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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삼킨 1mm 재선충…과학은 소나무 못 지키나 [최준호의 사이언스&]

요약
  • 한반도가 제3차 대발생기를 맞은 소나무재선충병으로 황폐화되면서 올해 피해 고사목이 177만 그루에 달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 90% 이상의 효과를 가진 예방 주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화, 기후변화, 방제 인력 및 예산 부족, 예찰 공백 등으로 인해 확산세가 통제되지 않고 있다.
  • 거세지는 산림당국을 향한 비판 여론 속에 방제기술의 현장 적용 한계와 미생물 제제 검증 등 다각적인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
22일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우포늪 인근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붉고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곳곳에 보인다. 송봉근 객원기자

22일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우포늪 인근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붉고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곳곳에 보인다. 송봉근 객원기자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와 국도 20번을 따라 서쪽으로 10여 분을 달리니 ‘우포늪생태관’과 ‘따오기품은 세진마을’을 안은 해발 50~70m의 야산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낮 최고 기온 29도. 가을 단풍이 들기엔 아직 여름 같은 날씨지만 동산은 채도를 잃어가는 천연색. 초록이 빠져나가 버린 붉은색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미 백골의 고사목이 되어버린 소나무들이 동산 골짜기 위아래를 휘감고 있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22일 중앙일보 취재진이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를 찾았다. 2018년 세계 최초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과, 2024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창녕 우포늪을 품은 일대 야산이다. 이곳은 소나무재선충병의 소리 없는 전장(戰場)이었다.

소나무재선충병 3차 대발생 #피해고사목 올해만 177만 그루 #효과 90% 예방주사도 있지만 #빈틈 없는 방제 사실상 어려워

 한반도가 소나무재선충병으로 황폐화하고 있다. 이른바 '제3차 대발생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지난 6월 산림청이 발표한 ‘2026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결과 발표’에 따르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고사목은 전국적으로 177만 그루가 발생했고, 재선충병이 집단·반복 발생하거나 산불 등으로 피해 우려가 큰 특별방제구역은 19만 헥타르(ha)로 확대됐다. 이는 전년 대비 피해 고사목이 28만 그루 증가한 수치다. 재선충병은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공식통계는 없지만, 남한 내에서 파주·연천 등 비무장지대(DMZ) 턱밑 민통선 구역까지 북상했다. 재선충을 옮기는 하늘소가 휴전선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도 재선충병 대발생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부산 금정산에서 시작한 재선충병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확인됐다. 일본에서 들여온 목재에 재선충이 숨어있었던 게 원인이었다. 재선충병은 이후 영남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다 2000년대 중반 충청지역을 건너뛰고 경기 광주 등에 나타났다. 누군가 재선충병이 든 소나무를 이동시켜 퍼졌다는 뜻이다. 2007년(137만 그루)과 2014년(218만 그루) 두 차례 재선충병이 크게 번졌다가 2021년에는 31만 그루까지 줄어들며 진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2023년 이후 연간 100만 그루를 웃돌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166개 시·군·구에서 재선충병 발생이 확인됐다. 지난해 대비 12개 기초지자체가 더해졌다.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이 크기 1㎜에 불과한 소나무재선충을 잡을 수 없는 걸까.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유전자가위가 염기서열까지 편집하는 시대가 됐지만, 소나무재선충병은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 38년 동안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으로도 불리는 곳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을 찾았다. 우리나라 소나무재선충병을 잡기 위한 연구개발(R&D)이 진행되는 본부다. 산림과학원 내에는 수령 134년의 반송 거목과 붉은 외피와 곧게 뻗은 줄기가 특징인 금강송들이 짙은 초록빛 솔잎을 자랑하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적어도 과학원과 홍릉숲 내에서는 제3차 대발생기를 느낄 수 없었다. 소나무에 다가가보니 ‘2023년 12월12일 소나무재선충병 예방나무주사’라는 표식이 붙어있었다. 산림병해충연구과에 들어서니 나무에서 재선충을 뽑아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연구시설들이 놓여있었다. 산림과학원 사람들은 재선충 3차 대발생과 세간의 비판에 곤혹스럽다 못해 지친 분위기였다. 소나무재선충병을 연구해온 남영우 박사가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현재 사용되는 예방 나무주사는 농약 등록 기준상 90% 이상의 방제 효과가 있습니다. 산림과학원 내 소나무들은 주기적인 예방 나무주사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병의 발생과 확산의 원인을 알고, 방제 효과가 90% 이상 되는 예방 나무주사가 있는데도 왜 소나무재선충병은 잦아들지 않고 되레 확산하고 있을까. 재선충병의 확산 원인은 여러가지다. 첫째는 글로벌화로 인해 국가 간, 지역 간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활발해진 점이다. 둘째로 기후변화로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매개충의 활동 시기와 기간이 길어지고 소나무의 수세(樹勢)가 약화한 탓도 크다. 여기에 방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감염목의 인위적인 이동 등이 겹치면서 확산세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원은 방제기술의 현장 적용 과정에서 생기는 한계와 감염목을 조기에 찾아내는 예찰(豫察)의 공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예찰이 잘못되면, 단 한 그루의 고사목에서도 수십 마리의 매개충이 탈출해 순식간에 주변으로 확산할 수 있다.

22일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인근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붉고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곳곳에 보인다. 송봉근 객원기자

22일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인근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붉고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곳곳에 보인다. 송봉근 객원기자

거세지는 산림당국 비판여론

 지난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에 들어간 정부 예산은 1341억원, 2022년(661억원) 대비 배 이상 증가했다. 혈세가 끝없이 투입되는데, 산과 들은 갈수록 더 말라가니 비판여론이 거세진다. 심지어는 재선충을 잡을 수 있는 미생물제제가 개발돼 있는데도 산림당국이 이해관계자들과 결탁해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산림당국도 비난 여론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남영우 박사는 “그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효과가 입증된다면 당연히 현장에 적용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해당 미생물 제제를 과거 두 차례 검증했는데 뚜렷한 방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아 도입이 어려웠다”며 “최근 세 번째 검증 절차가 다시 진행되면서 객관적인 실효성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혹 소나무재선충병이 어쩔 수 없는 현상은 아닐까. 지구온난화라는 큰 흐름과 숲의 천이과정이라는 것도 있는데, 우리는 왜 유독 소나무만을 살리려고 애를 쓸까. 산림 당국과 전문가들은 재선충병으로 인한 소나무의 급격한 소멸은 자연적인 천이 속도와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외래 유입종인 재선충병이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야 할 생태계 변화를 단 몇 년 만에 비정상적으로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의 20%를 넘게 차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주요 수종이기도 하다. 창녕 우포늪에서 목격한 붉고 잿빛으로 말라 죽어가는 고사목들은 한국 사회에 엄중한 경고를 던진다. 소나무재선충병과의 전쟁에 R&D를 넘어 과학에 기반한 방제, 투명한 행정이 없다면, '남산 위 소나무'는 애국가 속에만 남을 수도 있겠다.

재선충, 하늘소에 올라타 소나무숲으로 이동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류에 기생하여 치명적인 병을 발생시키는 크기 1㎜에 불과한 작은 선충이지만, 나무세포를 파괴하고 도관을 막아 소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선충 스스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몸속에 올라타 이동하며 감염을 확산시킨다. 매개충은 건강한 나무에는 송진 방어벽 때문에 산란하기 어렵지만, 나무가 쇠약해지면 송진 분비가 줄어들어 산란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매개충은 재선충에서 놓여나니 이득을 얻고, 재선충은 새로운 숙주로 이동할 수 있는 상호 공생 관계가 형성된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겨울철에서 초봄 사이 매개충이 번데기로 있을 때 재선충이 몸속으로 침투하며, 늦봄부터 초여름에 매개충이 성충으로 우화해 탈출할 때 재선충들이 함께 탑승하게 된다. 이후 우화한 매개충이 여름철에 건강한 소나무를 먹고 자라는 과정에서 재선충이 나무 내부로 침입한다. 선충이 침입한 소나무는 수분이 차단되어 말라 죽게 되며, 이 고사목 속에서 대량으로 증식한 선충과 새로운 매개충이 만나 다시 연쇄적인 확산으로 이어진다.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은 기본적으로 침엽수를 선호한다. 특히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는 소나무류가 재선충에 대한 유전적 방어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소나무재선충에 의해 감염되어 치명적인 고사를 일으키는 주요 수종은 국내에 소나무와 곰솔·잣나무·섬잣나무, 4종이다. 이외의 활엽수나 다른 침엽수들은 내병성을 가지고 있어 감염되더라도 죽지 않는다. 소나무재선충의 원산지는 북미다. 이 지역의 소나무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병원체와 함께 살아오며 공진화(co-evolution)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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