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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생기는 ‘쓰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말을 이어보세요

요약
  • 이 기사는 독서가 글쓰기로 이어지는 과정과 타인의 글에 응답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다룹니다.
  • 특히 팔레스타인 시선집에 대한 답장으로 출간된 시집 '응답의 시'를 통해 멀리 떨어진 타인의 고통에 시로 화답하며 말을 잇는 행위의 의미를 전합니다.
[움직이는 글쓰기]읽기는 쓰기의 세계에 진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책을 읽고 응답하는 데 드레스코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날은 어쩌다보니 제대로 맞춰 입었습니다. 시집 ‘응답의 시’와 에코백. 책을 읽고 응답하는 데 드레스코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날은 어쩌다보니 제대로 맞춰 입었습니다. 시집 ‘응답의 시’와 에코백.

가을입니다. 가을 이 녀석, 딴청을 피우고 있다며 볼멘소리 늘어놓은 것을 들었나봐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가을입니다. 하늘은 더 높아졌고, 햇살은 따사롭습니다. 시간이 나면 벤치에 앉아 가을바람을 즐기느라 정신없습니다. 이 좋은 날씨를 그냥 보내는 건 너무 아깝지만 글을 써야 합니다. 마감이 있거든요.

마감이 코앞에 닥쳤을 때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마감을 코앞까지 미룬 자신을 혼냅니다. 미리미리 했어야지! 다음에 또 이러기만 해봐라! 실컷 혼난 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쓰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메모 앱을 뒤적입니다. 쓸 만한 것을 운 좋게 발견해 글쓰기에 돌입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천변을 산책하거나 짬을 내 전시를 보러 갑니다.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지요. 그러면 생각도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마감이 코앞에 닥쳤을 때

 

쓰기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읽는 것입니다. 너무 뻔한가요? 하지만 읽는 것만큼 손쉽게 쓰게 하는 일도 드뭅니다. 시나 소설을 읽기도 하지만 르포나 철학책, 사회과학 서적을 펼치기도 합니다. 제품 설명서를 읽을 때도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의 활자는 되도록 피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글자보다 사진이나 영상에 눈이 가서요.

활자가 글을 불러오는 방식도 여러 가지입니다. 글자 자체에 자극될 때가 있습니다. 글의 주제나 문장의 의미와 관계없이 말이에요. 아직 조립되지 않은 레고 블록처럼 단어들이 쏟아집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일부러 책에 집중하지 않아요. 책장만 휘리릭 넘깁니다. 그러다 ‘유지보수’ 같은 단어를 집어 들고 글을 시작합니다. 유지보수라니. 유지보수만으로 버티고 있는 생활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요. 마감이 코앞일 때는 이 방식에 기댑니다.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이 아니라면 글의 내용이나 문장, 표현이 제 안의 어떤 것을 건드리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쓰기 위한 읽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이미지로 연결되기도 하고, 읽은 내용의 다음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읽던 글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아 보이는 문장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유년기를 읽으며 “난 사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되기 싫은 것은 있었지” 같은 메모를 하는 식입니다.

 

읽으면 생기는 ‘응답’ 욕구

 

글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글이 시작됩니다. 화자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요. “맞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이불을 내리지 못한 밤이 있었어요.” 반대로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저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요”라며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동의하고, 반박하고, 질문하다보면 책을 읽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대화를 받아 적다보면 글이 시작되지요.

어떤 글 앞에서는 조금 다른 마음이 듭니다. 무언가가 떠올라 쓰는 것을 넘어, 글에 ‘응답’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응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싹트기도 해요. 일어나 행동하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응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글이 서운해하진 않겠지만요. 글이 마음을 세게 두드리는 느낌이 있거든요. 때로는 망치로 내려치는 것처럼 아픕니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해서, 알고도 모르는 척했던 것을 다시 보게 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더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글이 있습니다.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쓰고 싶어집니다.

얼마 전 출간된 시집 ‘응답의 시’(얼굴들, 2026)에도 이런 마음으로 참여한 것 같습니다. ‘응답의 시’는 2025년 여름에 출간된 ‘팔레스타인 시선집’(접촉면)에 대한 답장으로 시작된 책입니다. ‘팔레스타인 시선집’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온 사람들, 팔레스타인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쓴 시와 팔레스타인을 위해 쓰인 시들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사망자 수나 공습 횟수 같은 숫자로 접하던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입니다. 읽다가 벌떡 일어나게 되는 책이었어요.

팔레스타인에서 쓰인 시가 번역되어 바다를 건너 한국의 독자에게 도착하고, 그것을 읽은 사람들이 다시 시를 써서 묶은 책이 ‘응답의 시’입니다. 시인과 소설가, 활동가까지 47명이 참여했어요. 시가 지금 당장 폭격을 멈추게 하거나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멀리 떨어진 타인의 고통에 시로 응답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나저나 쓸 자격이 있는 걸까요?

‘응답의 시’에 실린 시작 노트들을 읽으면 참여 작가들의 망설임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멀리 떨어져 안전하게 살아가는 내가 그 고통을 말해도 되는지, 타인의 참혹한 현실을 시의 소재로 삼는 것은 아닌지, 시 한 편을 쓴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럼에도 쓰는 쪽을 택합니다. 김혜순 시인은 “누군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말하고 있다’는 그 조그만 사실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나의 핑계를 만들었다. 세상과 떨어져 혼자 얻어맞고 있는 그 도시를 향해”라고 썼습니다. 나희덕 시인은 자신의 시를 먼 곳을 향해 띄우는 간절한 유리병 편지에 빗댑니다. 들은 사람이 여기 있다고 말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응답의 시’에 참여한 이유

 

저 또한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읽었잖아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몰랐던 삶을 알게 되었잖아요.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기보다 들었다는 대답이 먼저지요. 그 대답은 누군가의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말을 잇는 것이며, 누군가가 또 다른 응답을 해줄 것이란 믿음으로 또 이어집니다.

읽고 쓰기의 기쁨이 여기 있습니다. 누군가 글의 형태로 건네온 말을 듣고 대답하는 것. 그 대답을 또 다른 사람이 읽고 다시 말을 보태는 것. 처음의 말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도 있고, 다른 쪽으로 튕겨낼 수도 있고요. 미처 말해지지 않은 자리를 채울 수도 있겠습니다. 아주 먼 곳에서 건너온 말이 전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새로운 글을 낳고, 또 다른 글을 낳는 이어짐을 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희망, 공감, 연대 같은 여러 갈래의 마음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읽은 뒤에 쓴다고 해서 독서 감상문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읽은 글에서 멀어져도 괜찮습니다. 그 글이 내게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요. 그것을 붙들고 나의 글을 시작하면 됩니다. 그 글을 통과한 뒤 내게 생겨난 말을 따라가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글이 절박한 응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응답의 이유나 크기는 모두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읽다가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좋습니다. 조금 전까지 쓸 것이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몇 줄 쓰고 있거든요. 이렇게 쓰는 사람에게 책은 든든한 창고입니다. 언제나 혼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한다면 얼마나 막막할까요. 다행히 세상에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온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읽으며 생각을 키우고요. 그러다가 응답하고 싶은 마음도 자라날 것입니다.

저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닙니다. 작은 가방에는 작은 책을, 큰 가방에는 여러 권의 책을 담고요. 이제 얼른 나가봐야겠습니다. 아까부터 창밖이 자꾸 신경 쓰였거든요. 오늘의 가을을 즐기기 위해 책 한 권 들고 나갑니다. 가을바람 맞으며 책 읽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으니까요.

 

글·사진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독자 글

 

미워하는 마음을 글로 쓰려면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오래 바라봐야 합니다. 왜 싫은지, 무엇이 그토록 미운지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지요. 이번에는 ‘내가 미워하는 ( )’라는 비유를 활용해 써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네 분이 저마다 다른 미움의 모양을 보내주셨습니다.

성호님은 미워하는 대상을 괄호 안에 끝내 적지 않은 채 풍등을 띄웁니다. 보내고 싶은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 미움과 서러움이 풍등에 겹쳐집니다. 마침내 뼈대만으로 날아가는 풍등의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모양이 보입니다. “모든 게 헐려도/ 뼈대만으로 날아가는 게 있더라고”라는 구절이 오랜 관찰 끝에 나온 표현인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래도 제목을 좀더 고민해보시지요.

정선님은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속 한 가족을 바라보다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이 글은 비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영화 속 아버지와 오래전 어머니의 고통을 외면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겹쳐놓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나란히 바라보면서 한 사람을 향한 분노는 가부장의 독선과 위선에 대한 질문으로 넓어집니다. “자기 한 몸 편한 대로 굴리면서 여자들의 보살핌으로 아흔 넘게까지 살면 행복하게 장수한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오래 쌓아온 미움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진님은 ‘그’를 미워하다가 점점 미워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미움은 ‘날카로운 잣대’가 되어 자신을 찌르고, 소용돌이치고, 기차 꽁무니를 쫓듯 달려갑니다. 미운 사람을 자신이 만든 상자에 가두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바람처럼 스쳐가고 터널처럼 통과해야 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 비유를 거치면서 한 가지 말로 붙잡기 어려운 미움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두리님의 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두리님이 미워하는 것은 분홍색입니다. 그런데 정말 미운 것이 색 자체인지, 그 색에 따라붙는 의미들인지 알쏭달쏭해집니다. “Easy Peasy, Lemon Squeezy.” ‘이지’ 하면 ‘피지’가, ‘레몬’ 하면 ‘스퀴지’가 따라오듯 분홍에는 여자, 공주, 임신부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에서 ‘자동으로 무언가가 따라붙는다’는 닮은 점을 찾아낸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비유를 통해 미워하는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처음과는 조금 다른 질문에 도착했다는 점도 이번 과제와 잘 어울렸습니다. 두리님의 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분홍은 Easy Peasy, Lemon Squeezy

 

서럽게 울면서 학교에 가던 날이 있었다. 하필 흐린 날이었다. “너 왜 우니?” 하고 걱정스레 묻던 선생님에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이거 입고 가기 싫은데 엄마가 이거 입고 가래요” 하고 답했던 것 같다. 동화 속 공주님이 입을 법한 동그란 레이스 소매에 발레복의 튀튀처럼 레이스가 폭 퍼지는 느낌의 옷이 나는 정말 싫었다.

이런 나와는 달리 그 시절 엄마는 분홍색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무채색 옷을 좋아했고, 딸들을 공주처럼 키우고 싶은 마음에 분홍색을 마구 입혔던 것 같다. 엄마의 그런 바람과 달리 아이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치마를 피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단지 파란색이 분홍의 반대라는 이유만으로 멋져 보였달까?

Easy Peasy, Lemon Squeezy. 이지 하면 피지가, 레몬 하면 스퀴지가 따라온다. 분홍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인 여성성에는 늘 분홍색이 따라다닌다. 여자 화장실의 분홍색 표지판, 임신부석의 분홍색 시트, 핑크리본 캠페인의 분홍 리본, 여성 전용 주차장의 분홍색 페인트까지. 여자아이들을 겨냥한 세계는 또 얼마나 분홍투성이인가? ‘사랑의 하츄핑’ 몸통 색깔을 떠올려보면 모두가 알 수 있다.

분홍은 때때로 괴짜를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남자는 핑크’라며 굳이 한마디씩 보탠다. 드라마에서 분홍색 옷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중년 여성은 표독스럽게 그려진다.

분홍이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이렇게까지. 그냥 하나의 색깔일 뿐인데 사람들은 의미 부여를 멈추지 않는다. 분홍이 오명을 벗는 날이 오긴 올까? 그날이 오면 나도 분홍을 싫어하지 않게 될까. 잘 모르겠다. 분홍에 여자도, 공주도, 임신부도, 괴짜도 자동으로 따라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닫혀 있는 결말은 재미없으니까.

ᅠ

김두리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이번에는 무언가를 읽고 글을 써봅시다. 책 한 권을 다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도 좋고, 기억에 남은 문장, 신문 기사나 편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문장도 괜찮습니다. 글을 읽고 내 안에서 생겨난 이야기를 써주세요. “이 글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에서 멈추지 말고, 왜 그 대목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조금 더 따라가봅시다. 떠오른 기억을 써도 좋고, 글쓴이에게 대답해도 좋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멀리 가도 괜찮습니다. 원래의 글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어렵다면 나를 잠시 멈춰 세운 문장 하나에서 시작해보세요. 좋아서 자꾸 생각나는 문장, 이해할 수 없어 걸리는 문장, 반박하고 싶은 문장도 좋습니다. 그 문장에서 시작한 나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시든 에세이든 형식은 자유입니다.

 

주제: 읽고 나서

분량: 에세이는 1천 자 내외, 시는 분량 제한 없음

마감: 2026년 10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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