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30분간 '깜짝' 정상회담…李, 안보 현안 고위급 협의 제안
트럼프-김정은 회동 가능성도…"만남 이상의 성과 내기 어려울 것"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계기로 북·미 대화와 핵잠수함, 조선업 등 한미 간 주요 현안에 다시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밝힌 데 이어 한미 정상도 미국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역할을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동시에 핵잠수함 연료와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전시작전권 전환, 조선업 협력 등 그동안 진전이 더뎠던 현안의 후속 협의도 재개하기로 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9월22일(현지시간) 뉴욕 한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FP 연합트럼프 "김정은은 내 친구"…대화 문 열리나
여기에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뉴욕에서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는 최근 북한을 향한 공개 메시지 수위를 낮추며 김정은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트럼프는 9월2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은 내 친구"라며 북한이 상당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김정은은 괜찮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백악관도 트럼프가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트럼프는 9월22일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거듭 밝혔다. 위성락 청와대 안보실장은 두 정상이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긴밀하게 소통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비공식적인 연결고리로 데니스 로드맨도 다시 등장했다. 뉴욕포스트는 로드맨이 10월초 트럼프의 중간선거 유세에 동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하면서, 트럼프 측 인사와 로드맨 사이에 대북 대화 가능성을 둘러싼 접촉이 있다고 전했다. 로드맨은 2013~17년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김정은과 친분을 쌓은 인물이다.
다만 미국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과 실제 협상 재개를 구분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최근 보도에서 미국이 최근 대북 메시지에서 '비핵화' 표현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나 미국의 대북 정책 전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고 있지만,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미국의 인정과 '적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양측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9월28일 유엔총회에서도 핵 억제력을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강조하며 국제 무대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조선반도 지역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안전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가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갖고 있으며 적대 세력들의 무력 사용 의지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AP통신은 김선경 외무성 부상의 연설을 북한의 통상적인 대미 위협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연설이라고 평가하면서 직접적인 위협은 담기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더더욱 11월 APEC이 중요한 외교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이를 계기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 대화에 응할지는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
조선업은 '투자' 넘어 '군함 건조' 가능성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변화는 교착됐던 한미 안보 현안의 재가동이다. 9월22일 정상회담은 대미 투자 협의가 막판에 진전되면서 성사된 '깜짝 회담'이었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약 3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 연료 문제와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전시작전권 전환, 조선업 협력 등을 논의하고 후속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특히 핵잠수함과 원자력 협력은 지난해 합의 이후에도 구체적인 후속 협의가 더디게 진행된 사안이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관련 논의를 다시 가속화하기로 했다. 전작권 전환 문제도 처음으로 정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고위급 협의를 제안하고 한국이 관련 조건을 충족하면서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전환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조선업 협력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가장 구체적인 사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주목되는 분야다. 한국은 지난해 한미 간 투자 합의에 따라 미국에 총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이 가운데 1500억 달러가 조선업 협력에 배정됐다. 지난 7월에는 한미 조선협력센터가 워싱턴에서 출범하며 미국 내 투자와 선박 건조, 기술 협력 등을 위한 실무 기반도 마련됐다.
미 현지에서도 한국 조선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 해군연구소는 최근 미국의 차기 호위함 사업에서 한국의 충남급 호위함 설계가 일본, 튀르키예와 함께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자국 조선업의 생산능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의 설계와 조선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 해군 조선업이 인력·인프라·공급망·조달 과정의 제약으로 필요한 속도와 규모의 선박을 건조하기 어렵다며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과의 협력이 이러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달에도 미국의 국가안보 예외 조항을 활용해 해외 함정 설계와 해외 조선소 건조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한화의 필라델피아 조선소가 미국 군함 건조에 참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결국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대미 투자 합의를 계기로 그동안 막혀 있던 안보·경제 현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미 대화는 미국이 공개적으로 먼저 대화 의지를 재확인한 가운데 북한의 호응 여부를 지켜보는 국면이다.
11월 APEC까지 남은 기간 동안 북한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고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화답하느냐가 향후 북·미 관계의 향방을 가를 변수다. 동시에 핵잠수함과 조선업 협력이 실제 사업으로 얼마나 구체화될지도 이번 정상회담의 후속 성과를 가늠할 주요 지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