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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도 이젠 ‘리필 시대’

요약
  • 최근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장기 치료와 비급여 진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보험시장에 보장 한도를 다시 채워주는 '리필형' 또는 '리셋형' 건강보험이 등장하고 있다.
  • 리필형 보험은 한 번 사용한 보장 한도를 일정 조건에 따라 다시 채워주어 장기 치료에 대비할 수 있지만, 상품별 복원 조건과 갱신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지난 8월 처음 방송한 SBS ‘내 남은 연애’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나 생사를 오가는 투병 경험이 있는 2030 청춘 8명이 다시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다. 출연자는 저마다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에 암 진단을 받고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시간을 담담히 고백했다.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이 투병 자체보다는, 그 시간을 지나온 청춘이 삶과 사랑을 다시 선택해가는 과정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건강은 나이순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일깨운다. 아직 사회생활이 한창인 20~30대에게도 중증질환은 찾아올 수 있고, 병을 이겨내는 과정 역시 생각보다 길 수 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3.7%에 달한다. 암 환자 10명 중 7명이 5년을 넘겨 생존한다는 뜻이다. 반면 암이 멀리 퍼진 상태에서 발견된 환자의 생존율은 27.8%에 그쳐, 진단 이후에도 길고 반복되는 치료가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그래픽=정수경 기자 특히 치료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술을 받고 퇴원하면 치료가 끝나는 경우를 쉽게 떠올렸지만, 지금은 질환에 따라 수술 이후 약물치료와 방사선치료 등을 이어가거나 여러 치료법을 장기간 병행하기도 한다. 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가 다양해졌지만, 그만큼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꼼꼼히 고려해야 할 상황도 많아졌다.

비급여 치료비도 그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25년 비급여 진료비용 조사에 따르면 전년과 비교할 수 있는 571개 공통 항목 가운데 64.3%의 평균 가격이 인상됐고, 의료기관 간 가격 차이가 커진 항목도 48.7%에 달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질적으로 가격이 내린 항목이 더 많다는 설명도 함께 나왔지만,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는가에 따라 부담이 달라지는 구조 자체는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만큼, 치료 과정에서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영역이다. “암에 걸리면 얼마를 받나”를 넘어 “치료 과정에서 실제로 얼마를 받을 수 있나”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 이유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험시장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보험금으로 사용한 보장 한도를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채워주거나, 한도를 소진한 뒤 새로운 보장 한도를 부여하는 건강보험이 등장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리필형’ 또는 ‘리셋형’이라고 부른다.

이를 지갑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특정 질환의 치료비로 사용할 수 있는 한도가 1억원이라고 하자. 치료를 받고 30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면 지갑에는 7000만원이 남는다. 이후 추가 치료로 2000만원을 받으면 남은 금액은 5000만원이 된다. 그런데 약관에서 정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 지갑을 다시 1억원으로 채워주는 것이 리필형 보험의 기본적인 개념이다. 핵심은 보험금이 더 많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보장 한도를 한 번 쓰고 끝내지 않고, 조건을 충족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다만 모든 상품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품은 소진된 한도를 일정 기간 뒤 다시 채워주고, 어떤 상품은 아예 새로운 보장 기간을 시작하며 한도를 새로 부여한다. 치료비가 아니라 사망보장처럼 다른 보장을 복원해주는 상품도 있다. 이름은 비슷해도 무엇이 복원되는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복원되는지는 상품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가입 전 확인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보험가입금액이 10억원이라 해도 치료를 받으면 10억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는 뜻이 아니다. 치료 종류에 따라 1회 지급금액이 다르고, 연간 지급횟수나 누적 한도가 별도로 설정돼 있을 수 있다. 가입할 때는 최대 보장금액보다 치료별 실제 지급금액과 지급횟수, 연간 한도, 전체 누적 한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흥국화재의 ‘플래티넘건강리셋월렛’은 최대 10억 한도로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 등 3대 중증질환과 입원·간병비를 치료당 반복 지급하는 개념이다. 잔액이 남아 있으면 20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때 보장 한도가 다시 최초 가입금액 수준으로 채워진다.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의 리필형 상품은 암, 뇌, 심장 질환 등의 치료비를 연간 최대 1억원, 10년간 총 10억원 한도로 지급하고, 10년이 지나면 이전의 보장 금액과 상관없이 보장 한도를 기존 가입금액대로 채워준다.

또 갱신형 특약인지,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내고 평생 보장을 유지하는 비갱신형 특약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만일 갱신형 특약이라면 갱신 때마다 연령과 위험률 변동에 따라 보험료가 재산정되기 때문에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뜻이다. 비갱신형이라면 한도 리셋과 무관하게 납입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내고 만기까지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럼 기존에 가입한 보험은 쓸모없어진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지는 않다. 진단비는 약관에 나온 질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치료의 방법이나 치료받는 병원에 상관없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치료가 길어지면 한 번 받은 진단비가 모두 소진될 수 있다. 반면 치료비 보장은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초점을 맞춘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등 약관에서 정한 치료를 받을 때마다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리필 또는 리셋이라는 개념이 더해지면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한 번 치료하면 끝나는 보장’이 아니라 ‘치료를 받은 뒤에도 미래의 치료를 위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보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 보험을 무조건 해지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이미 충분한 암 진단비나 수술비, 치료비를 갖고 있다면 새로운 리필형 보험은 기존 보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이면 충분할 수 있다.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면 새로운 계약의 고지의무와 가입심사, 면책·감액기간 등을 다시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리필형 보험을 고를 때 봐야 할 것은 ‘얼마나 큰 한도’가 아니라 ‘그 한도를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실제로 쓸 수 있는가’다. ‘내 남은 연애’ 출연자의 이야기가 보여주듯, 중증질환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고 그 치료의 시간도 예측하기 어렵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가입할 때 얼마를 보장받느냐 만이 아니라, 보험금을 받은 뒤 남은 보장이 어떻게 되는지, 시간이 흐른 뒤 그 보장이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지까지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홍승희 머니랜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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