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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싹쓸이에 중소기업 '가스 고사' 위기... "공장 멈출 판"

요약
  • 전기요금 인상과 대기업의 재고 싹쓸이 등으로 산업용 가스 수급에 비상이 걸려 중소 제조기업들이 공장 중단 위기에 처했다.
  •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의 안전재고 비축물량 완화와 비상 수급조절 협의체 가동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산업용 가스 수급 비상, 생산량 감축 등 영향... 중소업계 "대기업 72시간 비축물량 완화해 달라"
▲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반도체, 석유화학, 금속가공 등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숨통' 역할을 하는 산업용 가스(액체질소·산소)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생산량 감축에 대기업의 재고 싹쓸이, 예기치 못한 플랜트 사고까지 겹치면서 중소 제조업체들이 가스를 구하지 못해 공장을 멈춰야 할 위기라고 호소하고 있다.

산업가스 업계와 한국고압가스제조충전안전협회 등에 따르면, 최근 중부권을 중심으로 액체질소 공급량이 평시 대비 70~80% 급감했다. 한 번에 10톤씩 공급받던 물량이 2~3톤 수준으로 토막 났고, 수도권 충전업체들은 가스를 구하기 위해 여수·광양·울산까지 원정 운송에 나서는 등 극한의 차질을 빚고 있다.

플랜트 정지에 정기보수 겹쳐... 중부권 충전업계 '발등의 불'

이번 수급난의 직접적인 발화점은 지난 8월 말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형 액메이커(Air-Maker, 액화 산업가스 생산업체)의 플랜트 중단 사고였다. 이틀간 설비 이상으로 플랜트가 멈춰 서자 백업용 질소(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정이 멈추거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비용으로 준비해 두는 질소)가 대규모로 투입됐다.

설상가상으로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 충남 서산 석유화학단지 공장들의 정기보수가 진행되면서 잔류 가스를 제거하는 퍼지(Purge)용 질소 수요가 폭증했다.

이로 인해 충청권 등 중부권 산업가스 충전·유통업계는 당장 대형 고객사에 납품할 물량조차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불활성 가스인 질소는 공장 가동 내내 산화 방지와 압력 유지 등을 위해 지속해 투입되어야 하는 필수 재료여서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중소 제조 현장의 연쇄 셧다운이 우려된다.

액화질소는 영하 196도의 극저온 가스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중 회로 산화를 막는 퍼지(Purge)용, 석유화학 배관 잔류가스 제거 및 폭발 방지용, 금속 레이저 절단, 식품 급속 냉동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액체산소는 강한 산화제 역할을 한다. 제철소 용광로의 제련 및 고온 용접, 이차전지 양극재 소성(고온 열처리) 공정, 양어장 산소 공급, 병원 의료용 등에 쓰인다.

업계 "근본 원인은 '전기요금 폭등'과 '대기업 안전재고 쏠림'"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일시적 악재 때문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서 터져 나온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첫째는 전기요금 폭등에 따른 생산 원가 압박이다. 공기를 압축·냉각해 액체질소를 만드는 대형 공기분리장치(ASU) 플랜트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그러나 지난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75.8% 껑충 뛴 반면, 가스 공급가는 이를 제때 반영하지 못했다. 린데코리아, 에어퍼스트 등 가스를 직접 생산하는 액메이커들 입장에선 가스를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자 생산량을 최저 수준으로 낮춰놓았고, 작은 수요 충격에도 시장 전체가 휘청이는 체질이 된 것이다.

둘째는 반도체 등 대기업의 안전재고 비축 독점이다. 국내 질소 시장(2025년 기준 약 1100만 톤 추정)의 90% 이상은 대형 반도체·중화학 기업에 파이프라인 등으로 우선 공급된다. 최근 가동률이 올라간 반도체 대기업들이 72시간 분량의 질소 안전재고를 싹쓸이 비축하면서, 전체 물량의 10% 미만을 나눠 쓰는 중소 충전업체와 하청 제조업체로 갈 물량이 사실상 끊긴 셈이다.

액체산소도 양어장·이차전지 수요 몰리며 '연중 품귀'

산소 수급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철강경기 불황으로 포스코 등 대형 철강사들이 액체산소 출하량을 줄인 반면, 충북 지역 이차전지 양극재 공장(재세능원 등)이 월 1만 톤 이상의 산소를 삼키고 있다. 여기에 여름철 양어장 수요까지 겹치면서 과거 여름철에만 잠시 나타나던 산소 부족이 '연중 만성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고압가스제조충전안전협회를 비롯한 현장에서는 정부와 대기업의 전향적인 상생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협회는 최근 "삼성전자 등 대규모 수요 대기업 및 가스제조사(액메이커)와 협의를 통해 현행 72시간 수준인 안전재고 비축물량을 한시적으로 10~20%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대기업 비축물량을 10%만 축소해 시중에 풀어도 중소기업 가동률을 70~80% 이상 회복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기업 비축량 한시적 완화하고 민관 수급협의체 구성해야"

아울러 "남부권(여수·울산 등)에서 수도권으로 가스를 실어 나르는 충전업체들의 물류비 부담을 덜어줄 '한시적 유류·물류비 바우처 지원'과 함께, 정부·가스제조사·대기업·중소충전업계가 참여하는 '비상 수급조절 협의체'를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가 현실화 논의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십수 년째 제자리걸음인 산업용 가스 가격 구조를 현실화하지 않고서는 액메이커의 생산 의욕을 고취할 수 없고, 수급 불안 역시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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