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도입한 담관암 치료제 ‘리픽투’
연내 출시…희귀암 시장 공략 본격화
다음 과제는 상업화·간암 신약 재도전
“책상 서랍에 항암 신약이 FDA 승인됐다는 내용의 유튜브 원고가 3개 쌓여 있었는데 이번에 네 번째로 준비한 원고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진양곤 HLB그룹 이사회 의장
HLB가 19년 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 신약을 확보했다. 다만 주인공은 오랜 기간 공들여온 간암 치료제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들여온 담관암 신약이 도입 2년도 채 되지 않아 먼저 미국 시장 문을 열었다.
이번 허가로 한동안 가라앉았던 투자 심리가 되살아날지, 아니면 남은 과제들이 발목을 잡을지 주목된다. 추석 연휴 직전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23일 HLB는 전 거래일과 동일한 3만10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진양곤 HLB그룹 이사회 의장이 지난 24일 유튜브를 통해 담관암 치료제 ‘리픽투(LYRFIGTU·성분명 리라푸그라티닙)’의 품목허가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유튜브HLB, 19년 만의 FDA 허가로 반전 계기 마련
FDA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HLB의 담관암 치료제 ‘리픽투(성분명 리라푸그라티닙)’의 품목허가를 승인했다. 허가 대상은 이전 치료 경험이 있는 FGFR2 유전자 융합 또는 재배열을 보유한 절제 불가능한 국소진행성·전이성 담관암 성인 환자다.
HLB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항암 신약의 신약허가신청서(NDA)를 FDA에 직접 제출해 허가받은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앞서 유한양행이 개발한 폐암 치료제 ‘렉라자(미국명 라즈클루즈)’는 기술이전을 받은 얀센이 허가 절차를 주도했다.
HLB 입장에서는 역설적인 성공이기도 하다. 회사가 2007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공을 들여온 간암 1차 치료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은 2024년 5월, 2025년 3월, 그리고 올해 7월까지 세 차례 FDA 보완요구서한(CRL)을 받았다. 가장 최근 CRL은 항서제약의 원료의약품 제조시설 문제가 원인이 됐다.
반면 리픽투는 2024년 12월 미국 릴레이테라퓨틱스에서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계약금 500만달러(약 68억원)에 도입한 물질이다. HLB의 미국 자회사 엘레바테라퓨틱스가 기존 임상 자료를 정리하고 허가 전략을 수립해 NDA를 제출한 지 약 9개월 만에 FDA 허가가 나왔다. 내부 개발 자산이 십수 년간 허가를 받지 못하는 동안, 외부 도입 자산이 2년을 채우지 않고 먼저 미국 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진양곤 HLB그룹 이사회 의장은 “리픽투를 2040년까지 14년간 특허를 보장받으면서 글로벌 시판할 수 있게 됐다”며 적응증 확장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엘레바는 이미 FGFR2 이상이 있는 다양한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암종불문(tumor-agnostic) 임상을 진행 중이며, 내년 말 주요 평가지표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달 유럽의약품청(EMA)에도 품목허가신청(MAA)을 제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3일(현지 시각) HLB의 담관암 치료제 ‘리픽투(LYRFIGTU·성분명 리라푸그라티닙)’의 품목허가를 승인했다./FDA경쟁약 대비 높은 반응률·일반승인으로 차별화
리픽투가 경쟁 우위로 내세우는 건 FGFR2 선택성이다. 같은 계열 경쟁약인 미국 인사이트의 ‘페마자이레(성분명 페미가티닙)’와 일본 다이호약품공업 미국 자회사 다이호온콜로지의 ‘리트고비(성분명 퓨티바티닙)’는 FGFR1~4를 폭넓게 억제하는 팬(Pan)-FGFR 억제제다. 리픽투는 FGFR2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해 다른 FGFR 아형 억제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임상 수치도 선발 주자들을 앞선다. 글로벌 1·2상에서 리픽투의 객관적반응률(ORR)은 45.7%, 반응지속기간 중앙값(mDOR)은 11.8개월이었다. 페마자이레는 허가 근거 임상에서 ORR 36%·mDOR 9.1개월, 리트고비는 ORR 42%·mDOR 9.7개월을 기록했다.
허가 형태에서도 차이가 있다. 리픽투는 확증 임상 없이 받는 일반승인이다. 앞선 두 경쟁약은 확증 임상을 조건으로 허가가 유지되는 가속승인을 받았다. 확증 임상에서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허가가 취소될 수 있는 불확실성이 경쟁약에는 남아 있지만, 리픽투에는 그 부담이 없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고인산혈증 발생률이 리픽투가 20.7%로 페마자이레(60%)·리트고비(85%)보다 낮게 나타났다. 다만 리픽투 투여 환자의 31%에서 망막색소상피박리(RPED)가 관찰됐고, FDA는 투여 초기 정기적인 안과 검사를 요구하고 있어 처방 현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작은 시장·로열티·간암 신약 재도전은 부담
남은 관건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상업화 성과다. 엘레바는 올해 4분기 미국 시장에 리픽투를 출시할 예정이다. 담관암은 미국 신규 환자가 연 약 8000명에 불과한 희귀암이고, 이 중 FGFR2 융합·재배열 양성 환자(간내담관암의 10~16%)만이 리픽투 투여 대상이다. 시장 자체가 작은 만큼 초기 판매가격(WAC)과 보험 급여 접근성 등이 처방 규모를 좌우한다.
리픽투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경쟁약인 페마자이레의 미국 WAC가 21일 치료주기 기준 2만1097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비교 기준점이 생기지만, 리픽투는 매일 복용하는 방식이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
원개발사 릴레이에 지급해야 하는 마일스톤과 로열티도 변수다. 릴레이에 남은 잔여 마일스톤은 최대 4억8500만달러이며, 매출에 따라 단계별로 로열티(최고 10%대 초반)를 지급해야 한다. 이번 FDA 승인에 따른 개별 마일스톤 금액은 비공개 상태다.
시장이 더 주목하는 건 간암 신약 FDA 재신청, 즉 ‘형’의 재도전이다. HLB는 원료의약품 제조시설 실사 결과를 확인한 후 간암 신약을 재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실사 종료일(7월 3일) 기준 90일 이내인 10월 1일이 FDA의 통보 시한이다. 재신청 시에는 최신 안전성 데이터도 함께 제출해야 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간암 신약 허가가 이뤄지면 담관암·간암 처방 의료진이 상당 부분 겹치는 만큼 리픽투 판매를 통해 구축한 미국 영업 조직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진 의장은 “보완 사항은 이미 완료됐다”며 관련 작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바로 재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속 파이프라인 데이터도 관건이다. 오는 11월 HLB테라퓨틱스의 신경영양성각막염 치료제(RGN-259) 글로벌 임상 3상 최종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희귀 안과질환 시장으로 치료제가 없는 영역인 만큼 긍정적 결과가 나오면 HLB 그룹 전체에 영향이 크다.
연내 HLB이노베이션 자회사 베리스모의 혈액암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후보물질 ‘SynKIR-310’ 임상 1상 결과도 공개될 예정이다.
진 의장은 “담관암 신약승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글로벌 항암제의 성공적 개발이라는 첫번째 역사를 뒤로하고 더 겸손하고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