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에서 열연한 '분희' 역의 배우 한선화./넷플릭스호사스러운 색색의 한복이 가득 걸린 ‘조씨 부인’의 옷방에, 인테리어 공사를 이제 막 새로 한 듯한 ‘분희’의 연초 가게. 화려하고 말끔한 북촌 위에서 서구적인 얼굴의 주인공들이 괴로운 사랑을 한다.
18세기 조선 시대 북촌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사극 ‘스캔들’(8부작)이 ‘한국의 미’를 내걸었지만 국내 시청자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의 프랑스 원작 소설(‘위험한 관계’)을 다시 한번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알려져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기대만큼 반응도 크게 갈렸다. 국내 리뷰 사이트 키노라이츠에서 올해 넷플릭스 작품 중 최하위권 평점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플릭스패트롤 기준 글로벌 시청 순위(30일 현재 영어·비영어 시리즈 통합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떨어졌다.
양반들이 모여 살던 북촌 사교계를 배경으로 남녀의 유혹과 수위 높은 사랑을 다룬 작품. 넷플릭스 작품 중엔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성공을 거둔 전례가 있다. 19세기 영국 리젠시 시대 귀족들의 사교계를 화려하게 재현하며 지금까지 정규 시즌만 네 개를 이어간 흥행작 ‘브리저튼’이다. 넷플릭스가 뛰어든 이번 ‘스캔들’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쾌한 ‘북촌판 브리저튼’이 탄생하나 했지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20년도 더 된 영화 ‘스캔들’을 다시 불러와 영화에 ‘판정승’을 주는 시청자들이 나온 것이다.
연두색 저고리를 입은 '조씨 부인' 역의 배우 손예진 등 '스캔들' 출연 배우들이 제작 현장에서 촬영된 화면을 보고 있다./넷플릭스영화 ‘스캔들’의 골조에서 크게 변한 것 없이 배우와 무대만 바뀌면서 영화와의 비교를 자초했다. 시대적인 볼거리 위에 과감하게 현대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공감 가능한 이야기를 만든 ‘브리저튼’과 비교해 18세기 작품인 원작에 충실한 길을 걸은 것이다. 지조를 지키려는 여인 ‘희연’과 ‘희연’을 유혹하려는 남성 ‘조원’, ‘조원’을 가지고 노는 ‘조씨 부인’의 이야기.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감이 2시간짜리 영화에 비해 느슨해졌다는 인상을 주는 가운데, 오히려 낯설게 연출된 ‘우리 것’에 반감이 커졌다. 배우들의 외양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캐스팅 문제가 도마에 올랐고, 영화 ‘스캔들’에 담긴 소박하고 절제된 ‘한국의 미’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왔다. ‘외국인은 좋아할 것 같다’ ‘진실된 것이 하나도 없다’ 등 사극으로서 뼈아픈 혹평도 있었다.
연출자는 영화 ‘해피 엔드’ ‘은교’ ‘유열의 음악앨범’ 등을 통해 섬세한 연출을 선보여 온 정지우 감독이다. 최근 만난 정 감독은 이번 작품이 영화와 비교되며 논란이 생기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원작 소설인 ‘위험한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여성(조씨 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절망에 빠진 남성(조원)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며 “근대의 맹아가 명백했던 우리 시대로 옮겨와 원작 소설로부터 완전히 다시 출발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러브 신의 수위는 높았지만 “성적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연출하지 않으려 애썼다”고도 설명했다.
섬세한 미술과 영상미에 호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8부작이라는 넓은 ‘화첩’을 새롭게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시종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세 인물의 감정선이 8부작을 채운다. 현대 여인의 면모를 가진 ‘조씨 부인’의 야심을 보여주는 경쾌한 에피소드나 북촌의 사교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에피소드 등을 넣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