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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 지나고 얼굴 계속 커져요’…말단비대증 모르고 사는 3천명 [건강한겨레]

요약
  • 성인기에 성장호르몬 과다 분비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인 '말단비대증'은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진단 지연이 잦아 국내 환자의 상당수가 조기 발견을 놓치고 있다.
  • 한·일 내분비질환 권위자들은 질환의 위험성과 합병증을 경고하며, 진단 접근성 개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조기 진단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터뷰│ 한·일 희귀 내분비질환 권위자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교수·후쿠오카 히데노리 고베대병원 교수
말단비대증 진단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해가는 안면 외형 모습 중 진단 당해와 10년 후 모습을 비교한 모습.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 제공 말단비대증 진단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해가는 안면 외형 모습 중 진단 당해와 10년 후 모습을 비교한 모습.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 제공
손가락이 소시지처럼 두꺼워지고 신발 치수가 자꾸 커지며 턱이 튀어나오고 입술이 두꺼워지는 희귀질환이 있다. 뇌하수체 종양 등에 의해 성장호르몬(GH)과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가 과다 분비돼 나타나는 희귀 내분비질환인 ‘말단비대증’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적 변화는 성인기에 짧게는 수년에서 평균 10년 이상에 걸쳐 아주 천천히 진행되기에 환자 본인이나 가족조차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환자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편견 탓에 발병 초기 질환을 숨기는 환자와 가족도 많고, 진단과 치료 관리 체계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심혈관 질환이나 암 등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발전하고 나서야 병원에 가기 때문이다.

진단 자체는 쉽지만 ‘발견’ 놓치는 희귀질환
최근 국내외 의료계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말단비대증을 조기 진단하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건강한겨레는 한국과 일본의 희귀 내분비질환 권위자인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와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를 만나 말단비대증의 임상적 특성과 인공지능 기반 진단 혁신의 현황을 물었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왼쪽)와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왼쪽)와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제공
거인증과 달리 성인기에 발병
말단비대증은 성장호르몬 과다 분비로 인한 과성장 때문에 발병하는 희귀질환이라는 점에서 거인증과 혼동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질환은 발병 시기와 신체 변화 양상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거인증은 성장판이 열려 있는 소아·청소년기에 성장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며 키와 골격이 정상 범위를 넘어 성장하는 질환이다. 반면, 말단비대증은 거인증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주로 40살 이후 성장판이 닫힌 성인기에 발병한다. 골격 성장이 완료돼 뼈의 길이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IGF-1 수용체가 분포한 뼈 표면과 손, 발, 코, 턱 등 말단 조직이 자극을 받아 특징적인 외형 변화가 진행된다.

외형 변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과다 분비된 성장호르몬과 IGF-1이 체내 대사 균형을 무너뜨려 당뇨병, 고혈압을 비롯한 다양한 대사·심혈관계 합병증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상기도 연부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수면무호흡증이 나타날 수 있고, 심장과 혈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말단비대증 환자의 전체 암 발생 위험과 대장·항문암, 갑상샘암 등 일부 암의 발생 위험이 일반 인구보다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다만 암종별 위험과 선별검사의 범위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 환자의 상태에 따른 개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말단비대증의 발병 주요 원인. 서울아산병원 제공 말단비대증의 발병 주요 원인. 서울아산병원 제공
후쿠오카 교수는 “환자들이 관절통이나 수면무호흡증, 부정교합으로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치과를 찾지만 이들 진료과에선 근본 원인인 뇌하수체 종양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며 “비교적 쉽게 진단할 수 있음에도 의료진이 이 검사를 떠올리는 ‘첫 단계’를 넘지 못해 진단이 5~10년 이상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한다. 구 교수는 “국내 소아·청소년 중 정상 성장 범주에 있는 아이들에게 고용량 성장호르몬 주사를 무분별하게 맞히는 오남용도 심각한데, 이로 인한 내분비 교란과 부작용 위험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보탰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제공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제공
일본에선 쉬운 진단…한국은 20년 전 검사 방식에 갇혀
말단비대증의 진단 접근성에 대해선 한·일 양국의 환경이 크게 엇갈렸다. 후쿠오카 교수는 “질환을 의심하는 첫 단계만 넘으면 IGF-1 검사만으로 확인할 수 있어 진단 자체는 쉽다”며 “어려운 것은 ‘진단’이 아니라 ‘발견(포착)’”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구 교수는 “국내에선 제도 탓에 복잡한 진단 과정을 거친다”고 토로했다. 왜 그럴까?

성장호르몬은 하루 동안 분비량 기복이 심하지만, IGF-1은 혈중 농도가 안정적이어서 국제적으로 이 검사법만으로도 말단비대증을 진단할 수 있도록 널리 활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20여 년 전 희귀질환 산정특례 등록 제도를 만들 때 도입한 ‘경구 포도당 부하 검사’(OGTT)를 통한 성장호르몬 수치 기준법을 고수한다. 이는 금식이 요구되 고 최소 5차례 이상 채혈을 해야 하는 등 환자에게 번거롭다. 더욱이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탓에 국내엔 표준 IGF-1 검사법도 정립되지 않았다. 일본이 2000년 전후 연령·성별에 따른 IGF-1 표준 정상 수치 범위 기준을 확립한 반면, 국내는 일부 대학병원을 제외하곤 표준화 자료가 없어 일관된 수치 해석과 진단이 어렵다.

외형 변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병원 방문을 꺼리면서 국내 환자군은 실제 유병률 대비 상당히 과소 진단돼 있다. 국제 유병률은 1만 명당 1명꼴로 인종별 말단비대증 환자 유병률 차이가 없다는 것은 현재 정설이지만, 국내는 1만명당 0.68명 정도로 파악된다. 국내 환자 규모는 최대 5천명까지도 추정되지만, 실제 등록 환자는 2천명 수준이다. 뇌하수체 종양 수술과 호르몬억제제 투약 등 진단 후 치료법이 효과적이어서 구 교수는 진단 문턱을 넘지 못하는 국내 환자들에게 더욱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제공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한겨레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후쿠오카 히데노리 일본 고베대병원 당뇨병·내분비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제공
인공지능으로 얼굴 대신 ‘손 모양’ 분석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에선 인공지능 조기 선별 기술에 관심이 크다. 후쿠오카 교수 연구팀은 이 분야의 국제적 선두주자다. 최근 손 사진 분석 모델을 개발해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존 연구는 주로 환자의 얼굴 사진이나 목소리를 분석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는 개인정보 침해와 민감 정보 노출 문제로 실제 진료실에 도입하는 데 한계가 컸다. 이에 후쿠오카 교수팀은 외형 변화에 따른 사회적 시선을 꺼리는 이들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손 사진’에 주목했다.

후쿠오카 교수팀은 개인 식별 가능성이 있는 손바닥과 지문 부위를 제외하고, 손등과 주먹을 쥔 모습을 촬영한 이미지를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했다. 이 모델은 연구용 시험 데이터에서 민감도 89%, 특이도 91%를 기록하며 말단비대증 환자를 효과적으로 선별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향후 이 모델이 일반 건강검진 시스템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현장에 도입된다면 말단비대증 진단 지연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1차 의료기관이나 타 진료과에서 놓치기 쉬운 잠재적 환자를 내분비 전문의에게 빠르게 연결해주는 ‘조기 진단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후쿠오카 교수는 “인공지능이 의사의 최종 진단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수년 동안 자기도 모르게 병을 키워온 환자들에겐 진단의 문턱을 넘어서도록 돕는 강력한 보조 도구가 될 것”이라며 “대중 매체를 통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손 사진 분석 모델을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한다면 조기 진단율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구철룡 교수 역시 “말단비대증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정밀 수술 성공률이 높아지고 치명적인 합병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며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 치료 후 삶의 질까지 보듬는 환자 중심의 장기 관리 체계로 진료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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