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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난 은퇴해도 이 집 팔 생각 없어”…정해진 ‘노년 공식’ 거부하는 5060 [Book]

요약
  • 정년을 앞둔 1964~1974년생 중장년층 954만명을 '거부세대'로 정의한 책이 출간됐다.
  • 이들은 직함, 은퇴, 상속, 노년 전용 상품 등 남이 규정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주체적인 후반생을 개척해 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정년 앞둔 중장년층 954만명
남이 규정한 노년의삶 선긋고
직함·은퇴·상속 공식도 거부
세대 경계 허문 상품에 열광

 이미지=AI생성 이미지=AI생성세대론은 한 시대를 설명하고 싶은 욕망에서 온다. 세대론은 사람에게 붙이는 정의가 아니라, 시대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한 시대를 관통한 사람들의 공통된 감각을 읽으면서, 그 이름을 빌려, 우리 자신의 초상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세대를 정의하는 일은 늘 어렵다. 어떤 한 세대란, 삼라만상의 세계에서 수많은 예외를 지운 뒤에 건질 수 있는 이름이어서다. 한 세대가 걸어온 길과 현재의 삶은 ‘시대의 징후’로 읽히기에 우리는 늘 세대론을 거울 삼아 자신을 규정하고 미래를 살피려 한다.

1964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이제 막 정년의 문을 통과하고 있는 954만명을 ‘거부세대’로 정의하는 책이 출간됐다. 왜 하필 ‘거부’일까.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저자 이동우가 바라보는 현대 한국 사회의 1964~1974년생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

“고도성장의 마지막 목격자이자 외환위기의 첫 번째 구조조정 대상자였고,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기를 기대하지 않는 첫 번째 세대이며, 종이 신문으로 세상을 배웠지만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디지털 정착민. 두 번의 국가적 경제위기와 한 번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시스템이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각자의 계산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세대.”

저자는 이들의 삶에서 ‘거부’라는 단어를 발견해낸다. 앞선 세대가 살아온 ‘삶의 각본’에 서명하지 않는 사람들. 이유는 뭘까.

넷플릭스 드라마 ‘김부장’, 소설을 원작 삼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열풍이 먼저 논의된다. 가장 흔한 성씨인 김씨‘들’과, 이들 세대에 부여됐던 보편적 직함인 부장‘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증거가 바로 저 두 명의 김부장이다. 이들은 한때 찬란했으나, 이제는 현재를 묵묵히 살아간다. 화면 속 ‘김부장(들)’에게 시청자는 자기 자신을 투사하고, 자신에게도 혹시 숨겨져 있을지 모를 힘을 발견하려 한다.

왜 그런가. 자신의 정체성과 같던 직함이 사라지고 월급이 끊기는 순간, 이 시대의 김부장들은 정체성을 삭제당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명함은 이름 석 자 위에 회사 로고가 박힌 작은 종잇장이 아니었다. 그건 규격화된 정체성의 강력한 증거물이었다. 김부장 신드롬 뒤에는 정년의 문턱을 넘고 있는 954만명이 겪는 불안감, 즉 ‘직함 이후의 시대’로 건너가는 한 세대의 심리가 반영된다고 책은 쓴다.

그런데 이들은 명함에 적힌 직함에만 기대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는 게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다. 후반생의 삶을 스스로 다시 명명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걸 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책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 장명숙 씨 등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낸 인물에게 주목한다. 그들은 직함이 아닌 이름 위에 선 이들이다. 구독자들이 이들에게 열광한 이유도 그들이 “어느 회사의 누구”로 호명되는 삶을 살지 않아서다.

거부세대가 두 번째로 거부하는 대상은 상품과 소비의 영역에서 발생 중이다. 거부세대는 자신을 늙었다고 규정해버리는 물건을 결코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다.

‘노인 전용’ 제품은 실패한다. 늙음을 규정하는 물건엔 지갑을 열지 않으니 그런 상품은 재고만 쌓인다. 상품기획서의 주요 타깃란에는 ‘65세 이상’이라고 적더라도, 광고 문구에서 그들의 나이를 규정하는 숫자나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야 한다.

에어팟 프로2가 그런 사례다. 몇 해 전 식품의약국(FDA)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보청기 기능을 갖게 한 에어팟 프로2의 기능을 승인했다. 이때 애플의 발표에는 ‘시니어’란 단어가 없었다. 보청기는 나이 듦의 증거처럼 인식되고, 보청기 사용자는 노인이란 낙인으로 이어진다. 난청 진단을 받고도 보청기를 착용하기까지 9년이 걸린다는 통계는 낙인을 향한 거부감과 유관하다. 에어팟 프로2는 더 좋은 보청기를 만든 게 아니라, 가장 힙한 물건 속에 보청기란 단어를 잠적시켰다고 책은 말한다.

거부세대의 지갑을 열기 위해선 ‘공간의 나이’까지도 희석해야 한다. 노인의 공간으로 인식되면 이들은 그곳을 찾지 않는다. 저자는 성공적인 사례로 일본 서점 쓰타야 다이칸야마 T-SITE를 거론한다.

이 서점은 ‘60대의 취향’으로 지어졌지만, 젊은이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노인이 섞여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밀도”를 만들어냈다. 세대별 계층의 장벽을 한 공간에서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특히 이 공간은 ‘아침 7시 개점’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도쿄의 상점은 대개 11시에 문을 연다. 그러나 아침잠 없는 은퇴자들은 이곳에 가서 하루를 시작한다. 인구 피라미드에서 가장 두텁고, 저축으로 가장 부유하며, 시간적으로도 가장 여유로운 집단을 불러들인 것.

저자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지만 이직 시장으로 걸어 나오는 ‘은퇴의 거부’, 10명 중 9명이 지금 사는 집에서 늙겠다고 답하는 식의 ‘이동의 거부’, 물려주기 위해 궁핍한 노후를 사는 삶을 거부하는 ‘상속의 거부’를 키워드로 거부세대의 여섯 가지 속성을 정의한다.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늙음이 아니라, 남이 설계한 노년이다. “내 인생의 사양(仕樣)은 내가 정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문장의 밀도가 높고 통찰과 사유의 폭이 넓어 읽는 맛이 상당하다.

이동우 지음, 매경출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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