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증시에서는 어떤 종목을 보유했느냐에 따라 투자 성과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주요 빅테크 7개 종목은 한동안 다른 지수보다 부진했지만, 7월 말 이후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다른 지수들은 같은 시기부터 대체로 힘이 빠졌다.
도이체방크가 해당 기간의 수익률을 계산한 결과, 대형 성장주와 기술주는 14% 오른 반면 S&P500의 나머지 종목들은 3% 하락했다. 증시 전체가 고르게 오른 것이 아니라 기술주에 상승세가 집중된 것이다.
기술주 비중 높지만 과거 고점에는 못 미쳐
기술주가 빠르게 오른 만큼 투자자들이 이미 관련 종목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도이체방크가 집계한 대형 성장주·기술주 포지셔닝 지표는 최근 다시 기준선인 0을 넘어섰다. 투자자들이 현재 기술주를 평소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앞서 기술주 쏠림 현상이 크게 나타났던 시기와 비교하면 현재 포지셔닝은 당시 수준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도이체방크는 이를 근거로 기술주를 향한 자금 이동이 더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월가 역시 기술주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면서도 각 기업이 실제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있다.
엔비디아, AI 투자와 자사주 매입 병행 가능
엔비디아 (NVDA)는 자사주 매입 규모를 1천500억 달러 추가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 남아 있던 매입 한도까지 합치면 앞으로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2천350억 달러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면서도 AI 기술과 생산시설에 필요한 투자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보였다.
씨티는 AI 투자와 자사주 매입을 모두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엔비디아가 지난 분기 사업 운영과 설비투자에 자금을 사용하고도 약 486억 달러의 현금을 남겼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으로도 AI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현금으로 기술 투자와 주주환원을 함께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씨티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발표가 현금 창출 능력에 대한 엔비디아의 자신감을 보여준다며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애플, AI 에이전트 확산에도 경쟁력 유지 전망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메타의 AI 에이전트 ‘뮤즈’가 애플 (AAPL)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현재 아이폰 이용자가 물건을 구매하려면 직접 검색하고 앱을 열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앞으로 뮤즈에 상품 검색과 구매를 맡기면 아이폰은 계속 사용하더라도, 어떤 상품을 보여주고 어디에서 결제할지는 메타의 AI가 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고객을 상품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도 뮤즈를 운영하는 메타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러한 우려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애플은 아이폰과 운영체제, 각종 서비스를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어 AI도 기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애플이 기기에서 사용하는 AI 시장의 최종 승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며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스페이스X, AI 컴퓨팅과 스타십 성장성 부각
AI를 둘러싼 월가의 관심은 지상 데이터센터를 넘어 우주산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TD코웬과 CLSA는 같은 날 스페이스X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며 모두 ‘매수’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두 회사가 주목한 사업은 달랐다.
TD코웬은 스페이스X가 지상에서 AI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는 사업에 주목했다. 이 사업이 단기적으로 회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매출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구글과 앤트로픽 등을 주요 고객사로 언급하면서, 지상 설비가 확대되면 2027년 1분기에는 AI 컴퓨팅 사업이 스페이스X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CLSA는 우주사업의 출발점인 스타십에 주목했다. 스타십을 기반으로 발사사업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통신과 AI 사업을 키운 뒤 벌어들인 자금을 다시 사업에 투자하는 구조를 기대했다.
TD코웬은 가까운 시기에 빠르게 늘어날 AI 컴퓨팅 매출을 높게 평가했고, CLSA는 스타십을 기반으로 통신과 AI 사업이 함께 성장할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오토존, 정비소 부품 공급사업 성장 기대
월가의 관심은 기술주 밖으로도 이어졌다. 번스타인은 자동차 부품업체 오토존 (AZO)에 대해 ‘시장수익률 상회’ 의견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번스타인이 주목한 분야는 소비자가 직접 부품을 구입해 자동차를 수리하는 사업이 아니라, 정비소에 부품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소비자가 차량을 정비소에 맡기면 정비소 역시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매해야 한다. 번스타인은 오토존이 정비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시장에서 추가로 성장할 여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크로거, 비용 절감과 광고사업 성장 주목
식료품 유통업체 크로거 (KR)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멜리어스는 크로거의 투자의견을 ‘보유’에서 ‘매수’로 상향했다.
멜리어스는 크로거가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많다고 분석했다.
상품을 들여오는 비용과 재고 손실을 줄이고 매장 운영을 더욱 효율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사업에서도 추가 수익을 창출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비용을 절감하고 광고 수익을 늘리면 소비자에게 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면서도 회사의 이익을 키울 수 있다. 멜리어스는 이러한 가능성에 비해 현재 크로거 주가가 낮게 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기술주 쏠림 속 기업별 성장 여력 주목
최근 월가 리포트를 종합하면 시장의 관심은 여전히 기술주에 집중돼 있다. 다만 단순히 AI나 기술주라는 이유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모습이다.
기술주 밖에서는 비용 절감이나 사업 효율화 등을 통해 기업이 자체적으로 이익을 늘릴 수 있는지가 주요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전체의 방향도 중요하지만 같은 업종 안에서도 기업별 성장 가능성과 수익성 개선 여력에 따라 주가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은비 외신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