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동 5-1호분 부장품 노출 상황. 오른쪽 하단에 토제방울이 있다.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제공2018년 경남 고령 지산동 대가야의 ‘왕들의 무덤’ 지역의 어린아이 무덤에서 흙으로 잘 빚어진 구슬이 발견됐다. 그 방울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관가야 건국 신화인 구지가와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방울 속 그림이 '구지봉 건국신화'?
지산동 5-1호분 출토 방울과 방울에 그려진 그림. 문화유산청 제공크기가 5cm 남짓한 흙으로 구워서 만든 방울의 표면에 6가지 주제의 그림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방울은 아주 센 불에 구운 것이 아니어서 불완전 연소로 시커멓게 된 부분도 많다. 게다가 부분적으로는 돋보기로 보아야 확인될 정도로 추상화된 선각(線刻) 그림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이 유물의 발굴기관인 대동문화유산연구원은 구지가를 표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토제방울에는 △설화에 등장하는 구지봉 혹은 가야산 상아덤 산봉우리로 짐작되거나 남성 성기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그림 △거북 등껍데기 △관을 쓴 남자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자루가 표현되어 있다. 두 팔을 벌리고 춤추는 인물은 머리에 관을 쓴 모습인데, 가야고분에서 발굴된 관식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구지가 속 구간(九干)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은 등껍데기 문양과 머리, 다리가 표현된 거북 형태의 그림이다. 이 거북등 그림이 확실한 실마리가 되어 방울의 다른 그림들과 함께 구지가의 장면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여섯 주제로 나누어 그렸을까. 구지봉의 상자 속에 든 황금알이 여섯이고, 고대 역사 기록상 가야도 역시 여섯이다. 결국 이 그림이 금관가야 설화이든 또는 불교적 색채가 새롭게 가미된 대가야의 설화이든 간에 모두 천신족(天神族)이 내려온 것을 강조한다. 숫자 ‘6’은 불교나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교에서 상징하듯이 동서남북과 하늘과 땅, 즉 온 세상 또는 온갖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가야인들의 세계관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는 셈이다.
왜 어린이 무덤에서 나왔을까
발견된 치아로 추정한 무덤 주인공의 나이는 4, 5세이다. 건국신화라는 국가적·통치적 서사가 어린아이의 무덤 부장품, 그것도 주술적·장난감적 성격을 모두 지닌 '토제방울'에 담겨 있었던 셈이다. 이는 당시 대가야 사람들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관념과 이와 관련된 주제의 교육적 기대에 대한 중요한 암시를 던진다. 건국신화는 지배층만의 전유물이나 국가 공식 의례에서만 소비되는 엄숙하고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가 가지고 놀거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묻어준 소형 의례품(방울)에 건국신화가 각인됐다는 건 건국 설화가 당시 사람들의 일상적·문화적 삶과 의식 깊숙이 침투해 있던 ‘공유 지식’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아이 무덤에서 나온 흙방울이 고고학자에게 던지는 숙제는 당시 가야 사회의 정신과 무형적 유산을 재구성하는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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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