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인터뷰룸에서 아담 슬래브니(왼쪽) 파스칼 대표와 서진영 파스칼 CTO가 조선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임지훈 기자미국 보스턴의 냉각 기술 스타트업 파스칼(Pascal)은 에어컨과 냉장고에 쓰이는 기체 냉매를 고체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부 고체 소재는 압력을 가하면 온도가 변하는데, 이 성질을 이용해 냉각하는 방식이다. 파스칼은 2023년 하버드대 화학과 재러드 메이슨 교수 연구실에서 나왔다. 메이슨 교수와 당시 이 연구실 박사후연구원이던 애덤 슬래브니 최고경영자(CEO), 박사과정생이던 서진영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함께 창업했다.
2024년에는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화학·재료·에너지 분야 권위지 C&EN(Chemical & Engineering News)이 ‘주목할 스타트업 10곳’에 이름을 올렸다. 서 CTO는 이달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하는 ’35세 미만 혁신가(Innovators Under 35)’에 이름을 올렸다.
2024년 미국 벤처캐피털 엔진벤처스로부터 800만달러를 처음 유치했고, 최근에는 LB인베스트먼트·사제파트너스 등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약 650만달러를 추가로 확보했다. 한국을 찾은 두 사람을 최근 조선일보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체 냉매로 냉장고 등에 활용
- 이번 방한 목적은?
(슬래브니 CEO)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에어컨·냉동 기술을 만든다. 한국은 이 분야 산업이 강하다. 관계를 쌓으려고 왔다. 생산 능력과 기술력 등을 따져 보니 미·중·일보다 한국이 가장 잘 맞았다. 압축기·밸브·덕트 같은 핵심 부품 회사부터 에어컨·냉장고 완제품 회사까지 두루 만났다.”
- 고체 냉매는 무엇인가?
(서 CTO) “냉매는 압력을 받으면 온도가 바뀌는 재료다. 지금까지는 프레온가스나 이산화탄소, 프로판 같은 기체를 썼다. 그러나 기체 냉매는 불이 붙을 위험,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문제, 건강과 안전 문제를 안고 있다. 규제도 많다. 우리는 똑같이 압력에 반응해 온도가 바뀌는 고체를 쓴다. 고체는 누르면 차가워지는데 그 냉기로 냉장고나 방을 식힌다. 같은 부피에 담을 수 있는 에너지가 기체보다 많아 효율이 더 높다.”
-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서 CTO) “노트북 배터리를 떠올리면 된다. 우리는 고체 냉매를 모듈로 만든다. 몇 개를 쌓느냐에 따라 에어컨도, 히트펌프(열을 옮겨 냉방과 난방을 함께 하는 장치)도, 냉장고도 된다. 고체 냉매는 생소하게 들리지만 역사가 길다. 197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많이 연구했다. 다만 그때는 규제나 환경 문제가 크지 않아 고체 냉매를 상용화할 이유가 없었다. 최근엔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젊은 학자가 많다.”
- 데이터센터에도 활용 가능하겠다.
(슬래브니 CEO) “데이터센터는 냉각이 많이 필요하고 효율도 높아야 한다. 우리에게 아주 좋은 시장이다. 다만 데이터센터용 장비는 워낙 커서 아직 만들지 않았다. 규모를 키우는 건 시간과 자본의 문제다.”
- 경쟁사는 어디인가?
(슬래브니 CEO) “비슷한 기술을 하는 작은 회사가 독일, 영국 등에 몇 곳 있다. 우리 강점은 낮은 압력으로 냉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거대한 프레스 대신 시중에서 파는 부품으로 15명 직원이 한몸처럼 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만든다. 특허도 내고 있다.”
한 정거장 거리 투자사와 연결
서 CTO는 경기도 일산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서울대 화학부를 졸업한 뒤 2018년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슬래브니 CEO와 창업했다.
-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서 CTO) “나는 메이슨 교수 연구실의 첫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슬래브니 CEO는 연구실의 첫 박사후연구원 중 한 명으로 사수 같은 존재였다. 코로나 때 하버드 일대가 셧다운되면서 둘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공동 창업까지 하게 됐다.”
- 고체 냉매 연구는 왜 시작했나?
(서 CTO) “나의 박사학위 주제로 처음엔 창업 생각이 없었다. 개념이 재미있었고 순수 과학으로 재료를 연구했다. 지금 냉장고·에어컨의 냉각 원리는 150년 가까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효율도 물리적 한계에 가깝다. 그런데 에너지 전환으로 냉각 시장이 커지고 판이 바뀌고 있다. 새 재료와 새 방식으로 해볼 일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 투자는 어떻게 받았나?
(서 CTO) “슬래브니 CEO는 이걸로 냉장고를 만들고 싶어 했다. 연구실에서 첫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처음엔 잘 안 됐다. 하버드에는 기술 이전과 창업을 돕는 담당자가 있다. 그가 특이하게 보고 벤처 투자사와 연결해 줬다. 엔진벤처스는 하버드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다. 같은 생태계 안에 있다 보니 운 좋게 이어졌다. 졸업 전 진로를 고민하던 때와 타이밍이 맞았다.”
- 엔진벤처스는 어떤 곳인가?
(슬래브니 CEO) “주로 MIT·하버드에서 나온 회사에 투자한다. 보스턴에서 꽤 큰 곳이다. 운용자산이 10억달러가 넘고 펀드를 세 개 만들었다. 초기에 우리를 믿고 투자를 이끌어 줘 무척 고맙다.
“한국 기업, 빠르고 솔직”
- 한국이 이런 기술을 키울 환경은 되나?
(서 CTO) “한국엔 이 분야 인재가 많다. 기계공학 신진 연구자들이 이 분야 연구를 시작했다. 카이스트 등에 극저온 냉각을 연구한 1세대 학자들이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같은 국책연구소도 새 냉각 기술을 계속 찾는다. 파스칼은 미국 회사라 투자를 더 많이, 더 빨리 받을 수 있다. 둘을 이으면 시너지가 난다고 본다. 최근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김성곤 교수 등과도 협업한다. 내년쯤이면 하나씩 결과가 나올 것이다.”
- 한국 기업과 일해 보니 어떤가?
(슬래브니 CEO) “나는 성격이 몹시 급하다. 한국 기업도 똑같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당장, 아니 어제부터 하고 싶어 한다. 스타트업이 쓸 수 있는 건 시간뿐이다. 최대한 빨라야 한다. 솔직히 미국 기업은 시간을 끌지만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다. 솔직하고 소통이 빠르다. 중요한 것만 빨리 짚어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 향후 목표는?
(슬래브니 CEO) “우리 기술은 세상에 나올 자격이 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할까 생각해 봤다. 답은 ‘아무도 없다’였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한다. 이 기술이 최대한 많은 곳에 쓰이면 무척 기쁠 것이다.”
(서 CTO) “재료에서 출발한 기술이 실제로 사람들 손에 닿는 걸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100년 동안 어떻게 기여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