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핵무장 논쟁 커질수록 한미 원자력·군사협력 공간 좁아진다

요약
  • 북한의 핵 고도화와 미국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내 자체 핵무장론이 대두되고 있으나,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고 외교적·경제적 파장을 초래할 수 있다.
  • 무분별한 핵무장 공론화는 오히려 한미 원자력 및 군사 협력의 공간을 좁히고 현실적인 안보 수단 확보를 제약하는 역설을 낳는다는 지적이다.
[총력분석 | “북 核무기 57개”…격랑의 한반도] 핵 개발, 핵 공유 韓엔 불가…“핵무장 로망”이 놓치는 것들

● 北 핵고도화·美 역할 불확실 속 韓 핵무장론 부상, 국민 65% 찬성
● 英 독자 핵무장 모델, NPT 발효 전 개발한 핵이라 재현 불가
● 전술핵 재배치, 오히려 北 선제타격 표적 되고 中 반발 초래
● 인도 ‘평화적 핵실험’ 이후 日式 핵잠재력 갖추기도 어려워
● 핵무장 공론화 자체가 한미 원자력·첨단기술 협력에 불이익 초래
● 핵무장은 동맹 파기 등 최악 상황 대비한 최후 수단으로


2023년 3월 노동신문이 공개한 북한의 핵탄두 추정 물체의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당시 노동당 총비서)이 북한군 관계자에게 핵무기병기화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노동신문 2023년 3월 노동신문이 공개한 북한의 핵탄두 추정 물체의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당시 노동당 총비서)이 북한군 관계자에게 핵무기병기화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노동신문
오늘날 한국 안보는 북한의 핵무장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인 북핵과 관련한 대응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핵은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자체 핵무장, 미군 전술핵 재배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 일본식 핵잠재력 등 다양한 핵 옵션을 검토하고 추진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엄격한 핵무기 사용 원칙과 의사결정 구조를 감안할 때 막상 우리가 필요할 때 작동할지 알 수 없는 ‘찢어진 핵우산’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게 되면 미국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져, 대북 핵무기 사용을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도 있다. 결국 한국이 독자적인 핵억제 수단을 가져야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국민은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한국갤럽이 8월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핵무기 보유 주장 찬성’ 답변은 65%, ‘반대’ 응답은 30%로 각각 나타났다(무선전화 가상번호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응답률 9.5%). 왜 그럴까. 한국은 분단국가인 동시에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로서 매우 열악한 지정학적 환경에 놓여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대외관계 역사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당하거나 위계적인 상하 관계를 강요받는 경험으로 점철돼 왔다. 이른바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라는 비유가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을 대변한다.

최근 한국의 국력이 크게 신장하면서 중견국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자국의 안보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기 어려운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다. 여기에 북한의 핵무장이 심화하면서 한국의 안보 취약성은 더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핵무장을 긍정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핵무장론, 韓 안보에 위협 될 수 있어핵무장 지지 여론은 그 자체로는 일견 무해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초래할 외교적·경제적 파장은 간단치 않다.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군함·전투기·전차와 같은 재래식 무기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한국의 핵 개발 결정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중심으로 한 국제 핵비확산 체제와 수출통제 체제는 물론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 국제통상과 주변국 관계에까지 광범위한 충격을 준다. 핵무장은 단순한 무기체계의 추가가 아니라, 한국의 외교·경제·통상·안보 전략 전반을 다시 짜야 하는 국가전략의 변혁적 전환을 요구한다.

한국이 흔히 참고 모델로 거론하는 영국의 독자 핵무장, NATO의 전술핵 배치와 핵 공유, 일본의 핵잠재력 보유 등은 각각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고유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외교적·기술적 조건이 있었다. 해외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 사례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까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핵 옵션에 집중하다가 정작 필요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한미 핵협의그룹 확대, ​재래식 자강 국방력의 확충, 북핵 외교와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핵 위협 완화, 지역 안보협력, ​그리고 민수용 핵연료주기 역량 확보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무분별한 핵무장론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안보 옵션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기면서, 정작 필요하고 실현 가능한 국익 추구를 제약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핵무장론의 가장 큰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요구가 오히려 한국이 현실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안보 수단과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을 좁힐 수도 있다.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체 핵무장을 위해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핵무장한 ‘영국식’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국의 핵무장 역사와 국제정치 현실을 보면, 한국이 같은 경로를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은 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국가이며, NPT 발효 이전에 핵무장을 했다. 한국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러한 역사적·제도적·정치적 차이를 무시하고,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영국식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경북 성주군 기지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모습. 동아DB 경북 성주군 기지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모습. 동아DB
해외 핵 옵션 모델,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NPT 제10조에 따라 합법적으로 탈퇴하고 핵무장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탈퇴 절차가 있다는 것과 국제사회가 핵무장을 정치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NPT 탈퇴가 경제제재와 외교적 압박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유엔 안보리는 NPT 탈퇴와 핵 개발을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해 제재를 결의할 수 있다. 이때 한국은 미국·일본·EU의 경제·금융 제재, 원자력·첨단기술 협력 중단, 한미동맹 훼손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이 북한식으로 제재 감내를 전제로 핵무장을 추진할 수는 없다.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와 ‘NATO식’ 핵 공유도 한국에서 실현하기 어렵다. 찬성론자들은 “전술핵을 배치하면 북핵을 억제하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 요구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존 확장억제에 더해 얻을 추가 억지 효과가 배치에 따른 안보·외교·경제적 비용보다 큰지, 실제 배치가 가능한지 따져야 한다.

우선 한국의 짧은 종심과 좁은 영토로 인해 전술핵 배치 기지는 북한의 우선적인 타격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반발도 클 것이다. 한국이 대북용이라고 설명하더라도, 미국이 통제하는 전술핵을 중국은 자국을 겨냥한 전략자산의 일부로 인식할 수 있다. 중국이 이를 공격무기로 간주하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보다 더 강력한 경제적 보복이 예상된다.

국내에 전술핵 배치 부지를 확보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군사시설, 사드,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등에 대한 주민 반발을 감안하면, 전술핵 배치 역시 심각한 지역갈등을 초래할 전망이다. 핵 공격의 표적이 된다는 우려가 더해지면 이런 갈등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대한 반감으로 번질 수도 있다.

1958년 한반도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은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미국은 1991년 한국 내 전술핵을 철수시켰다. 한국 국방력의 증대로 전술핵이 불필요해진 데다, 미국이 전략핵 중심의 핵억지 태세로 대외정책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직 전략핵 중심의 핵억지 전략을 견지하고 있다. 국내 전술핵 도입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오른쪽)과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6월 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 안보 분야 후속조치 협의를 위한 회의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 회의에선 한국의 박윤주 외교부 1차관(오른쪽)과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6월 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 안보 분야 후속조치 협의를 위한 회의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 회의에선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비롯해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 등이 논의됐다. 뉴스1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핵 도입의 현실적 제약을 인식한 일부 핵무장론자는 ‘일본식’ 핵잠재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축·재처리 능력을 갖춰 필요할 경우 단기간에 핵무장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얼핏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일본이 핵연료주기 역량을 확보한 과정과 조건을 보면 이 또한 재현이 쉽지 않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에너지 안보와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핵연료주기 역량 강화를 추구했다. 일본이 1967년 제시한 ‘비핵 3원칙’(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과 최고 수준의 핵투명성 보장은 핵연료주기 도입의 국제정치적 기반이 됐다.

1974년 인도가 ‘평화적 핵실험’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자 국제사회는 핵연료 농축·재처리 기술 통제를 강화했다. 이를 극복한 나라는 북한·이란 정도다. 한국이 핵연료 농축·재처리 역량을 확보하려면 이러한 핵 비확산 장벽을 극복하고, 농축재처리 협력의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상적인 평화적 이용 목적의 협력 확대도 상대국에 대한 설득이 필요한 데, 핵잠재력을 앞세운다면 민수용 농축·재처리의 길이 더욱 멀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국내의 핵무장 주장뿐만 아니라 핵잠재력 주장도 한국이 민수용 농축·재처리 역량을 획득하기 위한 외교에 중대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진정 농축·재처리 역량이 필요하다면, 실체도 불분명한 ‘일본식’ 핵잠재력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식’ 평화적 민수용 농축·재처리 역량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다.

핵무장은 플랜 C, 지금은 플랜 A·B에 집중할 때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은 한국이 핵 개발을 감행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경제적·외교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어차피 핵무장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국내 핵무장 주장을 무시하거나 핵무장론을 이유로 원자력 협력이나 첨단기술 협력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핵무장 주장이 정당과 정치인의 공식 입장이 되고, 농축·재처리나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미래 핵무장과 연결되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경계 수준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핵 확산 가능성이 구체화하면 핵무장론은 더는 공짜가 아니다.

이 경우 한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핵 비확산 신뢰성이 훼손되고 한미 원자력 협력의 공간은 좁아지며 협력의 문턱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 실제 필요한 민수용 농축·재처리 역량 확보, 핵추진잠수함 개발과 핵연료 공급 사업마저 ‘미래 핵무장을 위한 사업’으로 의심받게 된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플랜 A와 B다. 플랜 A는 미국의 확장억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실질화하고, 한국의 비핵 전력 증강을 통해 한미동맹과 한국군의 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플랜 B는 비군사적 방법으로 핵 위협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조속히 비핵화 외교를 재개해 우선 ‘북핵 중지’를 추진하고, 남북 평화 공존을 추구함으로써 군사적 충돌과 핵 사용 위험성을 제거해야 한다.

국가라면 마땅히 최악의 안보 상황에 대비한 플랜 C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따른 안보 공약 이행을 거부하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핵우산 제공을 거부하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핵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 다만 이 옵션은 정치적 논쟁의 소재나 구호가 아니라, 최고 수준에서 관리되는 국가 비상계획의 일부여야 한다. 지금 시급한 것은 플랜 C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플랜 A와 B의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