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스웨덴의 인디 게임 개발자인 프레야 홀메르는 지난 3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독특한 테트리스 게임 아이디어를 공개했다. 50초 남짓의 개발 영상에는 블록이 떨어져 안착하는 순간 무게 변화에 따라 블록 뭉치가 90도씩 회전하는 모습이 담겼다. 댓글에는 누리꾼들의 출시 요청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반응이 쇄도했다. 그런데 며칠 뒤 홀메르가 개발 중인 작품과 흡사한 게임이 4개나 등장했다. 누군가 생성형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개발자가 자연어로 입력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구현한 것이다. 홀메르는 “내가 만든 작업물을 공개하길 꺼리게 된다”며 “누군가 나타나 전체 콘셉트를 가로챌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28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바이브 코딩이 확산하면서 인디 게임(개인이나 소규모 개발사가 만드는 게임)이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인디 게임은 출시 전 SNS에 개발 과정을 공개해 팬층을 확보한 뒤 정식 공개하는 방법으로 마케팅을 펼쳐왔다. 하지만 AI로 손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원작이 완성되기 전 개발 과정을 섣불리 공개했다가 오히려 모방작의 등장을 부추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AI로 만든 유사 게임이 앱 장터와 게임 플랫폼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게임 개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점은 이런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상용 3D 에셋(게임 제작에 쓰는 3D 모델과 그래픽 요소)과 AI 도구가 보편화돼 특정 게임의 핵심 아이디어만 있으면, 이를 가져와 며칠 만에 게임의 뼈대는 물론 로고와 소개 페이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AI의 게임 개발 능력도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오픈AI가 지난 3일 공개한 ‘GPT-6 아스트라’는 기존 GPT-5와 달리 여러 AI가 기획자·디자이너·프로그래머 역할을 나눠 협업하는 ‘다중 에이전트’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게 설계됐다. AI 비서들이 가상의 게임 개발팀처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게임 개발이 한층 쉬워진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와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아스트라를 활용해 게임을 짧은 시간 안에 구현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외부 그래픽 에셋을 사용하지 않고도 3D 모바일 게임 ‘서브웨이 서퍼’와 1인칭 슈팅 게임(FPS) ‘카운터 스트라이크 2’의 적 봇(Bot) 전투 시스템을 구현하는가 하면, ‘마인크래프트’의 3D 맵이나 ‘GTA6’를 연상시키는 오픈월드 시제품도 만들어냈다.
이런 가운데 게임이 정식 출시된 이후에도 모방작이 플랫폼에 잇따라 등장해 이용자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원작과 모방작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탓에 잘못 구매한 뒤 환불을 요청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닌텐도 스위치 e숍에서 인기 협동 공포 게임 ‘레포(R.E.P.O.)’가 공개되고 두 달 만에 모방작 ‘레포 호러(REPO Horror)’가 올라왔다. 원작과 유사한 로고와 글씨체를 사용하고, 원작의 게임 화면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소개 페이지에 내걸었다. 한 이용자는 레딧에 “레포인 줄 알고 구매했다가 게임을 실행한 뒤 원작과 품질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AI를 활용한 모방작이 늘면서 독창적인 게임들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의 애널리스트 맷 피스카텔라는 “좋은 게임들은 복제돼 묻히게 될 것”이라며 “이용자들이 자신이 익숙하게 느끼는 게임이나 프랜차이즈를 찾게 되면서 새로운 게임이 시장에 진입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모방작을 걸러낼 뾰족한 방법도 없다. 게임의 장르나 규칙, 플레이 방식 같은 아이디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기 어려워 원작의 그래픽이나 코드 등을 직접 베끼지 않고 비슷한 게임을 새로 만들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지만 신고와 유사성 증명 과정도 개발자가 직접 떠안는 경우가 많다. 특히 AI로 모방작을 만드는 속도까지 빨라지면서 소규모 개발자들이 일일이 대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