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리창 국무원 총리(가운데)가 지난해 8월 20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 바이오테크 기업을 방문했다. photo 뉴시스·신화통신지난 9월 1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중국 바이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소식이 또 나왔다. 2025년 그룹 매출 기준 세계 2위권 제약사인 스위스 로슈가 중국 선성자이밍이 개발한 삼중특이항체 SIM0660의 글로벌 개발·생산·상업화 권리를 확보한 것이다. 선급금 7500만달러를 포함한 계약상 지급액은 최대 15억3000만달러이고, 향후 판매액에 따른 별도 로열티도 붙는다. 낯선 장면이 아니다.
불과 한 달 반 전인 7월 14일에는 세계 10대 제약사로 꼽히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 디잘제약의 폐암 치료제 제그프로비의 전 세계 개발·판매 권리를 도입하는 계약을 발표했다. 선급금 6억달러에 성과에 따라 최대 9억달러가 추가되고 별도 로열티도 지급하는 계약이다. 제그프로비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 허가받았다.
그들이 연구개발(R&D) 능력이 부족해서 중국을 찾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지난해 지출한 연구개발비만 142억달러가 넘는다. 주목할 것은 천문학적 R&D 비용을 쏟아붓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가장 기술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다음 신약' 후보를 중국에서 사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바이오의 경쟁력은 값싼 원료의약품과 복제약, 저렴한 임상시험과 위탁생산으로 설명됐다. 지금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에서 찾는 것은 다르다. 생산비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자신들의 파이프라인을 채울 혁신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으로 간다. 워싱턴에서는 중국 바이오 의존을 국가안보 문제로 보는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중국에서 개발된 신약 후보에 수십억 달러를 걸고 있다.
신약자산 40%가 中 기업이 기술제공
몇몇 중국 바이오기업의 성공담으로 치부하기엔 돈의 흐름이 이미 크게 달라졌다. IQVIA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빅파마가 외부에서 도입한 신약 자산 가운데 중국 기업이 기술을 제공한 비중은 40%에 달했다. 전년에는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인공지능 중심 제휴를 제외한 중국발 치료제 자산의 글로벌 인라이선스 거래 잠재총액도 920억달러에 이르렀다. 임상과 허가, 판매 성공을 전제로 한 마일스톤까지 합친 숫자이긴 하지만, 세계 제약기업들이 어느 나라의 후보물질에 미래가치를 걸고 있는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신약 후보가 만들어지는 규모 자체도 크게 변했다. BCG에 따르면 2025년 세계에서 새롭게 임상개발에 진입한 신약 후보물질(NME) 가운데 중국 비중은 44%, 미국은 27%였다. 2020년에는 미국 33%, 중국 32%로 거의 같았다. 특히 항체약물접합체(ADC)는 올해 초 세계 임상단계 혁신 파이프라인 394개 가운데 중국이 60%, 미국이 20%를 차지했다. 이중·다중특이항체에서도 중국 41%, 미국 33%다. 중국이 미국을 이미 추월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약 후보로 만들고, 임상시험에 올리고, 글로벌 제약회사가 실제 돈을 주고 사갈 만한 자산으로 바꾸는 산업적 역량에서 중국을 더 이상 단순한 추격자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가장 쉽게 설명하는 말은 비용이다. BCG는 중국의 신약 탐색 비용을 미국의 20~30%, 비임상 개발비를 최소 50% 낮은 수준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역시 중국은 싸다'로 결론을 내리면 핵심을 놓친다. 낮은 비용의 가장 큰 장점은 약 하나를 싸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가설을 시험하고, 가능성 없는 후보를 더 빨리 걸러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신약 개발은 본질적으로 실패의 산업이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는 약은 극소수다. 실패하지 않는 기업이 강한 것이 아니라 틀린 가설을 남보다 일찍 버리고 다음 가설로 이동하는 기업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바이오의 경쟁력은 '싸게 성공하는 능력'보다 '싸고 빠르게 실패하는 능력'에 가깝다. 중국의 의약품 규제기관인 NMPA는 지난해 일정 요건을 갖춘 혁신신약 임상시험계획을 30영업일 안에 심사하는 경로를 도입했다. BCG는 이런 경쟁력을 'Decode(해독·분석)-Iterate(반복개선)-Execute(실행·개발)'로 설명한다.
공급망 안보에서 '혁신 의존' 안보로
미국이 중국 바이오를 바라보는 시선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공급망과 데이터가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지난해 말 제정된 2026 회계연도 미 국방수권법 제851조에 담긴 '바이오보안법(BIOSECURE Act)'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난 8월 6일 상원에 공동 발의된 '바이오기술 투자 국가안보법(BINSA)'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신약개발 플랫폼과 임상 연구개발 역량, 지식재산과 노하우까지 바이오기술 범위에 포함시키고, 라이선싱 거래까지 해외투자 통제 대상에 넣으려 한다. 법안은 미국의 자본과 지식재산이 중국의 '제약 혁신 공급망' 장악을 가속해 장기적 '전략적 의존 위험'을 만들 수 있다며 희토류·반도체 의존과 직접 비교한다.
미국의 걱정이 '중국 공장 없이 약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중국의 신약개발 엔진 없이 다음 파이프라인을 채울 수 있는가'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규제를 강하게 할수록 오히려 미국 빅파마가 좋은 중국발 후보물질에 접근하기 어려워지는 딜레마도 생긴다. 중국도 이 변화를 알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장쑤성은 향후 3년간 현지 제약사의 해외 인수합병과 라이선싱, 공동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에서 만든 후보를 글로벌 제약사의 자본과 판매망에 태워 세계시장으로 내보내려는 전략이다.
한국은 무엇을 봐야 할까. 중국의 신약 후보 숫자를 세어 따라가는 대응은 현실적이지 않다. 연구인력과 환자 수, 내수시장과 자본 규모에서 중국과 물량 경쟁을 할 수도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같은 아이디어가 중국에서는 더 많은 후보물질로 만들어지고, 더 빨리 실패 여부가 판정되며, 살아남은 후보는 로슈와 아스트라제네카의 테이블까지 올라가는가다.
한국에도 좋은 과학과 연구자들, 세계 수준의 병원, 임상시험 역량, 바이오의약품 제조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강점들이 하나의 개발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느냐다. 비임상과 초기임상, 글로벌 임상, 규제과학, 공정개발과 제조, 데이터 품질과 글로벌 사업개발이 따로 움직인다면 좋은 후보물질도 그 사이에서 시간을 잃는다. 신약 개발에서 가장 비싼 실패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늦은 실패다.
중국 바이오의 부상을 보며 막연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중국을 여전히 '값싼 생산국'으로 보는 안도감은 더 위험하다. 로슈와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에서 사고 있는 것은 값싼 원료의약품이 아니라 향후 자신들의 경쟁력을 책임질 '다음 신약' 후보다. 어쩌면 한국 바이오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의 신약 숫자가 아니라 중국의 '실패하는 속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