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부친상 뒤 다시 번진 가족·비선 의혹…청와대 안팎 ‘성남·경기 인맥’에 촉각
이재명 대통령이 9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경황이 없어 제 명함을 챙기지 못했네요. 아버지를 편하게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추석 연휴였던 지난 9월 26일,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이 명함을 건네자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한 말이다. 김 실장의 부친 부고 소식이 알려진 건 이날 점심 무렵이다. 간접적이나마 주간경향의 확인 요청에 과거 ‘청와대 성남라인’으로 분류되었던 인사의 반응은 “사실이 아니다”였다. 그러나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부친 부고는 사실로 판명났다.
이날 빈소 앞 모니터엔 처음에 김 실장과 남편, 아들의 이름이 유족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오후 5시쯤 김 실장 가족 이름은 빠지고 상주인 남동생 가족만 표시됐다. 김 실장은 “제 이름은 없는데 혹시 사진이나 가족들 이름을 쓰진 않겠죠?”라고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장례식장 근조화환 가운데는 과거 김 실장에 대한 의혹 보도에 앞장섰던 채널A, TV조선 대표이사 명의로 보낸 화환이 눈에 띄었다.
김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멕시코 순방 길에 동행하기 위해 서울공항으로 향하던 중 부친의 위독 소식을 듣고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뒤 급히 차를 돌렸고, 다행히도 “임종을 지킬 수는 있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김 실장을 만난 정치권 인사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조금 말랐다. 이걸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싶다. 그래서 힘내라고 위로했다”고 했다.
만사현통 김현지? 부친상 이후도 계속되는 의혹
기자는 김 실장이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에 제1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불거졌던 ‘만사현통 김현지’ 논란에 대한 기사를 썼다. 총무비서관에서 부속실장으로 옮긴 게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당시 야권의 공세였다. 대통령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보좌해왔던 김 실장의 인적사항이 알려진 게 거의 없는 걸 두고 야권과 보수 유튜브 채널에서는 “김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대대적인 정치공세를 펴던 시점이다.
당시 기자는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이 대통령이 2018년 1월 김현지, 정진상, 김락중 등 측근 그룹의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야권과 보수 유튜버들이 제기하던 개인사나 과거 관련 의혹은 대부분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이었다.
부친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위키 사이트 등에서 공란으로 남겨졌던 김 실장의 가족관계 항목은 이제 다 채워졌다. 그럼에도 야권이나 보수 유튜브채널은 김 실장을 위시한 성남·경기라인이 이재명 정부 배후에 존재하는 국정농단 비선세력이라는 프레임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심지어 부친 장례식장 모니터 유족 명단에서 김 실장 가족이 빠진 것을 두고도 “김 실장 남편은 누구길래 갑자기 사라진 것이냐” 등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주간경향은 앞서의 기사에 남편 최모 씨의 인터뷰도 담고 있다. 현직 세무사인 최씨는 주간경향에 야권이나 보수유튜브 채널이 제기하는 의혹이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인 김현지 실장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언론보도 등을 취합하면 청와대 내 현직으로 거론되는 성남·경기라인은 모두 5명이다. 김 실장과 윤기천 총무비서관, 김용채 인사비서관, 김락중 국정과제비서관, 권순정 정무기획비서관이다. 여기에 ‘경기도 인연 및 법률 참모 그룹’으로 확장하면 전치영 민정비서관과 이태형 공직기강비서관, 이장형 법무비서관이 추가된다. 전 비서관은 이 대통령 형사사건 변호인 출신이고, 이태형 비서관은 경기도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사건 등 변호인 경력이 있다. 이장형 비서관도 이재명 대통령 형사사건 변호인 출신이다.
두 그룹을 합하면 8명이다. 여기에 행정관이나 행정요원 중 ‘경기도·성남 인연’을 찾으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성남·경기라인이라고 하지만 자기 측근들은 수석 자리를 안 주고 다 비서관만 줬다. 그 정도의 자리만 줘도 딱히 불만은 없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실무형이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특히 김승원·용혜인 인사 실패, 이어진 강훈식 비서실장의 사의 표명을 계기로 경기·성남라인이 또 부각됐다. 강 실장이 이들과 갈등 끝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강 실장과 성남·경기라인 중 어느 쪽이 두 사람 추천의 책임이 있느냐를 놓고 설왕설래도 이어졌다.
지난 9월 18일 봉지욱 전 뉴스타파 기자는 개인 방송과 SNS에 “청와대 내 BH 프린스가 있다. 인사가 만사”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언급한 BH프린스가 누구인지를 두고 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김용채 인사비서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봉 기자는 BH 프린스가 누구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강훈식 실장을 지목했다. 그런데 그에 앞서 기자가 들었던 이야기는 정반대였다.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온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강훈식 비서실장이 공소 취소 문제를 거론했다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봉 기자의 ‘BH 프린스’ 언급 사흘 뒤인 9월 21일 강 실장은 사표를 냈다.
박 연구위원은 이렇게 풀이했다.
“공식적인 인사위원장이기도 하지만 이번 인사는 강훈식 라인에서 한 것이다. 얼핏 이재명 성남라인이 천거한 것처럼 보이지만 포인트는 인사위원장을 맡았던 강훈식 쪽에서 정무라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과거에도 김현지의 역할은 인사 천거가 아니라 마지막에 최종 검증하는 역할이었다. 단적으로 이번 인사 실패에 대해 강훈식은 사의표명을 했지만 김현지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는가.”
그에 따르면 그렇다고 이른바 ‘성남·경기라인’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국회 인턴 보좌진으로 있다가 이재명 캠프에 결합한 김용채 인사비서관의 경우 선거과정에서 발휘한 성실성·헌신성이 눈에 띄어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성남라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편집자 주: 김용채 인사비서관은 1985년생, 전치영 민정비서관은 1983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비서관의 ‘일’이 민정라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인데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안 된다. 거기서 이재명 청와대 시스템의 문제가 나온다. 정치경력이 짧으니 성심성의껏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가 자기 라인에게만 디테일한 정보를 주겠다는 식이 된다. 권력투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흘러간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9월 27일 UN 총회와 멕시코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해 강훈식 비서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성남·경기라인만으로 국정 이끌 수 없는 이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만약 강훈식이 성남라인과 충돌했다면 그것은 사실상 이재명과 충돌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는 사실 광범위하다. 의외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정치 경험이 많으면 본인이 직접 컨택하지만 정치 경험이 짧으면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비선조직이 실세가 되는 경우는 정치 경험이 짧은 경우다. 당장 윤석열 정권의 경우 정치 경험이 짧으니 본인이 인사하기 어려운 부분의 틈새를 비집고 김건희 라인이 약진한 것이다. 그것과 비교해서 이재명은 비교적 정치 경험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본다.”
엄 소장도 실제 인사에서 성남·경기라인의 비중은 약할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처럼 그립감이 강하고 본인이 직접 만기친람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그 밑의 사람에게 권한을 안 준다. 강훈식이 충돌했다면 형식적으로는 성남라인이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이재명이라고 봐야 한다. 강훈식의 캐릭터상 ‘공소취소’를 건들진 않았을 것이고 했다면 인사문제였을 것이다. 인사 문제는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데, 국민이나 당 입장에선 김현지를 내보내면 가장 좋다. 그런데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건 결국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자인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던 엄 소장은 봉 기자가 제기한 ‘인사 개입’ 문제와 관련해서도 실상은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사위원장이 인사를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이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업 인사다. 대통령 인사로 나오지만 거기에 ‘민원’을 끼워넣는 것이다. 그런데 장관 인사는 그렇게 못 한다. 강 실장의 사의와 관련해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장관 인사에 대해 내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시했거나 과도하게 자기 사람을 썼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강 실장이 인사위원회에서 과도하게 쓴 것 같진 않다. 모든 인사가 지연됐고 당에서 추천한 사람은 거의 안 썼다. 몇 사람 챙겼을 수는 있지만 이재명 심기를 건드릴 정도는 아니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이른바 청와대 안팎의 ‘경기·성남라인’이 실세 그룹으로서 이 대통령의 인사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존재할 것으로 봤다.
“정권마다 공식 조직 바깥에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비공식 라인은 존재해왔다. 중요한 것은 비선의 존재 자체보다 대통령이 얼마나 의존하느냐다. 박근혜·윤석열 정부처럼 비선의 영향력이 커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비공식 조언 그룹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유형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김현지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을 오래 알고 성향을 가장 잘 파악하는 측근이지만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실제 운신 폭은 오히려 좁을 수 있다고 봤다. 오히려 김현지 이외에 대통령에게 접근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비공식 인맥이 있을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정진상과 김용이 대표적이다. 김현지는 청와대에 있지만 정진상은 말은 많이 나오는데 어떤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꽁꽁 숨어 있을수록 뭔가를 한다는 증거 아니겠나.”
앞서 주간경향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 실장은 1998년부터,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은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이재명 측근 그룹에 합류했다. 정 전 실장은 대장동·위례·백현동 개발 및 성남FC 관련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취임 후 중단됐지만 정 전 실장에 대한 심리는 분리돼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공판에서는 구속 기간 만료로 풀려난 핵심 증인 유동규가 불출석해 법원이 구인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9월 대장동 민간업자 항소심에도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확증편향·방어기제로 정권은 망가진다
“정권 운영에서 비선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잘 쓰면 약이지만 못 쓰면 독이 된다는 점이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가 보기에 이른바 성남라인의 가장 큰 문제는 그 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워낙 그 라인으로만 움직이다 보니 공식라인의 선이라는 절차는 밟지만, 폭이 좁다 보니 닫혀 있다고나 할까 위축된 모양새다. 당도 마찬가지다. 정청래의 자기정치를 극복하겠다고 들어온 게 김민석 체제인데 당·청 일체만 이야기하다 보니 커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실패한 인사를 두고 ‘보면 볼수록 잘된 인사’라고 발언한 건 김민석 대표도 ‘아차’ 싶었을 것이다. 굳이 레드팀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에게 ‘아니요(NO)’라고 할 수 있는 정치와 문화가 여당에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전부 다 못 하고 있다. 이것은 위험신호라고 본다.”
그는 집권 세력이 망가지는 것이 확증편향과 방어기제 때문인데, 지금은 방어기제가 너무 센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덧붙였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정치평론가들은 모두 앞으로도 상당 기간 김현지가 청와대에서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이재명 대통령 스타일상 김현지가 빠지는 것이 큰 구멍이자 진짜 레임덕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당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과도한 정치 공세를 벌인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기 때문에 여당에서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하지 않나. 아마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정청래 쪽이든 누구든.”
그는 이 대통령 스스로 국정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적 쇄신과 정책 쇄신 그리고 대통령 태도 변화인데 이것 없이 지지율 반등은 상당히 어렵다. 유시민이 비판하거나 김어준이 ‘SNS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니 자제하는 듯하다가 더 하지 않나. 당에서 다른 축으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당·청 관계는 여전히 불균형하다. 어쩌면 쇄신과 태도 변화가 가능한 게 지금이 마지막 시간이지 않나 싶다. 쇄신에 실패하면 또다시 추락의 날개를 달면서 회복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누구를 새 비서실장에 앉히느냐, 중폭 개각에 누구를 등용할 것이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