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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는 왜 ‘암살자(들)’을 만들었을까[편집실에서]

요약
  •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모티브로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 가능성을 암시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 정황증거에 기반한 음모론적 전개와 실존 인물을 적극 차용한 점이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영화 &lt;암살자(들)&gt;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28일 한 시민이 서울의 한 극장에 걸린 영화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28일 한 시민이 서울의 한 극장에 걸린 영화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문재원 기자

1998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감독 허진호의 이력을 살폈다. 신인이라는데,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적이 놀랐다. 감정의 결을 서서히 쌓아가는 세심한 연출, 죽음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일견 느긋한 응시는 놀라웠다. 개인적으론 다림(심은하 분)이 함께 걷던 정원(한석규 분)의 팔짱을 은근슬쩍 끼는 장면을 지금도 좋아한다. 두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재주에 놀랐다.

나는 허진호 감독이 일본의 거장 오스 야스지로 같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도 막판 응축된 감정을 뽑아내는 솜씨가 그랬다.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이 생각은 더 굳어졌던 것 같다. 사랑을 다 알아버린 듯한 이혼녀 은수(이영애 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상우(유지태 분)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이 영화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몇몇 인상적 대사로 각자의 서늘한 기억을 건드린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사랑이라 말하는 것들의 맨얼굴”이라는 글을 블로그에 썼다.

그러나 그 뒤 허진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예상보다 변화무쌍했다. <외출>은 심심한 멜로로 기억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보통의 가족>은 잘 만든 상업영화지만, 허진호답지 않은 격정이 보였다. <덕혜옹주>는 신파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필모 중 가장 이질적이었다.

추석에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시끄럽다. 이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수사 당국은 북한 당국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지령을 받은 문세광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영화는 공범이 있으며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박정희 정권의 위기 탈출을 위한 자작극 가능성을 암시하는데, 보수층은 역사 왜곡, 명예훼손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추석 연휴 직후 이 영화를 봤다. 영화로만 본다면 볼 만한 정치 스릴러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느슨해지지만 배우들의 힘과 적절히 사용된 음악이 극을 끌어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당시 시대상도 흥미로웠다. 주로 멜로나 잔잔한 드라마로 필모그래피를 채웠던 감독으로서도 새로운 시도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영화 마니아로서의 코멘트다.

다만 매일 뉴스를 다루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논쟁 지점이 보였다. 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암살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역사를 완전히 뒤집는 이 정도 설정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논리와 근거가 훨씬 촘촘했어야 한다. 몇가지 정황증거만 가지고 몇사람이 추리하듯 음모론으로 직진하는 것은 덜컹거리는 느낌을 줬다. 역사학자 심용환은 “왜 박정희가 자기 아내를 죽여야만 했는지, 그것이 한·일 유착관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전혀 논리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했지만, 영화는 당시의 사건과 인물들을 적극 활용했고, 마지막엔 실제 인물들의 후일담까지 자막으로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고 하기엔 현실의 역사를 꽤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차라리 기본 뼈대만 가져오고 시대 배경과 인물, 사건의 주변부를 좀더 과감하게 가공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왜곡 논쟁에 덜 시달렸을 것이고, 관객 역시 이 영화를 온전히 정치 스릴러로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감독의 오랜 팬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 마니아로서 현재의 논란이 안타까워 한 말이다.

이용욱 편집장 이용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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