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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배달노동자들이 기본단가 인상,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장여경 이사는 플랫폼이 내건 숫자와 보상이 라이더에게 속도를 재촉하고, 미션을 포기하면 손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등 일터가 게임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
| ⓒ 라이더유니온 |
한여름은 배달 시장의 성수기지만, 배달 라이더에게는 노동환경이 가장 가혹해지는 때다. 찜통 같은 더위와 뙤약볕을 견디며 일하다 보면 오후 5시, '미션'이 시작된다. 지금부터 3시간 동안 배달 플랫폼이 제시한 배달 건수를 채우면 보너스를 주는 '시간제 미션'이다. 그만 퇴근하려던 한 라이더가 알림을 보고 멈칫한다. 저녁 8시까지 13건을 배달하면 3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그는 미션을 수락한다. 13건은 빠듯한 목표치여서 평소보다 속도를 더 내야 한다.
일터가 게임처럼 변하고 있다
플랫폼은 '개인 맞춤형 설계'를 내세워 라이더마다 다른 목표치를 제시한다. 서울 강남구에서 일하는 한 라이더에게는 16건, 광진구에서 일하는 다른 라이더에게는 11건이 주어지는 식이다. 조금만 더 애쓰면 닿을 것 같은 목표가 제시된다. 마치 게임 같다. 플랫폼이 내건 숫자와 보상은 라이더에게 속도를 재촉하고, 미션을 포기하면 손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눈앞의 보상과 손실 회피 심리(같은 크기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심리)를 이용하는 행동경제학적 게임화(gamification)다.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이를 완수하려는 동기가 강해지는 '목표 근접 효과'도 노린다. 미션의 기준과 보상이 불규칙하고 불투명해 라이더가 계속 앱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도 게임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배달 플랫폼은 시간제 미션이 라이더가 스스로 선택하는 보너스라는 점을 강조한다. 라이더 개인의 숙련도와 운행 이력을 분석해 달성 가능한 수준의 미션을 부여하므로 오히려 무리한 운행을 예방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라이더들은 월수입에서 미션 보너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 어느덧 3분의 1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미션 없이는 예전과 같은 수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알고리즘이 보수를 그때그때 바꿔 정하는 '동적 임금(dynamic pay)'이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이 되고 있다.
게임화란 게임이 아닌 영역에 포인트·배지·등급·순위 같은 게임 요소와 행동경제학적 장치를 적용해 행동과 성과를 수치로 만들고, 지속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설계 방식을 말한다.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은 이 방식으로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중독적으로 늘려 광고 노출과 수익을 극대화해 왔다. 배달 플랫폼 역시 특정 시간대에 투입할 수 있는 라이더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 두려고 게임 설계를 활용한다.
플랫폼 노동의 게임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이것이 일의 자발성과 몰입을 높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자율성은 겉모습일 뿐, 실제로는 플랫폼의 노동 통제를 가린 채 노동자의 순응을 끌어낼 위험이 있다. 이를 '설계에 의한 통제(control by design)'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플랫폼 노동에서는 알고리즘에 의한 업무 배분과 들쭉날쭉한 보수가 장시간 노동, 과속, 휴식 포기 같은 위험을 부른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국제노동기구(ILO) 조사에서는 배달 플랫폼 노동자가 주당 평균 59시간가량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제 이는 플랫폼 노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적인 일터에서도 알고리즘으로 노동을 관리하고 노동 과정을 통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그룹이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큰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인공지능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지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엇갈린다. 분명한 사실은 많은 기업이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비용을 줄이려는 동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의 감소 여부와 별개로, 알고리즘에 기반한 노동 과정과 노동 관리는 이미 일터에 들어와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일자리보다 먼저 바뀐 것, 일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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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개최된 제113차 ILO 총회 전체 회의 장면. 제113차 ILO총회의 핵심 의제는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였다. 지난해 펴낸 보고서 ‘디지털 시대의 일’에서는 ‘노동의 플랫폼화’를 경고한 바 있다. |
| ⓒ ILO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공동연구센터(JRC)는 지난해 펴낸 보고서 '디지털 시대의 일'에서, 자동화가 지난 수십 년간 전체 고용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고 오히려 긍정적인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대량 실업이라는 통념과 다른 결론이다. 대신 보고서는 노동의 성격과 노동 과정을 조정하는 방식, 노동조건이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보았다. 과업의 표준화와 노동에 대한 디지털 조정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와 알고리즘 관리 도구가 그동안 자동화의 영향을 덜 받던 업무에서도 노동자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고서가 특히 경고한 것은 '노동의 플랫폼화'다. 플랫폼의 핵심 특징인 디지털 모니터링과 알고리즘 관리가 전통적인 일터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노동자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그 기기들이 업무 관리와 조정을 위한 플랫폼에 연결된 경우가 많다. 플랫폼화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노동과정을 표준화하고 관료화한다. 그 결과 노동강도 증가, 자율성 감소, 사생활을 침해하는 감시 같은 위험을 낳을 수 있다.
보고서는 플랫폼화가 경영 권력과 통제를 중앙으로 더욱 집중시키며, 이런 새로운 현실에 맞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기술 변화가 노동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한 방향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디지털 기술은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표준화와 탈숙련을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이 실제 노동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규제 제도와 단체 교섭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터에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는 기술의 상당수는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챗봇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터의 인공지능이 생성형 AI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리즘으로 업무를 배분하거나 자동화하고, 노동자를 평가하거나 그에 관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인공지능에 해당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노동자 개인별로 맞춤형 목표를 제시하고, 업무 수행을 세밀하게 평가하며, 행동경제학적으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가장 큰 변화는 업무 배치와 각종 의사결정이 알고리즘의 분석과 추론에 기대어 이뤄진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노동자와 업무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그 결과는 노동 관리에 활용된다. 이런 구조는 정보와 의사결정 권한을 경영진에 집중시키는 반면, 노동자에게는 의사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어 노사 간 권력 불균형을 키울 우려가 있다.
따라서 노동자가 알고리즘을 둘러싼 정보 비대칭을 해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개인적·집단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일터에 도입되는 알고리즘 자체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그 도입과 사용이 노동자와 노동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받을 권리가 포함돼야 한다.
사전적·예방적 조치 중요... 유럽연합은 금지 항목도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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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31일, ‘인공지능 책임성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렸다. |
| ⓒ 참여연대 |
노동자에게 인공지능 시대란, 일터에 들어오는 알고리즘과 플랫폼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하는 시대다. 그러나 이 물음은 생각보다 낯설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노동현장에 도입되는 기술을 대체로 경영권의 영역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감시 기술의 도입이나 그로 인한 노동조건 변화에 대해서는 협의하거나 교섭할 수 있었지만, 기술 도입 자체가 노동조건에 미칠 영향에 사전적·예방적으로 개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앞으로는 알고리즘 기반 노동을 둘러싼 정책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핵심은 사전적·예방적 조치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한번 도입되면 광범위한 업무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자 개인은 물론 노동조합도 사후에 이를 거부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터의 알고리즘은 금지할 영역과 규제할 영역을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에게 가장 침해적이고 위험한 기술은 금지해야 한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AI Act)은 일터에서 사람의 감정을 추론하는 인공지능 시스템과 생체정보를 바탕으로 노동조합 가입 여부 등을 추론해 사람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금지했다. 한발 더 나아가 유럽연합 플랫폼노동 지침은 일하지 않는 시간의 개인정보 수집, 노동자의 정서적·심리적 상태에 관한 개인정보 처리, 노동조합 가입 여부·건강 상태 같은 민감 정보의 추론 등을 금지했다. ILO와 EU 공동연구센터가 2022년 함께 펴낸 알고리즘 관리 보고서는, 당시 논의되던 플랫폼노동지침안의 알고리즘 관리 규율이 일반 일터에도 적용돼야 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금지 다음 단계는 규제다. 인공지능법은 채용·승진·해고 등 고용과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물론 업무 배분, 노동자 모니터링·평가에 쓰이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고위험'으로 분류해 규제하며 2027년 12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런 시스템을 일터에 배치하는 사용자는 사전에 노동자 대표와 해당 노동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도입 뒤에는 사람의 감독과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하며, 개별 노동자에 관한 결정에 쓰였다면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설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정책은 노사가 교섭을 통해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업비밀을 이유로 한 정보 비공개나 특정 기술의 사용 금지처럼 교섭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노조 조직률이 13% 전후에 머무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교섭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알고리즘에 관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기본 권리, 사전적·예방적 보호, 특정 알고리즘의 사용 금지 등은 법률로 규율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너머 모든 일터에 필요한 권리... 과기부 부적절
정부가 올해 6월 ILO 총회에서 채택된 '플랫폼경제의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협약'(제193호, 플랫폼노동협약)의 비준을 위해 이행 입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협약에는 알고리즘과 관련한 노동자의 권리도 담겨 있다. 플랫폼이 알고리즘으로 노동을 모니터링·평가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경우, 그 사실과 주요 기준, 영향을 노동자와 그 대표에게 알려야 한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중대한 결정에 대해 서면 설명을 요구할 수 있고, 보수 미지급이나 계정 정지·해지 같은 결정에 대해서는 사람이 관여하는 검토를 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와 업무 데이터를 수집·활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도 포함된다.
다만 이는 알고리즘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이며, 플랫폼 노동뿐 아니라 알고리즘 관리가 이뤄지는 모든 일터로 확대돼야 한다. 또한 노동 영역의 알고리즘 규율을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의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동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관리는 노동관계법과 연계되고, 근로감독을 통해 실제 노동현장에서 집행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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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 |
| ⓒ 본인 |
필자 소개 : 장여경은 1996년부터 정보인권운동 분야에서 활동해 왔으며, 진보네트워크센터 창립 때부터 상근하면서 한국 사회에 정보인권의 개념을 소개하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18년부터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로 활동하면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전문위원회 위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