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의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역사학자 심용환이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에 대해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고증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심 소장은 영화의 내용을 둘러싸고 보수 정치권과 온라인에서 역사왜곡 논란을 제기하는 상황에 대해선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이라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헌법의 상상력>,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등을 집필했으며, 방송 <역사저널 그날>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역사학자다.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9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정도면 음모론이 아니라 판타지”라며 “차라리 앞뒤에 사실 적시를 빼고 보다 과감하고 정교하게 만들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되었다”고 밝혔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당시 사건의 배후와 의혹을 추적하는데,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 가능성을 암시하는 내용이 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심 소장이 제기한 첫 번째 문제는 영화의 역사적 근거다. 그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적 사실은 문세광 저격사건 뿐이라고 주장했다. 육영수 여사와 여고생이 사망한 사건에 관한 기존 설명을 뒤집을 만한 근거가 영화에서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가 암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암살 개입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왜 박정희가 자기 아내를 죽여야만 했는지, 그것이 한일유착관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전혀 논리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시대상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심 소장은 당시 일본의 급진적 정치운동과 동백림 사건의 외교적 파장을 언급하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중앙정보부의 일본 내 납치 장면에 의문을 제기했다.
언론 탄압 장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광고를 중단시키고 언론사 경영진을 통해 기자들을 통제했는데, 영화에는 마치 조직폭력배들이 강압을 행사하는 것처럼 묘사돼 당시 시대적 맥락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세부적인 고증 문제도 거론했다. 당시 신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제작됐는데 영화에서는 한글 중심의 신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신문 제작 장면에 등장하는 타자기와 폐버스를 개조한 주점, 거리 풍경, 등장인물들의 복장 등도 1970년대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영화의 연출 방식이 올리버 스톤 감독,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JFK>와 지나치게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심 소장은 그러면서 386세대의 역사인식을 문제삼았다. 그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386세대의 카더라와 진실 사이를 오가는 확신 때문일 뿐”이라며 “386이 주도했던 역사담론 혹은 뉴라이트 비판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또 1970년대에 관한 연구가 부족하다며 문세광 저격사건을 다룬 논문이 한 편도 없다며 현대사 연구자들의 책임도 언급했다. 그는 “연구되지 않는 과거는 시간이 흐를수록 왜곡되고 편의적으로 해석되며 그렇게 낭만화된다”고 했다.
심 소장의 비판은 결국 이 영화를 어떻게 소비하느냐를 둘러싼 현재 논쟁과 맞물려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 사건의 배후로 묘사했다며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했고, 보수 성향의 온라인 이용자들도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박찬욱 감독과 김성수 감독 등 기존 감독들은 영화의 완성도와 연출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심 소장은 몇 시간 뒤 페이스북에 추가 글을 올려 자신의 비판이 영화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영화를 본 지인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젊은 세대에는 생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 사건 중심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당시의 전체적인 시대상을 조망하기보다 단편적인 정보나 기존의 음모론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르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잘못된 역사관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심 소장은 “영화는 영화로 즐기고, 그것에 대한 보다 깊은 정보는 역사책을 뒤지면 될 노릇이다”라며 “애초에 모든 이야기는 허구와 해석이 엉켜있고 역사인식은 그런 것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 영화를 두고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서로 잘 모르는 얘기 가지고, 또한 딱히 싸울 주제도 아닌데 흥분만 하는 것 같아서 보기에 민망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