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락고재 회장이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에서 직접 지은 한옥과 정원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안 회장은 이 호텔을 짓는 데만 15년을 들였다. 권용훈 기자“전통문화 사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최고급으로 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에게 그 나라의 품격을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만찬을 함께한 곳은 경북 안동의 한옥호텔 ‘락고재 하회’였다. 이 외교 무대를 만든 사람은 1957년생 안영환 락고재 회장이다. 한옥을 지을 목수가 부족하자 학교를 세웠고, 기둥에 쓸 소나무는 십수 년 전에 사서 창고에 보관했다.
주변 모두가 말렸지만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 명동의 빌딩도 팔았다. 객실 20개를 갖춘 호텔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년. 미국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그가, 한옥을 한 채 한 채 쌓아올리며 내놓은 대답이었다.
락고재 하회는 2024년 10월 정식 개장해 만 2년을 앞두고 있다. 연간 매출은 약 20억원으로 고객의 70~80%가 외국인 관광객이다. 수십년 동안 품을 들인 한옥이 자연스럽게 손님을 불러들이고 있는 셈이다.
흙벽과 기와가 이어진 '락고재 하회'의 담장. 안 회장은 지붕에 얹을 기와의 색과 위치도 직접 골랐다. 권용훈 기자소나무 25년, 고미술품 30년 모아…‘꿈꾸는 사나이’최근 락고재 하회에서 만난 안 회장은 한옥 건물 사이를 걸을 때마다 발걸음을 멈췄다. 정자의 나무가 왜 휘어 있는지, 기와의 색은 왜 제각각인지 설명할 것이 많았다. 검정과 회색, 누르스름한 색이 뒤섞인 지붕을 가리키며 그는 “기와 공장에 불량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요즘 기와는 색이 고르게 나온다. 안 회장 눈에는 그 점이 오히려 어색했다. 오래된 한옥처럼 자연스러운 지붕을 만들려고 공장에 색이 제각각인 기와를 구워달라고 했다. 구워낸 기와를 색깔별로 나눈 뒤 어느 자리에 얹을지도 직접 골랐다. 이미 올린 기와를 옮기라고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안 회장은 “까만 기와만 썼다면 그냥 올리면 되는데, 저는 ‘저 회색 기와를 이쪽 저쪽에 놓아보라’고 하니 와공이 저를 싫어했죠”라며 웃었다.
안영환 락고재 회장이 주변 한옥을 바라보며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권용훈 기자한옥 지붕 옆 삼각형 공간인 합각에는 문양 대신 별자리를 넣었다. 같은 무늬를 반복하면 밋밋할 것 같아 몇 년을 고민한 끝에 낸 답이다. 밤에는 작은 조명이 들어와 지붕마다 다른 별자리가 빛난다. 객실 천장에서는 한옥의 나무 골조를 가리지 않았다. 대신 전선과 배관을 숨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호텔에는 손님이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갈 수 있는 숨은 노력이 곳곳에 쌓여 있다.
이런 고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안 회장은 전통문화의 품질이 외국인에게 비치는 그 나라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는 “전통문화 사업은 최고급으로 해야 한다”며 “품질이 떨어지면 우리 문화를 스스로 할인해서 보여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한옥호텔은 숙박시설이자 한국의 품격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한국은 어떤 나라냐”…답 못한 美 엔지니어안 회장이 한국을 보여줄 공간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일하던 때다. 한국외대를 졸업한 그는 1980년대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약 10년간 엔지니어로 일했다. 가까워진 현지인들이 “한국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지 못했다. 중국은 규모가 크고 일본은 섬세하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정작 한국을 설명할 말은 찾기 어려웠다. 안 회장은 “나도 답을 못해 당황했다”며 “한국을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었다”고 말했다.1990년대 초 부친의 권유로 귀국해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1992년 서울 마포의 낡은 한옥을 개발하면서 직업이 다시 바뀌었다. 집주인은 한옥을 허물고 빌라를 짓고 싶어 했다. 안 회장은 그 집이 아까워 보였다. 집주인을 설득해 한옥을 빌린 뒤 한정식집 ‘진사댁’을 열었다. 컴퓨터 엔지니어가 부동산 개발업자를 거쳐 한옥집에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 본관에 전시된 유교책판(목판). 안영환 락고재 회장이 수집한 고미술품 가운데 하나다. 권용훈 기자미국 시절의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안동의 고택에서 찾았다. 한옥의 지붕선이 주변 산세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한국을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서 직접 느끼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안 회장은 “사진만 찍고 떠나는 ‘보는 관광’이 아니라 한옥에서 자고 일어나며 경험하는 ‘느끼는 관광’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안동 고택 주인들과 계약을 맺고 숙박과 문화 체험을 결합한 여행을 운영했다. 그러나 오래된 집은 화장실과 난방 등에서 손님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전통을 보존하는 것과 돈을 받고 편안한 하룻밤을 제공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안 회장은 식당을 운영하며 익힌 음식과 접객 경험을 더해 2003년 서울 북촌에 한옥호텔 락고재를 열었다. 이후 안동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한옥 숙박의 완성형을 짓기로 했다.
락고재 하회 본관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잇따라 체크인하고 있었다. 안 회장에 따르면 전체 투숙객의 약 70%가 외국인이다. 그가 미국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냐”는 질문을 받으며 꿈꿨던 공간에 이제 세계 각지의 손님이 찾아오는 셈이다. 권용훈 기자자금·인력 부족해 학교부터…기둥 목재는 15년 말려호텔 부지로 안동을 택한 것도 사업성만 따진 결정은 아니었다. 교통이 편리하고 관광객이 많은 다른 지역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 회장은 오히려 개발이 덜 돼 고택과 전통이 남아 있는 안동에 마음이 갔다. 다만 그가 원하는 수준의 한옥을 지으려면 돈뿐 아니라 사람이 필요했다. 전통 기법을 익힌 목수를 충분히 구하기 어려웠고, 외부 인력을 고용해 오랜 공사를 이어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컸다.그래서 호텔을 짓기 전에 한옥학교를 세웠다. 안동의 한옥학원에서 10년간 80여 명을 양성했다. 학생들은 익힌 기술을 실제 공사 현장에서 실습하며 락고재 하회를 지었다. 학생이 많을 때는 큰 집을, 적을 때는 작은 집을 올렸다. 공사 일정을 먼저 정해놓고 인력을 투입하는 일반적인 개발 사업과는 순서가 달랐다.
처음엔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집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들었다. 안 회장은 “오히려 배운 원칙대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만들었다”고 했다. 그 자신도 늘 공사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언덕에 늘어선 한옥의 용마루가 차례로 겹쳐 보이기를 원했지만 평면 도면만 보고 완성된 풍경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집을 올린 뒤 너무 높으면 낮추고, 낮으면 다시 올렸다.
창덕궁 관람정을 본뜬 부채꼴 정자에는 지붕 곡선과 꼭 맞게 휜 나무가 필요했다. 곧은 소나무를 억지로 휘면 갈라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모양으로 자란 나무를 찾아야 했다. 안 회장은 “정자를 짓는 것보다 나무를 찾는 데 몇 년이 걸렸다”고 했다. 기둥과 보에 쓸 울진 소나무도 공사에 앞서 사들였다. 일부 목재는 그늘에서 약 15년간 말렸다. 필요한 순간에 구하려 했다면 맞는 나무가 없어 공사를 멈춰야 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락고재 하회 한옥 호텔 기와 본관. 짓는 데만 무려 15년이 걸렸으며, 설계 변경만 100차례 이상 진행됐다. 권용훈 기자소나무 25년 모아 … 한옥 곳곳에 숨은 디테일건물 주변의 소나무는 25년 동안 모았다. 객실과 마당에 놓인 고미술품은 30년 동안 수집했다. 안 회장은 “지금 와서 같은 것을 3년 만에 지으려면 내가 쓴 돈의 열 배는 들어갈 것”이라며 “나는 돈 대신 세월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 명동의 빌딩까지 처분했다. 그의 지인들이 붙여준 별호는 꿈꾸는 사람이라는 뜻의 ‘몽중(夢中)’이다.그렇다고 돈을 무조건 많이 쓰는 사람은 아니다. 밤에 한옥의 윤곽을 드러낼 조명을 설치하려고 견적을 받았더니 10억원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안 회장은 방식을 바꿔 약 3000만원에 원하는 실루엣을 만들었다. 반대로 기와는 균일한 제품을 쓰는 것보다 비싸고 번거로워도 색이 제각각인 것을 주문했다. 돈을 아끼는 기준과 쓰는 기준이 분명했다.
락고재 하회는 지자체의 건축 지원을 받지 않고 지었다. 안 회장은 목수를 기를 학교를 만들고, 재료를 모으고, 숙박과 음식 서비스를 갖추는 일을 개인 사업으로 추진했다. 완공한 뒤에도 직접 해결할 수 없는 과제는 있다. 그가 기자와 호텔을 도는 동안 정자와 석물, 기와마다 설명을 덧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안내가 없으면 손님은 그 사연을 알기 어렵다.
안동시도 외국인 관광객이 호텔 곳곳의 건축물과 유물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 전광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안 회장은 이런 설명과 함께 지역 고택의 화장실·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운영자를 교육하며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는 일이 지자체가 맡을 역할이라고 봤다.
나무 기둥과 서까래를 드러낸 '락고재 하회' 객실 내부. 권용훈 기자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 객실의 화장실. 한옥 창문의 형태를 살리면서 샤워실과 세면대는 현대식으로 꾸몄다. 안영환 락고재 회장은 고택 숙박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화장실부터 편리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용훈 기자호텔 운영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한옥은 단층이라 같은 땅에 일반 호텔만큼 많은 객실을 낼 수 없다. 객실이 흩어져 있어 관리에도 손이 더 간다. 방이 20개 안팎이라 조식 뷔페 대신 음식을 개별적으로 준비한다. 안 회장이 운영해온 한정식 사업장의 조리 인력을 활용하는 이유다.
겨울에는 손님이 줄어든다. 지난해 가을 성수기와 겨울철을 비교했을 때 겨울 매출은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성수기에 바쁘게 일한 직원들이 비수기에 휴가를 모아 쓸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경북 안동 '락고재 하회'의 흙담. 안영환 락고재 회장은 미장 과정에서 생긴 불규칙한 자국이 마음에 들어 표면을 덧바르지 않고 그대로 남겼다. 권용훈 기자정부지원 없이 개인이 추진…“고택 자체가 관광”안 회장은 체류형 관광을 위해 새 놀이시설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봤다. 그는 “300~400년 된 고택에서 새소리를 듣고 경치를 바라보다 낮잠을 자는 것, 그 자체가 관광”이라고 말했다. 손님이 기존 고택에 편하게 머물며 그 집의 이야기를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안 회장은 고택 주인과 여행객을 연결하는 일에서 출발해 음식을 만들고, 목수를 키우고, 호텔을 지었다. 한 지역의 관광 기반을 만들기 위해 공공 영역에서도 고민할 법한 일들을 한 사람이 사업으로 묶어낸 셈이다. 그가 미국에서 답하지 못했던 “한국은 어떤 나라냐”는 질문에는 이제 말 대신 보여줄 공간이 생겼다. 일본 총리를 맞은 한옥의 커다란 기둥은 그가 십수년 전에 사서 말려둔 나무다.
'락고재 하회' 실내에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사진이 놓여 있다. 두 정상은 지난 5월 이곳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권용훈 기자안 회장은 청년들에게도 전통문화와 고택을 활용한 사업에 적극 뛰어들어보라고 권했다. 한옥을 짓지 않더라도 기존 고택을 개조해 숙박, 음식, 여행 기획까지 아직 손댈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다만 개인의 열정에만 맡겨서는 산업으로 키우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국가와 지자체가 고택의 화장실 등 기본 시설을 정비하고, 운영자를 교육하며,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청년도 안 회장처럼 처음부터 학교를 세우고 모든 시행착오를 혼자 감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미국에서 답하지 못했던 “한국은 어떤 나라냐”는 질문에 평생을 들여 답을 만들어왔다. 고택 주인과 여행객을 연결하고, 한식을 만들고, 목수를 키워 마침내 일본 총리의 만찬장이 된 한옥을 지었다. 그 건물의 기둥은 십수 년 전 사서 말려둔 나무다. 안 회장이 다음 세대에 권하는 일은 그 나무를 다시 심는 것과 닮았다. 당장 완성되지 않더라도, 한국의 전통을 오래 사랑받는 사업으로 키워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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