자금 순유출이 있다. 금융회사들이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고 기존 대출을 회수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신규 자금을 다시 공급하지 않고 있어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2024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2년간 금융권이 부동산 PF에서 회수·정리한 자금은 202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신규 공급된 PF는 141조 5000억 원이었다. 8개 분기 모두 신규 공급액이 회수·정리액의 약 70% 수준에 머물면서 총 61조 3000억 원이 PF 시장에서 순유출됐다.
문제는 줄어든 자금마저 특정 사업장으로 편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KIS)가 증권·캐피털 51개사가 참여한 약 3600개 PF 사업장, 50조 원 규모의 자금 흐름을 분석한 결과 시공 순위 100위 이내 건설사의 아파트 사업장이 확보한 본PF 잔액은 2024년 2분기 7조 9000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5조 7000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대로 시공 순위 100위 밖 건설사의 본PF 잔액은 6조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90% 넘게 줄었다. 지역별 편중도 뚜렷하다. 서울 오피스의 본PF 잔액은 2년간 1조 1000억 원에서 4조 5000억 원으로 4배 이상 늘었지만 비서울 오피스는 5000억 원에서 4000억 원으로 20% 감소했다.
이처럼 대형사와 수도권 우량 사업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데는 국내 PF의 구조적 취약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2~5%에 그쳐 다수 사업장이 시공사의 신용보강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금융권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지자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중견사의 사업장이 자금 배분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전에는 별다른 보증이 없어도 PF 대출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후로는 대형 건설사조차 이중·삼중의 신용보강을 요구받는다”며 “채무 인수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중견 건설사의 사업장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도 격차를 키우고 있다. 서울 오피스와 수도권 아파트는 공급 부족과 전월세난 등의 영향으로 가격과 매수세가 회복되고 있는 반면 지방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2만 5000여 가구에 달한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수도권 우량 프로젝트 중심으로 자금을 배분할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브리지론 위축이다. 토지 매입과 인허가 등에 사용되는 브리지론은 본격적인 개발 사업에 앞서 필요한 초기 자금으로, 향후 주택 공급 물량을 좌우하는 선행 단계다. 이 시장부터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신규 사업 발굴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신용평가 조사에서도 브리지론 잔액은 올 1분기 약 10조 원으로 2년 전보다 5조 원 줄었다.
올해 중소·중견사의 공급 물량이 증가한 것도 공급 여건이 개선됐다는 신호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9월 기준 이들 건설사의 누적 공급 물량은 5만 5016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9% 늘었다. 다만 상당수가 과거 인허가를 받아둔 기존 사업장의 ‘밀어내기’ 분양이어서 신규 사업 확대에 따른 순공급 증가와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향후 공급을 가늠할 수 있는 인허가 물량도 감소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주택 누적 인허가는 14만 2328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약 8% 감소했다. 2022년 29만 4000여 가구와 비교하면 51.9% 줄었다.
자금난과 건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폐업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종합건설업체 가운데 폐업 신고를 한 곳은 641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484곳보다 32.4% 증가했다.
정부는 8·13 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공적 PF 보증 규모를 86조 원으로 확대하고 중소·중견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보증도 늘렸다. 다만 현장에서는 금융권의 보수적인 PF 취급과 지방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는 한 정책 지원이 곧바로 신규 사업 확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이 PF에 극도로 보수적인 데다 지방은 초기 단계인 브리지론부터 완전히 막힌 상태”라며 “주택 건설 업계의 ‘돈맥경화’가 풀리지 않으면 주택 공급난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산연 관계자도 “정부의 공적 보증으로 줄어든 신용 위험이 실제 조달금리 완화와 금융 조건 개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며 “PF 사업성 평가도 단기 분양률뿐 아니라 임대 수익, 장기 공실 위험, 지역 경제 파급효과까지 함께 반영하는 방식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