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호르몬 교란으로 임신조절 '미프진'…의료계는 기다렸다?

요약
  • 임신 초기 경구용 임신중절 약물인 미프진의 국내 도입 논의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다.
  •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간 관련 입법이 지연되어 왔으나, 법제처가 수입품목 허가가 모자보건법 위반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도입 절차가 본격화되고 있다.
  • 의료계는 안전하지 않은 해외 직구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프진 도입을 긍정적으로 기다려왔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에 복용해 임신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경구용 임신중절 약물이다. 과학동아 제공 미프진은 임신 초기에 복용해 임신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경구용 임신중절 약물이다. 과학동아 제공

7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정하게 미프진을 투약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국에서 미프진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9월 4일에는 약물 허용을 사실상 공식화하는 발언을 했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에 복용해 임신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경구용 임신중절 약물이다. 그런데 어떤 사연이 있길래 미프진은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이슈가 된 걸까. 과학기자가 이웃집 친구처럼 친근하게, 과학의 눈으로 짚어본다.

● 미프진, 호르몬 교란으로 임신을 조절한다.

미프진은 약물 ‘미페프리스톤’의 제품명이다. 경구용 임신중절 약물의 한 종류다. 임신 10주 내의 임신부가 이 약을 먹으면 임신을 인위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현재 현대약품이 미프진을 국내 도입하고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식약처가 미프진 도입을 허가하면 현대약품은 이 약을 ‘미프지미소’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이 제대로 일하지 못하도록 막는 화학물질이다. 프로게스테론은 수정란이 자궁벽(자궁 내막)에 잘 붙어 자라도록 자궁을 준비시킨다. 수정란이 자궁에 붙어 착상된 이후에는 자궁 근육 수축을 억제한다. 태아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프로게스테론 같은 호르몬은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해서 세포에게 ‘이런 일을 해라!’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그런데 미페프리스톤은 프로게스테론이 결합해야 하는 수용체에 미리 달라붙어서 프로게스테론이 붙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런 걸 ‘길항작용’이라고 부른다. 프로게스테론이 잘 작용하지 못하면 태아가 잘 붙어 임신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인 자궁벽의 환경이 변화한다. 임신에 따라 생겨난 조직들이 자궁벽에서 분리되면서 태아가 떨어져 나오게 된다.
미페프리스톤은 현재 전 세계 약 100개국에서 임신중지약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제공 미페프리스톤은 현재 전 세계 약 100개국에서 임신중지약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제공

● 미프진과 관련된 법적 문제, 7년 동안 미해결

미프진 도입은 단순히 약물을 국내에서 파는 일로 보기엔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먼저 낙태죄(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안에서 죽이거나 조산시킴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와 관련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7년 전인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에 있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임신중절한 여성, 그리고 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 ‘의사’에 관한 부분이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이날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재판관 4인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중략)…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중략)…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그 이유를 말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냈으니 2020년 12월 31일까지 더 나은 법을 입법하라고 했다. 그런데 2020년의 마지막 날까지도 임신중절과 관련된 새로운 법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간 여성이 자신의 결정으로 임신중절을 하는 행위, 그리고 의사가 임신중절을 돕는 행위는 합법도 아니고 위법도 아닌 애매한 회색지대에 있었다. 미프진을 도입하려고 해도 관련법이 없으니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역시나 낙태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엔 예외적으로 인공 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는 사유와 범위 등을 정리한 법이 있다. 이름은 모자보건법이다. 모자보건법에서는 임신 지속이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그리고 강간에 따른 임신이나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간 임신 등을 ‘사유가 있는 임신중절의 대상’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낙태죄가 폐지되면서 이런 사유가 아니더라도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본인의 의사만으로도 임신중절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임신중절이 가능한 기간을 임신 후 몇 주까지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낙태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할 건지, 의료인에게 임신중절 시술 거부권을 줄 것인지 등 중요한 논의가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7월 14일 있었던 국무회의에서 “정부에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프진을)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9월 4일 열린 시민단체 간담회에서는 “초기 2년은 병원 내 처방과 조제를 하고, 이후 병원 처방과 원외 약국 조제로 전환할 예정”이라 밝혔다. 약물 처방, 사용과 관련된 법적 논의가 어느 정도 해결돼 대통령이 약물 허용을 사실상 공식화했다고 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국무회의에서 미프진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미프진 도입을 위해 남은 과제들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7월 국무회의에서 미프진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미프진 도입을 위해 남은 과제들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는 법 개정 없이도 미프진 도입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식약처는 법제처에 모자보건법 개정 전에도 임신중지 약물의 수입품목 허가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랬더니 법제처가 8월 21일 “수입품목 허가를 모자보건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쉽게 말해 미프진을 도입해도 기존 법에 위배되지 않으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의료계는 미프진을 기다렸다?

미프진 도입이 국민의 건강권과 연결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프진이 한국에 정식으로 도입되지 못하는 사이, 일부 임신부들은 해외 직구 등을 통한 경로로 약물을 구해서 복용해 왔다. 위험한 일이다. 오정원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현재 인터넷에 올라온 병원 광고나 당사자들의 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때, 약물임신중지를 표방하며 처방되고 있는 약물은 미소프로스톨이나 메토트렉세이트”라고 했다.

오 교수는 이어 “메토트렉세이트는 일반적인 임신중지 목적으로는 과거에 일부 사용된 적이 있을 뿐,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지금은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 약”이라고 전했다. 골수, 심장, 혈액을 파괴하고 간, 신장 독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저용량만 섭취해서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는 드물지만, 반복해 먹거나 고용량을 복용할 경우 그 위험성은 커진다.

“수술보다 저렴한 비용 때문에, 혹은 수술이 두려워 피하고 싶을 때 선택하게 되지만 사실 이 약물은 임신중지를 목적으로 설계되거나 검증된 적이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약이 임신중지 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건강보험 급여 체계 안에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부작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 교수의 설명이다.
프로게스테론의 분비와 역할. 과학동아 제공 프로게스테론의 분비와 역할. 과학동아 제공

사실 의료계는 미프진 정식 도입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정확히는 ‘제대로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미프진 도입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학동아는 8월 5일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지영 건국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약물적 임신 중절은 적절한 대상에서 적절한 의료체계 안에서 시행될 경우 높은 성공률과 안전성을 보이는 치료 방법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활용된다”면서 “다만, 안전성은 약제 자체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진료체계와 사후관리 시스템이 함께 갖추어질 때 비로소 보장된다”고 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도 7월 입장문을 통해 “미프진 도입은 필요하다. 그런데 도입 이전에 제도적 안전장치를 꼭 만들어 둬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임신 몇 주차까지 처방 가능한지, 부작용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등이 정리된 표준 진료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제안하는 진료지침은 이렇다. “학회는 초음파 검사상 임신 63일 이상에서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투약 전 자궁 내 임신 여부 및 자궁 외 임신 배제를 확인할 것을 일관되게 권고해 왔다.” 또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 유효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부인과 병·의원 안에서 의사가 지켜보는 와중에 직접 투약하는 원칙을 만들고, 입원 또는 회복실 등 관찰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미프진은 심각한 합병증이 드문, 안전성이 입증된 임신중지 방법이다. 그런데도 낮은 확률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약을 먹어도 임신 조직이 깨끗하게 배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궁 외 임신의 경우엔 미프진이 잘 작용했는지 꼭 확인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들로 의사들은 미프진을 꼭 의사의 지도 아래에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눈앞에서 먹어야 하고, 먹고 난 뒤에는 사후검사를 통해 임신중지가 잘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재생산 건강권, 모두 누려야 할 권리

인권 분야에는 ‘성 및 재생산 건강에 대한 권리(재생산 건강권)’라는 개념이 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성과 임신, 출산, 피임, 양육 등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를 누릴 수 있는 기본적 인권이다.

재생산 건강권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자녀의 의미, 자녀 출산 여부, 자녀 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신체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하고,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받기 위해 필수적인 정보, 자원, 서비스에 대해 평생 접근할 수 있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성이거나 아주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많아도 재생산 건강권의 범위에 포함된다.

실제로 남성의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연구도 많다. 대표적인 게 남성 피임약 연구다. 오 교수는 “남성 피임법 역시 40년 넘게 주목받아 온 연구 분야”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사·이식형 호르몬 제제는 이미 여러 차례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 95%에 이르는 피임 효과가 확인되었지만, 어떤 개발 프로그램도 공식적인 규제기관 승인 절차를 완주하지 못해 지금까지 시판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피부에 바르는 형태의 제제가 가장 앞선 후보로 개발되고 있다. 정자 생성을 억제하면서도 정상적인 성기능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기관인 미국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NICHD)와 미국 비영리 생식건강 연구기관인 파퓰레이션 카운슬(Population Council) 공동연구팀이 이 연구의 대표주자다.
투명한 겔 형태의 남성 피임약 ‘NES/T 겔’. 약을 피부에 바르면, 흡수된 약물이 체내에서 정자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Population Council 제공 투명한 겔 형태의 남성 피임약 ‘NES/T 겔’. 약을 피부에 바르면, 흡수된 약물이 체내에서 정자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Population Council 제공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젤 형태의 남성 피임약 ‘NES/T 겔(gel)’은 고환의 테스토스테론 생산과 정자 생성 능력을 떨어뜨리는 화학물질, 네스토론이 들어 있는 젤이다. 사용 방법은 매일 젤을 어깨와 위팔 피부에 바르는 것이다. 그러면 고환 내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떨어져 임신이 어려워진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성호르몬에 교란을 일으켜 생식 활동에 개입하는 것이다.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떨어지면 성욕과 성기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연구팀은 테스토스테론을 따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젤에 네스토론과 테스토스테론을 함께 넣어서,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고환에서 정자를 생성하기에는 너무 낮고 성욕과 성기능을 유지하기에는 적정한 수준으로 맞춘 것이다.

NES/T 겔은 2018년 시작해 2024년까지 420쌍의 커플이 참여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2024년 공개된 임상시험 중간분석에 따르면 NES/T 겔을 최소 3주 이상 사용한 남성 222명 가운데 86%의 정자 농도가 1mL당 100만 개까지 억제됐다. 정액 1mL에 정자 1500만 개 이상 존재하는 정도가 정상이다.

2월 4일엔 파퓰레이션 카운슬과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 ‘콘트라라인’이 NES/T 겔의 전 세계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콘트라라인의 목표는 NES/T 겔을 남성을 위한 최초의 가역적 피임약으로 승인받는 것이다. 약국에서 남성 피임약을 만날 날도 머지않았다.

미프진부터 NES/T 겔까지 넓게 보면 재생산 건강권과 연관돼 있다. 오 교수는 “재생산 건강권과 관련해서는 한국에서 아직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지점이 꽤 많다”고 했다. 미프진 도입 이슈만 봐도 그렇다. 재생산 건강권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사람과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할 권리, 임신을 지속하기로 했을 때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출산할 권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미프진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오래 표류하면서 여성이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 즉 임신중지에 대한 선택을 제한받았던 것이다.

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프진은 임신중지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인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프진 도입이 사실상 방치돼 온 측면이 있습니다. 미프진 도입 외에도 남성 피임법과 여성 피임법의 부작용과 접근성을 바라보는 기준의 명확한 차이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떤 시선으로 다뤄 왔는가 하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야 합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10월호, [이웃집 과학기자와 함께 나누는 미프진에 관한 문답]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