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회사채 조달비용도 쑥
내년 국가채무 1519.8조로 늘어
정부, 이자비용·차환 부담 가중
국내 채권시장이 미국발 ‘국채금리 발작’의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약 19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며 글로벌 채권금리를 끌어 올리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국고채 금리 역시 28일 연 4.1%를 넘어서는 등 급등세를 나타내자 가계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뿐 아니라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까지 커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미국 장기금리 상승에 국제유가와 물가 불안, 국내 국채 발행 확대에 따른 수급 부담까지 겹치면서 시장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가 있더라도 장기금리가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경우 경제 전반의 금융비용이 예상보다 오랫동안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오전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연 권민수 한국은행 부총재는 “주요국 주가와 달러화 움직임은 비교적 크지 않았으나, 글로벌 국채 금리가 통화정책 기대 변화 등으로 상당 폭 상승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추석연휴를 마치고 이날 개장한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0.6bp(1bp=0.01%포인트) 오른 연 4.112%를 기록했다.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년물 금리는 15bp 급등한 연 4.542%를 나타냈으며 5년물과 30년물도 각각 4.337%, 4.679%까지 올랐다. 회사채 AA- 3년물 금리 역시 4.787%로 9.8bp 상승했다. 이에 코스피는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팔자’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5%대 급락하며 7000포인트가 붕괴됐다.
미국발 국채금리 급등 영향이 컸다. 추석 연휴 기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5.17%를 넘어 2007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물 금리 역시 5.5%를 웃돌며 2004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연휴 기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약 20bp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미국의 금리 상승이 국내 채권시장에 그대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장기금리가 높아지면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미국채의 수익률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 국채를 비롯한 다른 국가 채권의 가격 경쟁력도 약해질 수 있다.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도까지 겹쳐 국내 금리 상승 압력이 강해졌다.
우선 가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국고채 금리가 모든 가계대출 금리와 일대일로 연동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금리 상승은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과 대출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다. 특히 고정·혼합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중 시장금리에 영향을 받는 상품은 금리 상승분이 일정 시차를 두고 반영될 수 있다.
이미 가계신용(가계부채+외상 물품 대금)이 2000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금리가 조금만 올라가도 이자 부담의 절대 규모가 커진다. 특히 변동금리 대출을 보유한 차주나 향후 주택 구입을 위해 신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수요자에게는 금리 상승이 월 상환액 증가로 직결될 수 있다. 시장의 관심도 한은이 언제 기준금리를 내리느냐에서 ‘시장금리가 실제로 얼마나 내려갈 수 있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도 악화할 수 있다.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채 금리는 일반적으로 국고채 금리에 기업별 신용위험을 반영한 가산금리가 더해져 결정된다. 국고채 금리 자체가 높아지면 기업들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부담해야 할 절대적인 금리 수준도 높아진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일수록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국고채 금리에 신용스프레드까지 더해져 시장금리 상승 폭보다 실제 조달금리 상승 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입금이 많은 기업은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차환할 때 과거보다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신규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을 계획했던 기업이 조달비용 상승을 이유로 투자 시점을 늦추거나 규모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고금리가 오래 이어질 경우 취약기업의 이자상환 부담이 커지고 기업부실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정부 재정 역시 금리 상승의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국채 금리가 높아지면 정부가 새로 국고채를 발행할 때 부담해야 하는 이자율이 높아진다. 특히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다시 발행하는 차환 과정에서 시장금리가 기존 발행 당시보다 높다면 정부의 이자 부담은 자연스럽게 커진다.
국가채무 규모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금리 변화에 따른 재정 부담도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국고채 발행 규모를 222조8000억원으로 제시했으며 국가채무는 1519조8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채 발행 규모가 큰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향후 이자비용이 재정의 새로운 부담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
다만 국고채 금리 상승분만큼 당장 수조원의 이자비용이 늘어난다고 계산해서는 안 된다. 기존 국채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미 낮은 금리로 발행돼 있고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부터 순차적으로 높은 금리로 차환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리가 장기간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 신규 발행과 차환 물량이 누적되면서 정부의 이자지출 부담이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자지출이 늘어나면 경기 대응이나 복지·산업 지원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채와 회사채 금리, 주담대 금리까지 연쇄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며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높은 국채 금리와 국제유가 상승,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기보다는 재정건전성을 관리하고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을 높여 금리 상승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체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고채 금리 상승은 결국 가계·기업·정부 모두에게 ‘비싼 돈의 시대’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경고 신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