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단독] 中 혹할 조건 걸어 ‘인재 사냥’…삼전닉스맨 이때 먹잇감 됐다

요약
  • 중국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배터리 핵심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으며, 국가정보원은 첨단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국내 석학들을 대상으로 주의를 안내하고 있다.
  • 중국 업체들은 퇴직 전후의 임직원과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마케팅·영업 직군까지 접촉해 수십 년간 쌓아온 공정 노하우를 노리고 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29일 산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중국 정부가 영입 대상으로 점찍은 국내 석학 약 80명을 파악해 국내 첨단기술의 유출을 막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영입 대상에는 반도체 분야 교수가 가장 많고 배터리 등 다른 분야 교수들도 포함됐다고 들었다”며 “국정원이 중국 측 영입 제안에 주의하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해외 인재에게 연구비와 정착금 등을 지원하는 ‘천인계획(千人計劃)’등으로 과학자·기술전문가 등을 유치해왔다. 국내 학계 인사들도 ‘중국발 러브콜’은 일상다반사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와 미국 IBM에서 반도체 연구개발을 거친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저장성 등 중국 각 지역에서 주 1회 정도 영입 메일이 온다. 연봉 3억원과 연봉에 상응하는 성과급, 연간 약 10억원의 연구비에 집과 차까지 제시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법 유출과 별개로 과학자를 우대하는 중국의 정책은 국내 연구환경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충분히 혹할 만한 보상 조건을 내건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국내 기업 인력에게도 직군을 가리지 않고 접근한다. 비즈니스 인맥 서비스 ‘링크드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경력이 적혀 있으면 중국 기업이나 헤드헌터들의 접촉이 몰린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꼭 엔지니어뿐 아니라 마케팅·영업 직군도 대상”이라며 “(중국 업체 입장에서는) 각 직군마다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헤드헌터들은 특히 퇴직 전후를 파고든다. 국내에서 재취업이 마땅치 않은 인력에게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것이다.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삼성전자 전 임원은 “임원들은 퇴직 직후가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데, 반도체 업황이 나빠져 회사를 떠나는 임원이 늘면 이때 중국 헤드헌터들이 접촉한다”고 귀띔했다.

중국 업체가 사려는 건 국내 기업들이 수십 년 간 쌓아온 ‘공정 노하우’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동일한 설비를 갖추더라도 세부 공정을 미세 조율하고 불량 원인을 잡아내는 숙련도에 따라 수율이 천차만별로 갈리기 때문이다. 이병철 삼성전자 전 부사장은 “기술은 돈과 시간, 사람을 들여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라며 “중국 입장에선 한국 연봉의 몇 배를 주더라도 핵심 인재를 데려오면 그 과정을 건너뛸 수 있으니 남는 장사”라고 했다.

영입된 기술자들은 또 다른 한국 인력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보유한 기술·경험을 건넨 뒤 중국기업 내 입지가 좁아지면 인력 알선 브로커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들은 같이 일했던 옛 동료들을 중국 업체에 소개하며 대가를 받아 생계를 잇는다고 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해외 기업 이직 자체를 기술 유출로 단정할 순 없다. 문제는 회사의 영업비밀이나 핵심기술을 무단으로 유출해 사용·활용하는 경우다. 강기중 한국산업보안한림원 회장은 “(재판에 넘겨진) 사례를 보면 단순히 경험을 머릿속에 담고 나간 게 아니라 자료를 내려받거나 베끼고, 따로 정리해 가져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기억한 걸 풀어낸다고 영업비밀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예컨대 개별적으로는 공개된 정보라도 이를 합친 전체는 공개해선 안 되는 정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출입 검색과 휴대전화 촬영 차단, 문서 등급화, 외부 전송 통제 등으로 자료 반출을 막고 있다. 퇴직 시 비밀유지 서약을 받고, 핵심 인력에게는 전직금지 약정도 받는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술이 유출된 뒤에는 피해를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보안 강화 등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병철 전 부사장은 “임직원 대상 교육을 더 철저히 하고, 퇴직한 핵심 기술 인력에 대한 사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영근·김인경·김수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