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직장인 63% 업무에 생성형 AI
AI 이용자 31% 회사 몰래 사용
AI로 주 70분 아끼지만 더 일해
美·韓서도 번지는 '섀도 AI'
생산성 높일수록 커지는 대체 불안인공지능(AI)이 직장인의 일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도입하기도 전에 직원들은 개인 AI를 업무에 끌어들이고 있다. 때로는 회사 몰래, 때로는 자신의 돈까지 내면서 말이다. AI 덕분에 업무시간은 줄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하게 됐고, AI가 자신의 일자리까지 대신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커졌다. 영국에서 나타난 이런 직장 풍경은 미국과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딜로이트 영국법인 조사 결과, 영국 직장인 5명 중 1명이 '회사 몰래 AI를 쓰고 있다'고 답변했다. [사진 | 챗GPT 생성 이미지]회사에는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에는 인공지능(AI)을 썼다. 영국 직장인 5명 중 1명이 '회사 몰래 AI를 쓰고 있다'고 답변했다. AI를 써서 업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좋지만, 한편에선 상사가 내 일을 AI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개인 AI를 사용하는 '섀도 AI(Shadow AI)'라는 새로운 직장 풍경까지 나타났다. 영국 직장인들이 업무용 AI에 자기 돈으로 지불하는 금액만 연간 1조8000억원이 넘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과연 영국만의 현상일까. 미국과 한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글로벌 회계·컨설팅기업 딜로이트 영국법인이 최근 발표한 'GenAI Workforce Survey' 결과를 보자. 지난 5~6월 영국의 18~70세 근로자 2만5000명을 조사했더니, 63%가 업무에 생성형 AI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흥미롭게도 AI 이용자의 31%는 회사가 모르게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었다. 전체 조사대상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19.5%, 직장인 5명 중 1명꼴이다. 섀도 AI, 이른바 '그림자 AI'다.
■ 회사보다 먼저 AI 쓰는 직장인 = AI 이용자의 46%는 무료 도구를 업무에 사용했고, 17%는 업무에 쓸 AI 비용을 자신의 지갑에서 꺼냈다. 딜로이트는 영국 직장인들이 업무용 생성형 AI에 개인적으로 지출하는 돈이 연간 9억5800만파운드(1조8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회사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대신 무료 AI를 찾아 쓰거나 자신의 돈을 내고 유료 AI를 업무에 사용하는 직장인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왜 회사 몰래, 심지어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AI를 사용하는 걸까. 이유는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어서다. 딜로이트 조사에서 영국 직장인은 생성형 AI를 사용해 일주일에 평균 70분을 절약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딜로이트에 따르면 절약한 시간의 대부분은 같은 고용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사용됐다. AI가 일을 덜어줬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일을 맡은 셈이다.
[자료 | 딜로이트 GenAI Workforce Survey 2026, 그래픽 | 챗GPT, 더스쿠프]이처럼 AI는 자신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AI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매주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영국 직장인의 64%는 관리자가 'AI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걱정한다고 답했다. 23%는 직장에서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일종의 '낙인'이 있다고 느꼈다.■ 시간 벌었지만 불안은 커졌다 = 결국 AI를 쓰지 않으면 업무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사용하면 AI가 자신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 같아 불안한 셈이다.
이번 딜로이트 조사는 영국 직장인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삼았을 만큼 대규모로 진행했다. 이 정도 규모는 아니지만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비슷한 설문조사들이 공개된 바 있다.
미 인구조사국이 2026년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56%가 업무에서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최근 1주일간 AI를 사용한 이들 가운데 31%는 AI가 없었다면 일을 끝내는 데 1~2시간을 더 썼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회사의 공식적인 AI 도입보다 직원이 앞서가는 현상도 일찌감치 포착됐다. 2024년 마이크로소프트와 링크드인의 'Work Trend Index'에 따르면 미국의 직장 내 AI 이용자 가운데 63%가 회사가 제공하지 않은 AI 도구를 업무에 가져다 쓰고 있었다.
■ 미국, 한국 직장도 딜레마 = 한국에서는 삼성SDS가 올해 국내 기업·공공기관 재직자 1750명을 조사한 결과, 직원들이 사용하는 생성형 AI 사례 가운데 회사 승인 없이 개인 비용으로 사용하는 '섀도 AI'가 38%를 차지했다. 기업이 정식 계약한 AI를 사용하는 사례 24%보다 많았다. 또한 생성형 AI를 사용해 업무시간이 줄었다고 답한 직장인이 절약한 시간은 일주일 평균 1시간12분, 72분이었다. 영국 직장인이 절약했다는 70분과 큰 차이가 없다.
AI가 자신들이 업무를 대체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AI 불안감도 마찬가지로 높았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48.2%는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20대에선 이 비율이 58.1%까지 올라갔다.영국과 미국, 한국의 조사 방식과 질문이 서로 달라 숫자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 나라의 직장에서 나타나는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아이러니한 건 직장인들이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기술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AI를 쓰지만, AI가 일을 너무 잘하면 내가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생성형 AI가 바꾸고 있는 직장의 모습이자 딜레마다.
장규석 특파원 |
더스쿠프 워싱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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