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기초연금이라는 노후소득 보장제도가 몸집을 키워왔다. 소득이 있는 사람이 가입 대상인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소득대체율 하향 조정에 따른 노후보장 약화에도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2007년, 기초연금이 도입됐다. 기초연금은 보험료 납부 여부와 관계없이 세금을 재원으로 일정 소득 이하 노인에게 지급하므로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포괄할 수 있다. 기초연금은 또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에 따른 연금액 감소를 보완하는 역할도 부여받았다.
한국의 노인은 은퇴 후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에 기반한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추가로 노인 소득 하위 70%에 속하면 기초연금도 받을 수 있다. 2025년 65세 이상 노인 1024만명 중 국민연금 수급자는 534만명(52%), 기초연금 수급자는 676만명(66%)이다. 이 중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동시에 받는 노인은 343만명(33.5%)에 달한다.
8월26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을 찾은 시민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2025년, 길고도 긴 논의를 거쳐 국민연금이 18년 만에 다시 개혁됐다.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상향하는, 일명 ‘더 내고 더 받는’ 조정안이 타결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기초연금이 다음 연금 개혁의 주인공이 됐다. 현재 기초연금은 노인 소득 하위 70%에게 매월 약 35만원을 지급한다. 그만큼 재정 지출도 상당하다. 2026년 기초연금 지출은 총 27조4000억원으로 한국에서 단일 예산 사업으로는 가장 크다. 현재 기초연금 재정은 GDP(국내총생산)의 1% 규모인데, 미래에는 최대 3% 수준까지 늘어나리라 전망된다.
기초연금이 지닌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가난한 노인일수록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하는 최저보장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현재 약 1000만명인 노인 수가 2070년대에는 1700만명으로 늘어난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현재의 노인 소득 하위 70%에서 조금이라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요 연금 선진국도 기초연금 대상은 제한하고 보장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월 소득 250만원인 사람이 34만원을 받는 게 좀 이상하다. 노인 빈곤 문제도 심각한데, 필요하다면 하후상박식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언급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모습. ©시사IN 신선영이에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개편안을 준비했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 기준을 현행 ‘노인 인구 소득 하위 70%’에서, 실제로 가난한 노인들만 포함될 수 있도록 ‘기준중위소득 80% 이하’로 바꾼다는 구상 등이었다. 이 개편안은 8월27일 복지부 장관의 기자 브리핑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발표 1시간을 앞두고 브리핑이 전격 취소됐다. 기초연금 대상 축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라 추정된다.
여론 살피느라 설계도도 못 내놨다
결국 9월1일 최종 공식 발표된 기초연금 개편안은 일반적인 연금개혁안과는 달랐다. 연금개혁안임에도 A4 용지 한 쪽 분량의, 2027년 딱 한 해의 설계만 담은 ‘한해살이 기초연금’ 단면도뿐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우선 2027년 기초연금 지급 대상은 노인 70%를 유지한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니 이번에는 다루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9월1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가장 주목할 점은 기초연금액이다. 2027년 기초연금 수급자 중 맨 아래(소득 하위 30%)는 현행 35만원에서 38만원으로 인상되고, 중간(소득 하위 30~45%)은 물가만큼 반영해 35만9000원, 맨 위(소득 하위 45~70%)는 현행 35만원으로 동결된다. 현행 기초연금 방식대로 지급하면 어차피 매년 물가와 연동돼 내년에는 35만9000원이 돼야 하므로, 실제 인상액은 (38만원에서 35만9000원을 뺀) 2만1000원에 그친다. 대통령이 하후상박을 강조했는데, 사실상 ‘하후’가 없다.
게다가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 노인이 당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도 방치됐다. 현재 100만명에 육박하는 생계급여 수급 노인은 매달 기초연금을 받지만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깎인다. ‘보충성 원리’ 때문이다. 생계급여는 개별 가구가 얻는 소득을 모두 합산한 후 그 금액이 기준선에 미달하면 부족액을 ‘보충’해주는 현금 복지이므로, 기초연금이 올라 ‘소득’이 늘면 이를 생계급여에서 깎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보충성 원리는 절대 원칙이 아니다. 양육수당, 장애인연금, 중·고·대학생 장학금, 국가유공자 수당 등은 가구 특성을 감안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지 않는다. 근로·사업소득도 노동 동기를 존중해 30%는 소득 산정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래서 빈곤 노인들과 일부 복지단체들은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의 소득인정액 항목에서 ‘기초연금’을 삭제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근로소득처럼) 기초연금에도 공제율을 도입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차상위계층 이상 노인들은 기초연금 인상 효과를 누린다. 이런 구조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기초연금 2만1000원 인상 효과조차 누릴 수 없다. 이번 개편으로 이 인상이 적용되는 하위 30% 노인 가운데 거의 3분의 1이, 금액이 올라봤자 다시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당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대상이다.
2014년 8월22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서 ‘빈곤 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초연금 인상으로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결론적으로 이번 기초연금 개편안은 ‘졸속’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연금개혁안은 수십 년을 내다보며 짜야 하는데, 여론 눈치를 보느라 향후 설계도조차 내놓지 못했다. 빈곤 노인을 집중 지원하자는 ‘하후’의 취지도 사실상 담겨 있지 않다.
내가 제안하는 개혁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득보장제도인 기초연금의 대상 선정 기준을 인구 비율이 아닌 기준중위소득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기초연금 대상 규모는 당분간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줄여가는 로드맵을 짜야 한다. 경제력 향상 정도를 감안해 대상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소득 최하위 노인의 기초연금은 최소 월 50만원은 되어야 ‘실질 인상’으로 불릴 수 있다. 넷째, 생계급여 수급 노인이 당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생계급여를 산정할 때 기초연금 일부액을 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정부가 내년 신설할 미래대응기금 규모가 162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는 초대형 재정이 투입되는 메가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민생복지는 현 정부 재정 운용에서 후순위로 보인다.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임에도 기초연금 보강에 너무 소극적이다. 앞으로 기초연금 지급 대상 조정으로 지출 증가를 완화하면서 빈곤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액은 대폭 올려가야 한다. 연금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도 이해관계자인 세대 간 계약인데, 정부가 기초연금 개혁을 주제로 공론장을 마련한 적이 있었는가. 이재명 정부가 어려운 구조개혁을 회피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