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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입시지옥 아닌 유토피아로… '파친코' 이민진이 9년 만에 내놓은 역작

요약
  •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이 9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출간했다.
  • 이 작품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입시 경쟁 속에서 전인적 성장을 추구하는 학원을 배경으로 한인 가족들의 삶과 역경을 그렸다.
[책과 세상] 이민진 '아메리칸 학원' 재미 한인 소설가 이민진이 세 번째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펴냈다. 2010년 5월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세계작가축제' 참석차 방한해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 작가. 원유헌 기자 재미 한인 소설가 이민진이 세 번째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펴냈다. 2010년 5월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세계작가축제' 참석차 방한해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 작가. 원유헌 기자

영어 원서는 지난달 29일에 나왔고 한국어 번역본은 이달 14일 출간되는 '아메리칸 학원'은 한국계 미국 소설가 이민진(58)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8세 때인 1976년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진은 기업변호사로 일하다가 작가로 전업한 뒤 대략 10년 단위로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2007년 현지 언론의 대대적 호평을 받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출간하며 인상적인 장편 데뷔식을 치렀고, 2017년에 선보인 '파친코'가 30여 개국 번역 출간과 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지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재미 한인 가족 자녀 세대의 삶을 핍진하게 묘사한 첫 장편과, 재일 조선인 가족사를 4대에 걸쳐 유장하게 그린 두 번째 장편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이민)'를 주류 문학의 주제로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 장편도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야기다. 존(고요한)-헬렌(송혜진) 부부와 세 자녀가 개인적인 때로는 역사적인 풍파에 휩쓸려 서울, 시드니, 캘리포니아로 옮겨 다니며 삶의 터전을 닦는 사연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룬다. 시대적 배경은 1992년 3월에서 2007년 5월까지로 명시되는데, 사건이 시간순으로 전개되는 연대기 구성을 취한다는 점도 작가의 전작들과 공통적이다.

물론 한국어판 기준 1,100쪽을 헤아리는 대하소설이 이리 간단히 요약될 수는 없다. 조지 엘리엇, 브론테 자매 등 작가 스스로도 문학적 스승으로 여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사실주의 소설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민진은 신작에서도 저마다의 사연과 개성을 간직한 여러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마치 형형색색 뜨개질처럼 노련하게 엮어 나간다. 쉬운 어휘와 간결한 터치를 보여주는 3인칭 시점 서술은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해준다.

신작에 학원이 등장할 것이며 원서 제목에도 학원을, 그것도 한국어 발음(Hagwon) 그대로 표기하겠다는 건 작가가 일찌감치 예고했던 바. 다만 그 학원이 한국식 학원일 거고 세계적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을 전면에 부각시킬 거라는, 한국 독자라면 으레 가졌을 법한 짐작은 결과물과 거리가 있다.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만한 미도(존-헬렌 부부의 막내딸)를 포함해 한국계 자녀 세대가 손수 세우고 운영하는 학원은 성적과 진학에 목매는 입시교육에 맞서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곳이다. 또한 이 젊은 교육사업가들에게 성장과 자아실현의 공간인 동시에 사랑과 우정을 꽃피우는 장소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 학원은 차라리 반(反)학원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들은 학원 이름을 '엑소더스'(대탈출)라고 짓는데, 이는 소설의 기저를 이루는 기독교적 사상에 비춰 의미심장하다. 엑소더스는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노예살이 탈출 서사(출애굽)에서 기원한 단어. 입시의 굴레에 매인 학생들을 인도하는 미도와 그 친구들은 이로써 모세, 여호수아와 같은 출애굽 지도자의 아우라를 획득한다.

소설적 재미는 부모 세대 이야기가 더한지도 모르겠다. 미도의 부모를 포함, 이들이 꾸리는 집안은 1997년 외환위기, 2007년 금융위기라는 사회적 재난까지 겹치며 드라마틱한 굴곡을 겪는다. 그럼에도 자녀의 성공을 뒷받침하고자 신분 하락과 중노동이 따르는 이주를 기꺼이 감행한다. 이들은 형제간 혹은 친한 이웃 간으로 어려울 땐 대가 없이 돕는 선물경제를 형성하는데, 이 중에는 꼬인 갈등을 단숨에 해결하는 그리스 비극 속 신(神)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연상케 하는 재력가 집안이 여럿이라 이야기를 다소 싱겁게 만들기도 한다.

내리사랑은 물론이고 애욕이 넘치는 쪽도 부모 세대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파격적인 불륜 관계를 맺는다. 특히 정단비는 깊은 열등감이 수반된 맹목적 이기주의로 주변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전형적 팜므파탈 행보를 통해 선한 인물로 채워진 작품의 기독교적 정조에 이질적인 균열을 낸다.

아메리칸 학원(전 2권)·이민진 지음·정소영 옮김·현대문학 발행·588쪽 568쪽·각 권 2만 원 아메리칸 학원(전 2권)·이민진 지음·정소영 옮김·현대문학 발행·588쪽 568쪽·각 권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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