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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러시아, 줄인다던 국방비 27% 증액… 병력·세금·빚까지 끌어모아 ‘더 큰 전쟁’ 채비

요약
  • 러시아가 당초 계획을 뒤집고 내년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전시 경제 체제를 상시화하고 있다.
  •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증세와 국채 발행, 병력 증원 등을 단행하면서 민간 경제와 재정 건전성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점진적 국방비 축소 계획 폐기
재정 건전성 포기한 전쟁 우선주의
국채 43% 늘리고 징세 폭탄
민간 희생 딛고 군사력 팽창 택해

국방비를 줄여 나가겠다던 러시아 정부가 계획을 뒤집고 내년 국방예산을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5년 만에 최대 규모로 늘려 잡았다. 지난해 13조5000억루블(약 221조원)로 잡아뒀던 2027년 국방비는 17조1000억루블(약 280조원)로 27% 급증했다. 러시아는 국방 예산 증액과 동시에 무기와 탄약을 대량 생산하고 대규모 병력을 동시 육성해 거대 군사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사실상 전시 경제 체제를 상시화하면서, 이전 같은 평시 경제로 복귀를 포기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27일 러시아 모스크바주 모니노에서 열린 군사 역사 축제에서 러시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복장을 한 재현 참가자들이 전투 재현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러시아 모스크바주 모니노에서 열린 군사 역사 축제에서 러시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복장을 한 재현 참가자들이 전투 재현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이터는 28일(현지시각) 러시아 정부 예산 문건을 입수해 러시아가 앞으로 3년 동안 국방 항목에만 50조루블(약 805조5000억원)을 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해 가을 2026~2028년 예산 계획을 내놓으면서 2026년 국방비를 명목 기준으로 줄이고, 2027년 국방비도 2025년 수준인 13조5000억루블에 묶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년 국방비는 당초 계획보다 30% 가까이 뛰었다. 불어난 국방비 17조1000억루블은 한국 정부가 편성한 2027년 국방예산 정부안(73조2777억원)에 비하면 3.8배에 이른다. 올해 러시아 국방비 12조1000억루블과 견줘도 한 해만에 국방비가 41% 증가했다. 기밀로 분류돼 다른 항목에 숨겨진 치안 유지, 점령지 지원 등 전쟁 관련 비용까지 합치면 실제 내년에 집행될 군사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는 국방비 급증으로 올해 러시아 재정 적자 전망치 역시 당초 국내총생산(GDP) 대비 1.6%에서 3.2%로 2배 뛰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해에도 적자 목표를 GDP 대비 0.5%로 잡았다가 두 차례 수정 끝에 2.6%로 마감했다. 러시아 정부는 다음 달 1일까지 국방비 증액을 핵심으로 한 이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별도 대통령령에 서명해 러시아군 전체 정원을 244만1630명으로 늘리고, 전투 병력을 155만500명으로 확대했다. 러시아 독립매체 메두자 집계에 따르면 올해 3월·6월·7월에 이은 네 번째 증원으로, 7개월 새 늘어난 군인 정원은 5만500명에 달한다. 러시아 군인 정원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반년 뒤였던 2022년 8월 115만명이었다가, 4년 만에 약 40만명(35%)이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앞으로 공세 강도를 높이거나, 잠재적인 추가 군사 작전을 수행할 역량을 선제적으로 비축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천문학적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러시아는 민간 경제를 무자비하게 쥐어짜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오일머니로 전쟁을 치르던 구조가 제재로 한계에 달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석유·가스 세입 전망을 8조9000억루블에서 7조6000억루블로 15% 낮췄다. 대신 지난 24일 공개한 예산 법안을 보면 증세안이 줄줄이 담겼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 등 ‘비우호국’ 투자자가 받는 배당금 세율을 15%에서 35%로 2배 넘게 올리기로 했다. 세계 2위 금 생산국인 러시아는 내년부터 금 생산 업체에 20%, 금속 업체에 30%의 초과이익세를 새로 물린다. 러시아 국민들에겐 예금 이자와 주식 매매 차익 같은 개인 금융소득에 누진세를 매긴다. 사실상 광범위한 ‘전쟁세’ 징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러시아 내 금융소득 누진세 대상이 약 400만명이고, 이들에게 정부가 해마다 5000억~7000억루블(약 8조~11조2500억원)을 추가로 거둘 수 있다고 추산했다.

야니스 클루게 독일국제안보연구소(SWP) 연구원은 FT에 “이 조치들을 모두 합치면 GDP의 0.5%포인트 안팎이 걷힌다”며 “큰 액수는 아니지만 러시아 재무부는 추가 세수를 찾으려 돌멩이 하나하나까지 뒤집어 보고 있다”고 했다.


증세만으로 구멍 난 재정을 덮기 역부족인 러시아는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국채 발행 규모를 전년 대비 43% 늘린 7조7000억 루블(약 123조 6000억원)로 잡았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올해 19.9%에서 내년 21.7%로 올라, 러시아 당국이 안전선으로 여기는 20%를 넘길 예정이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서방 제재로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오기 어려워진 탓에 국내 금융시장에서 두 자릿수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중 자금이 수익은 높지만 건전성이 낮은 정부 국채로 빨려 들어가며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중이다. 특히 유동성(자금)이 마른 민간 중소기업과 소비재 산업에선 고금리와 임금 상승, 지독한 구인난에 허덕이는 양극화가 심해졌다.

여기에 더해 국가의 비상금 역할을 하던 국부펀드(NWF)마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침공 직전 2022년 2월 9조7000억 루블에 달했던 국부펀드 유동 자산은 현재 약 4조 루블 수준으로 반토막 이상 쪼그라들었다. 그런데도 러시아 정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올해에만 국부펀드 유동 자산 11%에 달하는 4590억 루블을 추가로 헐어 썼다.

CEPA 소속 알렉산더 콜리안드르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푸틴 행정부가 전쟁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국가 경제 미래를 담보로 잡고 있다”며 “2027년 예산안은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미래에 지불할 청구서를 더 키우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보유한 한정된 자본과 노동력, 설비를 비(非)생산적인 군수 부문에 집중하면서 민간 경제를 희생시키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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