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급하다고 종신보험 깨거나 투자 자산 섣불리 매도해선 안돼
종신보험 유동화 제도 활용해 일부 금액 생전 연금처럼 수령
깔고 앉은 집은 주택연금 전환해 담보대출 상환과 생활비 동시 해결
최영민 상명대 경영공학과 특임교수는 20년 근무한 삼성생명에서 2024년 희망퇴직한 뒤 강사 겸 작가로 ‘제2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퇴사 전 구체적인 현금흐름 목표를 세우고 월 분배형 상장지수펀드(ETF)를 꾸준히 모았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최영민 상명대 경영공학과 특임교수(50)는 조기 은퇴한 지 1년 9개월 된 ‘파이어족’이다. 삼성생명에서 20년 근무한 2024년에 희망퇴직했다. 퇴사를 결심한 건 회사를 나오기 4년 전인 44세 무렵이다. 최 특임교수는 “연차가 쌓일수록 성장이 막히고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희망퇴직금 수령 요건을 충족한 첫해에 사원증을 반납했다”고 말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그는 촘촘한 은퇴 계획을 세웠다. 엑셀 프로그램에 ‘1년 후 50만 원, 2년 후 100만 원, 3년 후 200만 원’ 등 구체적인 현금흐름 목표를 세우고 월 분배형 상장지수펀드(ETF)를 꾸준히 모았다. 퇴사 3개월 전에는 이 경험을 담은 책을 펴냈는데 지금까지 6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자산운용과 금융 및 대출 상품 기획 같은 업무를 두루 거친 그는 현재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강연장에서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부족한 현금 흐름이나 갑자기 필요한 목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 그는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지면 당황해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자산과 금융 상품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쓸 돈 필요해도 ‘세 가지’는 신중하게수입이 줄거나 끊기는 은퇴 이후에도 돈 쓸 일은 자주 생긴다. 자녀 결혼이나 병원비처럼 큰돈 들어갈 일도 있지만, 생활비를 감당할 일정 수입도 필요하다. 최 특임교수는 은퇴자들이 이 두 가지 자금을 마련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 세 가지를 꼽으며 주의를 당부했다.
첫째, 수십 년 납입한 종신보험 같은 보장성 보험을 성급하게 해지하는 것이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해약환급금이 급해서 보험을 해지하면 이후 다시 보험에 가입할 때 나이와 건강상태 등에 따라 보험료가 높아지거나 가입 조건이 불리해질 수 있다.
둘째,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현역 시절이라면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은퇴 후에는 이자 부담이 노후 자산을 갉아먹을 수 있다. 소득이 감소하는 은퇴 후에는 대출 상환 계획을 더욱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
셋째, 장기 투자 목적으로 모아둔 주식과 ETF를 한꺼번에 매도하는 것이다. 투자 자산은 필요에 따라 현금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하락기에 자산을 매도하면 손실이 영구적으로 확정된다.
종신보험 200% 활용 전략종신보험은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약관에 따라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보장성 보험이다. 가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가족의 생계를 지원하려는 목적이 크다. 1990년대 초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뒤 국제통화기금(IFM)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대중화됐다.
50, 60대는 목돈이 필요할 때 종신보험 해지부터 고려하는 경우가 있다. 보험이 딱히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면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최 특임교수는 “보험을 유지하면서 목돈이나 현금흐름을 확보할 방법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종신보험을 노후 연금으로 활용할 방법도 생겼다”고 짚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를 도입했다. 사망보험금 중 일부를 가입자가 생전에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올해 1월 2일부터 전체 생명보험사가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이 제도를 이용하려면 신청 시점 만 55세 이상이면서 보험료 납입을 모두 마친 상태여야 한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보장받는 사람이 같아야 하며 신청 당시 보험계약대출 잔액이 없어야 한다.
연금으로 활용 가능한 금액은 사망보험금의 최대 90%다. 가입자는 이 범위에서 생전 지급 금액과 지급 기간을 선택할 수 있다. 보험사는 신청 전 조건에 따른 예상 수령액과 남게 되는 사망보험금을 비교한 시뮬레이션을 제공한다. 생전에 받는 금액이 클수록 유족에게 남겨지는 사망보험금은 줄어들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최적의 비율을 설정해야 한다.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해 거액의 사망보험금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유동화 비율은 60~70% 선에서 조절하는 게 좋습니다. 장례비나 배우자 생활비 같은 긴급 자금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급 시점은 소득 크레바스(절벽) 기간에 집중적으로 활용할지, 70대 이후 의료비 등에 활용할지 필요를 따져 정해야 합니다.”
단기 목돈 보험계약대출 고려일시적인 목돈이 필요하다면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도 검토할 수 있다. 소득이나 재직 여부를 따지는 신용대출과 달리 까다로운 심사 과정이 없다. 대부분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으며 대출 가능 금액은 상품에 따라 다르다.
금리도 상품마다 차이가 크다. 보험계약 예정 이율이나 공시 이율 등을 바탕으로 금리가 결정되는 만큼 오래전에 가입한 고금리 보험계약은 대출 금리가 높을 수 있다. 이자를 연체하면 대출 원리금이 해약환급금을 초과해 보험이 강제로 해지될 수도 있다.
최 특임교수는 “보험계약대출은 갑작스러운 병원비를 비롯해 일시적으로 목돈이 필요할 때 검토하는 편이 낫다”며 “보험 해지, 유동화, 대출 가운데 어느 방식이 유리한지는 가입한 상품과 가족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보험사에서 실제 금액을 확인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주택연금으로 목돈과 현금 흐름 동시에은퇴자 상당수가 평생 모은 자산 대부분이 집 한 채에 묶여 있다. 하지만 집이 현금을 내주진 않는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부부 중 한 명이 만 55세 이상이면서 합산 공시가격 12억 원 이하인 주택을 보유한 경우 가입할 수 있다. 내 집에 평생 거주하면서 매월 연금을 받는 방식이다. 종신혼합방식을 선택하면 대출 한도 50% 이내에서 목돈을 꺼내 쓸 수 있다. 가입 기준은 공시가격을 따르지만 실제 수령액은 시세를 기준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부부 중 나이 어린 배우자가 60세인 은퇴자가 시세 12억 원 아파트를 담보로 일반 정액형에 가입하면 평생 매월 253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1억 원이 필요해 미리 인출한다면 수령 연금액은 그 비율만큼 줄어든다. 최 특임교수는 “집이 전 재산이라면 목돈 인출 비중을 10% 안팎으로 최소화하고 월 연금액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했다.
은퇴 시점에 주택담보대출이 남아 있다면 대출상환용 주택연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인 시절에는 감당할 수 있던 원리금 상환액이 은퇴 후에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때 주택연금을 신청해 일시금으로 기존 대출을 갚고, 남은 한도로 매월 연금을 수령하면 지출은 줄이고 소득은 늘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보유 주택이 가입 기준을 웃돈다면 주택 규모를 줄여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남은 자금은 금융자산으로 돌리는 방법을 고려해 볼 만하다. 최 교수는 “공시가격 12억 원 이하 주택으로 갈아타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그 차액은 금융상품 등에 투자하면 이중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금흐름 창출 포트폴리오최 특임교수가 조기 은퇴를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역시 현금흐름이었다. 여러 투자 방법의 장단점을 비교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월 배당 시스템이었다. 그는 수령한 퇴직금 중 일부를 월 분배형 ETF 등에 투자해 매달 들어오는 현금흐름을 만들고 여기에 아내 소득을 합쳐 생활비를 마련했다.
“퇴직금 중 1억800만 원가량을 거치식으로 월 배당 ETF에 넣었고, 여기서 매월 240만~250만 원 배당금이 나옵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월 분배형 커버드콜 ETF, 초고배당 ETF를 적절히 섞어 포트폴리오를 짰죠. 아내 소득과 합쳐 무리 없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은퇴 자산을 세 바구니로 나눌 것을 권한다.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생활비를 담당할 안전 자산 △추가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월 분배형 커버드콜 ETF △장기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할 시장 지수 ETF 등이다.
그는 “월 분배금은 예금이자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커버드콜이나 초고배당 상품은 분배금과 별개로 원금 가치가 크게 하락할 위험이 있다”며 “변동성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은퇴 이후에는 생활비와 투자 자금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소 1, 2년치 생활비는 예금이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같은 안전한 현금성 자산으로 묶어 둬야 합니다. 그래야 주식시장이 급락했을 때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 투자 자산을 헐값에 매도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거든요. 은퇴를 준비할 때 ‘얼마를 모았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생활비를 어떤 자산에서 언제까지 만들어 낼 것인가’처럼 구체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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