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표적 치료제 없는 NRAS 변이 흑색종 겨냥…제넨텍 항암제와 병용
한미, “국내 2상은 계속…글로벌 개발·상업화 새 파트너십 가능성 열어둬”
한미약품이 2016년 스위스 로슈 자회사 제넨텍에 기술수출해 흑색종 신약으로 개발해온 후보물질을 10년 만에 반환받는다. 한미약품은 국내 개발은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제넨텍이 맡았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까지 다시 확보하면서 해외 임상과 인허가, 상업화 전략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미약품은 제넨텍으로부터 경구용(먹는) 표적항암제 후보물질 ‘벨바라페닙’의 기술이전 계약 해지와 권리 반환을 통보받았다고 29일 밝혔다. 계약 해지는 통보일로부터 90일 후인 오는 12월 27일 효력이 발생한다.
한미약품 전경. /한미약품 제공제넨텍 업고 ‘글로벌 흑색종 신약’ 꿈꿨지만…한미, 다시 ‘홀로서기’
이번 반환은 갑작스러운 개발 중단에 따른 것은 아니다. 제넨텍은 이미 2024년 4월 벨바라페닙의 추가 환자 모집을 중단하고 모회사인 로슈의 개발 파이프라인에서도 후보물질을 제외했다.
당시 토머스 쉬네커 로슈 최고경영자(CEO)는 “다양한 암종을 대상으로 두 건의 임상시험에서 벨바라페닙을 평가했지만, 벨바라페닙의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해 임상 파이프라인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계약 해지는 이후 남아 있던 양사의 권리 관계를 정리하는 절차다.
한미약품은 2016년 9월 벨바라페닙을 제넨텍에 기술수출했다.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넘기는 조건으로 총 9억1000만달러(약 1조2307억원) 규모였다. 당시 계약금 8000만달러(약 1086억원)를 받았고, 이후 개발·허가·상업화 단계에 따라 최대 8억3000만달러의 기술료를 받기로 했다.
벨바라페닙은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관여하는 미토겐 활성화 단백질 키나아제(MAPK) 경로의 RAF·RAS 유전자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억제하는 경구용 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이다. 앞선 글로벌 1상에서 NRAS와 BRAF 변이를 가진 고형암 환자에서 항종양 활성이 확인됐다.
한미약품은 벨바라페닙을 흑색종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최근 흑색종 신약 개발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주목받는 분야다. 미국 모더나와 머크(MSD)는 고위험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반 암 백신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병용하는 임상 3상에서 효능을 입증했고, 미국 바이오기업 리플리뮨도 흑색종 병용요법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조건부 승인받았다.
한미약품은 이 가운데서도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인 NRAS 유전자 변이 흑색종 환자군에 주목했다. NRAS 변이 흑색종은 일반적인 흑색종보다 종양의 침습성과 전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국내외에서 NRAS 변이 자체를 직접 겨냥해 허가된 표준 치료제는 없다.
회사는 현재 제넨텍의 MEK 억제제 ‘코비메티닙’과 벨바라페닙을 병용하는 방식으로 개발 중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고 2월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현재 NRAS 변이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NRAS 돌연변이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벨바라페닙과 코비메티닙 병용요법 임상시험에서 시간 경과에 따른 병변 변화가 관찰된 복부 CT 영상 사진. /한미약품‘글로벌 개발·상업화' 전략 관건…한미 “새 파트너십도 검토”
한미약품은 계약 해지와 별개로 국내 개발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지만, 글로벌 개발을 맡았던 제넨텍이 빠지면서 해외 임상과 인허가, 상업화는 한미약품이 새로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제넨텍에 넘겼던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돌려받는 만큼, 한미약품이 직접 글로벌 개발에 나설지 새로운 파트너를 찾을지 주목된다.
제넨텍이 그동안 진행한 글로벌 임상과 관련한 데이터와 개발 자료도 한미약품에 이관해야 한다. 30일 미국 임상시험 정보 공개 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스에 따르면 제넨텍은 전 세계 18개국에서 65명을 모집해 NRAS 변이 진행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벨바라페닙·코비메티닙 병용요법을 평가하는 임상 1b상을 진행해왔다. 현재는 환자 모집을 중단한 상태다.
계약 종료일인 12월 27일까지 임상 데이터와 개발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이관할지, 진행 중인 환자에 대한 관리와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지 등을 양사가 협의해야 한다. 한미약품이 넘겨받은 글로벌 임상 데이터를 향후 자체 개발이나 새로운 파트너십에 어떻게 활용할지도 과제다.
현재 국내 임상에서 활용하는 코비메티닙이 제넨텍이 개발한 약물이라는 점도 변수다. 벨바라페닙과 코비메티닙 병용요법을 계속 개발하려면 코비메티닙 공급을 비롯해 병용요법의 권리 관계와 임상·개발 자료 등을 양사가 정리해야 한다.
다만 한미약품이 최근 근육은 보존하면서 체중을 줄이는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HM17321’을 제넨텍에 최대 23억달러(약 3조19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만큼, 양사의 별도 협력 관계를 고려하면 코비메티닙 병용 임상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미약품은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를 찾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일단 국내 개발에 집중할 것이고, 글로벌 개발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파트너십 가능성도 열어놓고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파트너사에서 반환받은 후보물질을 다른 글로벌 제약사에 다시 기술수출한 사례도 있다. 얀센에서 반환받은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이후 머크(MSD)에 다시 기술수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벨바라페닙 역시 한미약품이 국내 임상 2상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를 확보할지, 직접 글로벌 개발에 나설지가 향후 개발 전략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