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그단스크에 입항하는 팬스타아크로호: 8월 22일 부산항을 출발한 팬스타아크로호(2,758TEU급)가 9월 18일 유럽의 마지막 기항지인 그단스크에 입항하고 있다. (출처: 해양수산부)━
북극해 왕복 통과 성공
우리나라 컨테이너선이 처음으로 북극해 왕복 운항에 성공했습니다. 8월 22일 부산항을 떠난 컨테이너선 '팬스타아크로호'는 북극해를 가로질러 9월 12일 영국(팰릭스토우)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유럽의 물류 관문인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폴란드 그단스크를 거쳐 9월 19일 부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팬스타아크로호는 어제 새벽 무렵 북극해를 서에서 동으로 완전히 관통하며 북극해 왕복 운항에 성공했습니다. 북극해를 빠져나온 팬스타아크로호는 현재 파도가 거친 베링해를 지나고 있으며 이달 12일쯤 부산항에 입항해 항해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북극항로를 통해 우리 배가 유럽으로 간 것도 처음, 유럽에서 돌아오는 것도 처음입니다.
팬스타아크로호 현재 위치: 9월 19일 폴란드 그단스크를 출발한 팬스타아크로호는 10월 2일 새벽 북극해를 지나 베링해로 진입했다. (출처: 국토교통부)우리 정부가 팬스타아크로호를 북극항로에 투입한 목적은 북극항로 실증입니다. 즉, 북극해가 실제로 컨테이너선이 운항할 수 있는 환경인지, 얼마나 속도를 낼 수 있는지, 해빙(바다 얼음)과 악천후 등 항해의 위험 요인은 무엇인지,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등을 확인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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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 실증: 운항 환경과 속도는?
팬스타아크로호가 실증한 결과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운항 환경과 속도입니다. 북극항로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수에즈 운하나 희망봉을 돌아가는 기존 항로보다 거리가 훨씬 짧고, 그만큼 운항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로테르담 기준으로 거리는 13,000km, 항해 기간은 20일로 예상해 왔습니다. 수에즈 운하로 갈 때보다 거리는 7,000km, 항해 기간은 10일이나 단축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실제로 팬스타아크로호가 북극항로를 이용해 부산에서 영국 팰릭스토우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20.3일(약 20일 7시간)로 정부가 예측한 20일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만약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를 피해 희망봉으로 우회할 경우 거리와 시간 단축 효과는 더 커집니다.
이번 시험 운항 성공으로 북극항로는 단순히 지도상에서만 짧은 지름길이 아니라, 짧은 거리가 실제 운항 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북극항로와 수에즈 운하 항로 비교: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 항로보다 거리는 7,000km, 운항 시간은 열흘가량 단축되는 지름길이다.팬스타아크로호는 쇄빙선이 아니라 최소한의 내빙 능력만 갖춘 일반 컨테이너선입니다. 그런데도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동안 러시아 쇄빙선의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북극해의 얼음이 올여름에도 많이 녹았기 때문입니다. 해빙이 크게 감소하는 늦여름에는 일반 컨테이너선도 적절한 내빙 성능과 극지 운항 준비를 갖추면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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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 실증: 위험 요인은?
그러나 항해가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얼음이 많이 녹았지만 북극항로는 얼음이 없는 항로는 아니었습니다. 팬스타아크로호는 북극해에 들어간 직후 척치해와 동시베리아해에서 많은 유빙을 만나 속도를 크게 낮추며 우회했습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로에서도 비슷한 해역에서 유빙을 만났습니다. 이 경험은 북극항로에서 평균적으로 해빙이 줄어드는 것과 실제 선박의 안전한 통항이 보장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낮은 수온과 기온, 짙은 안개, 유사시 선박 수리 및 구조 인프라 부족도 위험 요인입니다. 북극항로가 항해 가능한 길인 동시에 지속적인 해빙 회피와 위험 관리가 필요한 항로라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북극해 해빙 분석 (8월 30일~9월 1일): 팬스타아크로호가 북극해로 진입할 당시 척치해와 동시베리아해에서 많은 유빙(주황색과 초록색)이 관측됐다. (출처: AARI)
팬스타아크로호 운항 속도: 밤에 유빙을 만난 팬스타아크로호는 멈춰 선 뒤 우회 항로를 찾았다. 9월 1일 속도가 0으로 떨어진 것에서 배가 멈춰 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CHNL)━
북극항로 실증: 러시아 영향력은?
북극항로 운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팬스타아크로호는 러시아 쇄빙선의 도움 없이 북극항로를 통과했습니다. 이는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러시아 쇄빙선에 의존해야 한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낮춘 중요한 실증 결과입니다.
그러나 북극항로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 연안으로 이어지며, 러시아 당국의 항행 허가와 신고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만약 사고를 당하거나 큰 해빙을 만날 경우 러시아의 쇄빙·구조·항만 서비스가 필요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러 금융 제재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정부도 출항 전부터 대러 제재를 북극항로의 핵심 고려 사항으로 제시했고, 국내외 싱크탱크들도 이번 운항을 미국의 동맹국이 러시아가 관리하는 항로를 어떤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사례로 평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험 운항은 늦여름에 해당 항로를 러시아 쇄빙선 도움 없이 운항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지만, 러시아의 행정권과 비상 지원 체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도 확인시켰습니다.
'한국은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통해 러시아의 인프라 의존도를 시험하고 대체 항로를 찾으려고 한다' (출처: Andersen Institute)━
북극항로 실증: 경제성은?
많은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수년 안에 상업적으로 중요한 항로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합니다. 연중 쇄빙선 없이 운항 가능한 시기가 여름~초가을로 제한적인 데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극해 중심부는 지금도 한여름에는 두꺼운 해빙으로 덮여 있어 이를 피해 연안과 가까운 곳으로 다녀야 하는데 연안 항로는 배의 흘수 및 선폭에 상당한 제한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무역신용 보험사인 '코파스'사는 북극항로를 통한 운송 비용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때보다 40%나 비싸, 경제성만 따진다면 지금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항해 가능 기간이 늘어나고 큰 컨테이너선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북극항로가 전 세계 해운·무역 지도를 본격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컨테이너 TEU당 운임 비교: 대형 컨테이너선이 다닐 수 없는 북극항로는 컨테이너 운임이 수에즈 항로보다 40% 비싼 것으로 분석됐다. (출처: Coface)━
두 개의 위기에 열리는 항로
북극항로는 두 개의 큰 위기로 열리고 있는 새로운 항로입니다. 두 개의 위기란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위기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북극항로 운항 성공은 가속화되는 기후변화 시대의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극항로는 사실 대항해시대인 16세기부터 주목받던 항로였습니다.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선점한 항로를 우회하려고 북극항로 개척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북극의 한파와 얼음은 장벽처럼 배를 막고 탐험가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기후변화는 그 오래된 장벽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찾아온 지름길이 열리고 있는 것은 그 길을 막아 왔던 북극의 기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553년 북극항로를 찾아 북극해로 진입한 영국 탐험대의 배가 얼음에 갇혀 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 (출처: Wikimedia)북극은 지구의 핵심 기후 조절 장치입니다. 눈과 해빙은 햇볕을 우주로 반사해 지구가 과도하게 가열되는 것을 막고, 차가운 북극과 따뜻한 저위도 사이의 온도차는 대기와 해양을 움직입니다.
해빙이 녹으면 검푸른 바다가 드러나 더 많은 햇볕을 흡수하고,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82배나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돼 지구온난화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대기와 해양 순환에 급격한 변동을 초래해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발생할 위험도 커집니다.
북극항로 운항 확대는 취약한 북극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선박에서 배출되는 블랙카본이 눈과 얼음 위에 쌓이면 햇볕을 흡수해 얼음이 더 빨리 녹을 수 있습니다. 기름 유출과 소음, 생태계 교란도 우려됩니다. 특히 추운 날씨와 부족한 인프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오염을 제거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기후 전문가들은 위기의 시대에 북극항로 이용의 정당성은 단순히 경제성을 넘어, 에너지 소비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김승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