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데이터 직군은 선발 강화
지원자 평가 방식도 디지털 전환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영상 인터뷰나 인공지능(AI) 역량검사는 어떤 답변이 좋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없어 준비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은행권 취업을 준비하는 A씨는 최근 채용 공고를 확인할 때마다 부담이 커진다고 했다. 자기소개서와 필기시험, 대면면접을 중심으로 준비해 왔지만 영상 인터뷰와 인공지능(AI) 역량검사 등 낯선 전형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어서다. A씨는 “일반 면접은 예상 질문을 뽑아 연습할 수 있지만 AI가 표정과 말투, 답변 가운데 무엇을 평가하는지는 알기 어렵다”며 “채용 인원은 줄었는데 준비해야 할 것은 더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AI가 은행권 채용의 규모와 인재상, 선발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비대면 금융 확산과 업무 자동화로 일반 행원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AI·데이터 등 디지털 전문인력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자기소개서의 변별력까지 떨어지면서 은행들은 영상 인터뷰와 AI 역량검사 등 새로운 평가 방식도 확대하고 있다.
◇은행원 덜 뽑지만 AI 인력은 늘린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올해 하반기 신입행원 공개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30명, 국민은행은 160명, 신한은행은 130명을 선발한다. 우리은행은 정확한 인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두 자릿수 규모로 채용할 예정이다.
다만 은행별 전체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줄었다. 우리은행이 두 자릿수 최대치인 99명을 선발한다고 가정해도 4대 은행의 하반기 채용 인원은 619명에 그친다. 지난해 하반기 645명보다 최소 26명이 줄어든 것이다.
이같은 채용 축소는 상반기부터 이어졌다. 4대 은행이 올해 상반기 공채로 뽑은 신입행원은 총 48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95명보다 110명(18.5%) 감소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계획을 기준으로 올해 연간 채용 인원은 지난해보다 최소 136명 줄어든다.
일반 행원 채용이 감소하는 것은 은행 업무가 영업점과 단순 사무 중심에서 비대면·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인터넷뱅킹 이용이 늘면서 창구 인력 수요가 감소한 데다 자료 정리와 문서 작성 등 신입행원이 주로 맡았던 반복 업무도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비대면 금융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줄어 전통적인 창구 인력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며 “업무의 중심이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디지털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채용 역시 전문인력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 규모뿐 아니라 은행들이 찾는 인재도 달라졌다. 여러 업무를 두루 맡는 범용 인재보다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AI·데이터 등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을 유니버설 뱅커(UB)와 ICT, 전문자격 등 6개 부문으로 나눴다. 신입행원 채용과 별도로 AI 전문가와 변호사 등 전문 경력직도 수시로 뽑을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지원자의 전공과 역량을 바탕으로 전문 직무 인재를 선발하는 ‘HanAXpert’ 전형을 신설했다. 범용 인재를 먼저 선발한 뒤 부서에 배치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입행 단계부터 직무 전문성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도 기업금융과 개인금융, 테크, 글로벌, 전문 등 7개 부문으로 전형을 세분화했다. 테크 부문에서는 IT 개발과 함께 정보보호·금융보안 인력을 선발하고, 전문 부문에서는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자격 보유자를 뽑는다.
◇AI가 쓴 자소서, 더는 못 믿는다
은행권 채용에서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평가 방식이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문장을 다듬는 지원자가 늘면서 서류만으로 지원자 간 역량 차이를 가려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기소개서를 AI로 다듬고 있다”, “AI 없이 글을 쓰기 어려울 정도”라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반면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표현과 구성이 비슷해 지원자의 경험이나 개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점과 어학성적 등 기존의 정량 지표도 한계가 있다는 게 은행권의 판단이다. 고객을 직접 상대할 때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이나 돌발 상황 대응력, 디지털 직무에 요구되는 문제 해결 능력은 서류상 수치만으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자기소개서 비중을 낮추고 영상 인터뷰와 AI 역량검사를 확대하는 이유다.
신한은행은 올해 하반기 채용에서 기존 자기소개서 작성 문항을 없애고 영상 인터뷰를 도입했다. 지원자가 영상으로 질문에 답하면 AI가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 우선 합격 여부를 판단한다. AI 평가에서 탈락한 지원자에 대해서는 사람이 결과를 다시 확인한다. 지원자가 실제로 보유한 의사소통 능력과 직무 전문성을 확인하는 데 평가의 무게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도입한 AI 역량검사를 이번 채용에서도 활용했다. 기존 서류전형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과 문제 해결 역량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은행권에서 비교적 이른 2018년부터 채용 과정에 AI를 활용했다. 온라인 면접에서 AI가 지원자의 특징과 장단점, 적합 직군 등을 분석하고 이를 대면면접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AI를 채용에 활용하는 목적도 달라졌다. 도입 초기에는 평가자의 주관이나 외부 청탁이 개입할 가능성을 낮춰 채용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근에는 자기소개서와 정량 지표의 변별력이 약해지면서 지원자의 실제 역량과 직무 적합성을 판단하는 평가 도구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채용 인원이 줄어든 만큼 한정된 인원을 더욱 세밀하게 가려낼 필요성도 커졌다.
하지만 지원자에게는 AI 전형이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 차례 응시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 표정과 말투, 시선 처리 가운데 무엇이 점수에 반영되는지도 명확하지 않아서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AI 역량검사의 평가 기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사람이 아닌 AI가 초기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에 은행들은 AI가 단독으로 합격과 탈락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AI 분석 결과를 초기 선별이나 면접 참고자료로 활용하되 담당자가 결과를 다시 검토하는 보완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AI 평가는 지원자의 역량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기 위한 보완 수단”이라며 “AI 결과만으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하지 않고 담당자가 다시 검토하거나 후속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역량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