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왕실·ASML·머크·자이스·imec 한자리... 문화유산이 만든 만남
워싱턴 이어 런던 찾은 이재용, 참전 인연 되짚고 글로벌 인사 만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KH컬렉션 순회전 갈라 디너에 참석한 6·25 참전용사 피터 풀러브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삼성[데일리안 = 임채현 기자] K팝과 영화, 드라마로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려청자와 조선 회화, 근현대 미술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에서 19만5000명의 관람객을 만난 이건희 컬렉션이 이번에는 유럽으로 무대를 옮겼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인의 시선을 끌었다면 2000년에 걸쳐 축적된 미술과 문화유산은 그 관심을 한국의 역사와 문화로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다.1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Korea: 2000 years of Creativity)'은 이건희 컬렉션의 유럽 첫 전시다. 고대 금속공예와 불교미술부터 고려청자, 조선 회화와 근현대 미술까지 한국 문화와 예술의 흐름을 소개한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D.C.와 올해 시카고에 이은 세 번째 해외 순회전이다.
문화유산을 매개로 한 교류의 폭도 넓어졌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재계 인사 25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 데 이어, 런던에서는 영국 왕실과 정·재계, 문화계 인사 240여명이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만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두 행사에 모두 참석했다. 특히 런던에서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과 밀접한 ASML·머크·자이스·imec 등의 최고경영진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런던 피카딜리 전광판에 삼성 이건희 컬렉션 광고 영상이 나가고 있다.ⓒ삼성미국에서 유럽으로…한국 미술에 쏠린 관심이건희 컬렉션의 첫 해외 순회전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시작됐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전은 백제 금동불상부터 조선 회화와 도자, 근현대 미술까지 약 1500년에 걸친 한국 미술을 한자리에서 소개했다.스미스소니언은 당시 전시를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개관 이후 최대 규모의 한국 미술전으로 소개했다. 관람객들의 관심은 전시장 밖으로도 이어졌다. 삼성 측 최종 집계에 따르면 약 8만명이 전시를 찾았고, 담당 큐레이터가 주요 작품과 전시 의미를 소개한 영상은 조회수 100만회를 넘어섰다. 최근 10년간 박물관이 제작한 영상 가운데 가장 많은 조회수다.
이어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시카고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국보: 한국미술 2000년(Korean National Treasures: 2,000 Years of Art)'에는 약 11만5000명이 방문했다. 시카고에서는 국보 7건과 보물 15건을 비롯해 총 140건 257점이 관람객을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유산과 박수근·김환기 등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배치해 한국 미술 2000년의 흐름을 보여줬다.
이번 런던 전시에서는 세계적으로 확산된 K컬처와 전통미술의 접점도 적극 활용한다. 배우 이병헌은 영국박물관 역사상 최초의 전시 홍보대사를 맡았다. 이병헌과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4'의 주연인 한국계 호주 배우 하예린은 전시 오디오 투어 해설에도 참여했다. 이병헌은 주목할 작품으로 글로벌 흥행작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등장한 '까치와 호랑이'를 꼽았다.
K팝과 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높아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전통미술 전시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워싱턴과 시카고에 이어 런던에서도 한국 미술 2000년을 소개하되, 대중문화로 한국을 접한 해외 관람객이 전통문화와 미술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접점을 넓혔다.
지난 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에서 열린 갈라 디너에서 참석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삼성워싱턴서 런던까지…이재용도 함께한 '문화 외교'이건희 컬렉션이 해외로 무대를 넓히면서 전시는 각국 주요 인사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1월 워싱턴D.C.에서 열린 갈라 디너에는, 미국 정·관계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로리 차베스-디레머 노동장관,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등이 자리했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웬델 윅스 코닝 회장, 개리 디커슨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최고경영자(CEO), 베네데토 비냐 페라리 CEO 등이 참석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KH컬렉션 순회전 리셉션을 찾은 앤 공주 등을 맞이하고 있다.ⓒ삼성런던에서는 참석자의 폭이 유럽으로 넓어졌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리셉션에는 영국 왕실의 앤 공주가 참석해 특별전 개막을 축하했다. 이어 열린 갈라 디너에는 이 회장과 홍 명예관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을 비롯해 영국 정·재계와 문화계 인사 등 240여명이 참석했다.특히 삼성전자와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하는 글로벌 기업과 연구기관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CEO를 비롯해 카이 베크만 머크 CEO, 안드레아스 페허 자이스 CEO, 패트릭 반데나멜레 imec CEO 등이 참석했다. ASML은 첨단 반도체 노광장비, 머크는 반도체 소재, 자이스는 광학 분야에서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축을 맡고 있다. 벨기에 연구기관 imec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인사만 모인 것도 아니다. BT그룹과 보다폰, 세인즈버리, 스탠다드차타드 등 글로벌 기업 경영진과 옥스퍼드대·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관계자도 자리했다. 영국박물관과 테이트 모던, V&A 박물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왕실과 정·재계, 학계와 문화계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KH컬렉션 순회전 갈라 디너에 참석한 6·25 참전용사 마이크 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삼성참전의 인연도 되짚었다…문화유산으로 이어진 교류이 회장은 글로벌 사업 파트너들과의 교류뿐 아니라 한국과 영국이 맺어온 역사적 인연도 강조했다. 이날 참석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지난 7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린 앤 공주에게도 감사를 표했다.워싱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당시 갈라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참석했고, 이 회장은 이들에게 직접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문화유산뿐 아니라 한국과 해당 국가가 공유해 온 역사까지 함께 되짚은 것이다.
워싱턴과 시카고를 거쳐 런던에 도착한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미술을 알리는 무대를 미국에서 유럽으로 넓혔다. 과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참전용사부터 각국 정·재계와 문화계 인사, 삼성의 글로벌 사업 파트너까지 문화유산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시작된 이건희 컬렉션의 해외 순회전은 문화유산을 매개로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박물관에서는 내년 1월까지 한국 미술 2000년의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