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시절부터 이어진 이재명의 ‘직접 소통’
“유인물 백만 장 뿌린다고 생각하고 해”
“집집마다 찾아가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9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수석 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김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지난해 9월 야권이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향해 던진 질문이다.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 공방이 이어지면서 그의 학력과 경력,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랜 관계를 둘러싼 각종 주장도 쏟아졌다.
주간경향은 당시 김 실장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2018년 1월 30일 작성된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시기, 오랫동안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이 시장의 과거와 인간적 면모를 이야기한 녹취다. 김현지 당시 성남시 관계자와 정진상 당시 정책비서관, 김락중 비서관, 이영진 성남문화재단 관계자, 이우종 당시 경기아트센터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주간경향은 이 녹취록에서 김현지 부속실장의 발언을 중심으로 세 차례에 걸쳐 이재명 대통령과 과거 인연, 그가 바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스타일, 성남 시민운동의 기억 등을 소개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알고리즘 감옥에 갇혀 있다.”
김어준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대표는 지난 9월 28일 방송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정치인을 알고리즘 감옥에 가둬버리는 온라인 작업이 고도화됐다”며 “현재 주요 정치인 대부분이 타깃이 돼 있는데 이 대통령이 가장 심각하다”며 이 대통령에게 리트윗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9월 30일 “SNS는 저와 국민과의 직접 소통 통로”라며 “어려울수록, 왜곡된 공격이 심할수록 더욱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국민들께 기대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SNS를 통한 직접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이 대통령이 10월 1일 지지자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많이들 함께해주세요. 좌아하게 말입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너 유인물 뿌릴 때 기억 안 나?”
김 실장의 녹취록에 소개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다. 김 실장이 이 대통령에게 SNS를 조금 적당히 하라고 했을 때 돌아온 말이라고 했다. 당시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때였다.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이 SNS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고 생각했다.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조금 줄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이 대통령은 휴대전화도, SNS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보다 낫잖아. 유인물 백만 장 뿌린다고 생각하고 해.” 이 대통령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 성남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집집마다 유인물을 돌렸던 때를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김 실장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딱 그 한마디 하시는데 그다음에는 말을 못 하겠더라구요.”
이 대통령에게 SNS는 새롭게 익힌 정치 홍보 수단이라기보다 과거 성남지역 시민운동에서 직접 유인물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리던 방식이 형태만 바뀐 것이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려 했던 방식이 종이 유인물에서 SNS로 옮겨간 셈이다.
김 실장이 기억하는 이 대통령의 ‘직접 소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간경향은 ‘김현지 녹취록①’에서 김 실장이 1998년 성남시민모임 실무간사로 일하면서 이재명 당시 변호사를 처음 만난 과정을 보도했다. 김 실장은 당시 이 대통령이 단체에 이름만 걸어놓고 법률자문을 해주는 변호사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변호사이시면서 시민단체인 성남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하고 계셨죠.”
대표는 지역 원로들이 맡았다. 김 실장의 표현으로 이 대통령은 “실질적인 실무를 다 하는” 집행위원장이었다. 김 실장의 기억에 특히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문제와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이다.
그리고 유인물이다. 이 대통령은 주말이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분당중앙공원에 나왔다. 아이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게 해놓고 유인물을 뿌렸다고 했다. “백궁·정자 때도 그렇고 시립병원 때도 그렇고요. 백궁·정자 때는 아들들이 어렸을 때거든요.”
김 실장은 당시 분위기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공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같은 동네 주민이었다. 아이들의 학교 학부모나 친구 부모일 수도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변호사가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나와 지역 현안을 알리는 ‘지라시’를 돌린 것이다.
김 실장은 당시 이 대통령의 활동방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남 시민 인구수만큼 직접 유인물을 전달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시민운동을 하시는 스타일이었어요.” 유인물을 만드는 것부터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까지 직접 챙겼다.
“진짜 백궁·정자, 시립병원 유인물 뿌릴 때 정말 유인물 만들고 찍고 뿌리러 다니시면 저희는 그거 대기 바빴어요.”
성남에서만 돌린 것도 아니었다. 당시 중앙언론은 지역 시민운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SNS도 없었다. 김 실장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유인물을 들고 갔다고 했다. 지방으로 떠나는 버스 안에 유인물을 놓았다. 서울에서 출발한 유인물이 광주로 간다. 누군가 그것을 읽는다. 성남에 사는 지인에게 내용을 전한다. 그렇게라도 지역 현안을 입소문 내겠다는 발상이었다.
김 실장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쉬었다.
“제가 거기서 사무국장 계속했는데 지긋지긋합니다”
함께 있던 참석자들이 SNS라면 손가락만 움직여도 되니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하겠느냐는 라며 웃었다. 유인물 배포 방식도 거리 한복판에 테이블을 놓고 나눠주는 캠페인과 달랐다.
“집집마다 찾아가면서 설명하면서 유인물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당은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에는 퇴역 군인이나 공무원 출신이 많았다. 성남시민모임 활동가들이 외부인 신분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마이크를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녹취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과 활동가들은 한 단지씩 들어갔다. 몇 곳을 설득하면 다음 단지에서는 “옆 단지도 했다”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입주자대표를 만나고 부녀회를 설득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경로당에 찾아가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지역 현안을 설명했다.
당시 20대였던 김 실장은 그 뒤를 따라다녔다. 이 대통령이 앞에서 현안을 설명하면 이영진 당시 성남시민모임 관계자 등이 뒤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보충했다. 김 실장은 저녁마다 이들을 따라 아파트 단지와 상가를 돌았다.
“지금도 그 길을 다 외웁니다.”
입주자대표들을 만나는 방법 중 하나는 술이었다. “술 사준다고 모이라고 해서 모이면 또 그 앞에 호프집에서 모여가지고 설명회를 열었어요.” 하루에 이런 자리를 두 번씩 만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시민운동가들이 술을 샀다. 몇 차례 만나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러다가 나중에 입주자 대표님들이 ‘아, 내가 살게. 고생 많네’ 이렇게 된 거죠.”
“1대1로 설득 안 되면 그 회장님 타깃으로 해서 끝까지 설득해 가지고 만들고, 그다음 만들고···”
김 실장은 “하루 종일 밤새 일하는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렇게 만난 주민 중에는 정치 성향으로 보면 이 대통령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있었다. 김 실장은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들 가운데 퇴역 군인 출신으로 오랫동안 입주자 대표를 맡았던 주민들이 있다고 했다.
“성향은 자유한국당 찍는 분들인데 이재명한테 설득당해서 난생 처음으로 데모를 해보신 분들이에요.” 김 실장은 이들을 두고 “지금도 우리 쪽 지지 그룹”이라고 했다. 대통령 선거와 성남시장 선거에서 표를 달리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찍어도 시장님은 이재명 찍는 거예요”
녹취 참석자들은 당시 분당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지지를 얻기 어려웠다는 점을 거듭 이야기했다.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이 분당에서 민주당 계열 지지율을 끌어올린 배경에도 이런 ‘바닥 작업’이 있었다고 봤다.
김 실장은 지역 시민운동 시절 선배들에게서 배운 공통점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꼽으며, 자신의 아들을 언급했다. “제가 항상 우리 애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놀 때도 최선을 다해서 놀자. 뭐든지”
김 실장은 하나를 결정할 때 공부하고 사례를 찾고 토론하는 과정이 몸에 밴 선배들을 보면서 그런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김 실장은 남편 최모씨와의 결혼과 출산, 아들의 존재를 언급한다. 지난해 일부 보수 성향 유튜브와 온라인 공간에서는 김 실장의 아들이 이 대통령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퍼졌는데, 터무니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대 초반의 김현지가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도 녹취록에 담겼다. 그가 1998년 성남시민모임에 들어왔을 때 함께 활동하던 사람 중에는 현재 국민의힘 소속인 신상진 성남시장도 있었다. 당시 신 시장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활동했고 성남시민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신상진 시장과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한 뒤풀이 자리였다. 갓 들어온 ‘꼬마 간사’ 김현지에게 선배들이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김 실장은 “당신들은 꿈이 무엇이시냐”고 되물었다. “그때 신상진 국회의원(※편집자 주: 2018년 당시 국회의원, 현 성남시장)은 자기는 대통령이 꿈이라 그랬어요.”
그런데, 김 실장은 이 답에 적잖은 거리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성남으로 온 이유는 도시빈민운동과 지역주민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막상 성남시민모임에 들어와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시민단체의 모습과 다른 점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함께 시민운동을 하는 선배가 자신의 꿈을 ‘대통령’이라고 말한 것이다. “생각하는 바나 의미가, 이 사람들이 시민운동하고 있는 상황이 달랐다고 느꼈어요.”
후배 활동가인 자신이 생각했던 시민운동과 신상진이 생각했던 시민운동 사이에 거리가 있다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말을 이어가다 잠시 문장을 끝맺지 않았다. “대통령이 꿈인 사람하고 같이 할 생각이 그 당시에는··· 이미 정치를 꿈꾸고 있었던 거예요. 보면.”
신 시장도 최근 고성국TV에 출연해 자신이 김 실장을 알게 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주간경향은 신 시장이 “내 꿈은 대통령” 발언을 했는 지 확인하기 위해 신 시장 개인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냈으나, 기사 작성 시점까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뒤풀이에서 김 실장은 당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이재명 변호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재명 변호사가 20대 김현지에게 밝힌 자신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장’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