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오른쪽)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사진=연합뉴스][디지털데일리 김유진기자] 한미 관세 합의의 후속 조치인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의 윤곽이 마침내 드러났다. 양국이 2025년 관세 인하와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 합의한 지 약 1년 만이다.
대미투자 1호 사업으로는 미국 텍사스주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에도 큰 틀에서 합의했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은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국 간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투자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한미 간 입장 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 관세 합의에서 첫 투자사업 발표까지…대미투자 본궤도
한미 양국은 지난 1일 한미 전략투자 프로젝트로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 총 3개 사업의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5년 7월 양국이 큰 틀에서 관세 협상에 합의하고 같은 해 11월 체결한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이후 약 1년 만에 결실을 본 후속조치다.
지난해 7월 한국은 미국의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등을 25%에서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에 합의했다. 이 가운데 조선 분야에 1500억달러·전략적 투자에 2000억달러를 배정하기로 했다.
그해 11월에는 양국이 관세·안보 협상 내용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를 최종 확정하고 관세 합의와 대미투자 관련 MOU를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상업적 합리성 기준과 연 200억달러 투자 한도 등을 설정했다.
올해 3월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를 본회의를 통과하고 6월 시행되면서 사업 추진을 위한 국내 제도적 기반도 갖춰졌다. 이후 양국은 9월 말 세부 사업을 조율한 끝에 이번에 첫 프로젝트와 후속 협력 계획을 공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0월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 전력 수요 겨냥한 텍사스 발전소…한국 기업 참여 기회 확대
가장 먼저 추진이 확정된 사업은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지역에 AI 데이터센터용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프로젝트 스타'(Project Star)다. 총사업비는 223억달러며 발전 용량은 6472㎿ 규모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인근 데이터센터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2029년 1단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32년 전체 설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텍사스 지역 내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비롯해 예상 적정 전력가격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판단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글로벌 9위 부동산 개발업체 릴레이티드컴퍼니와 미국 1위 발전운영사 넥스트에라에너지가 주도한다. 천연가스 공급업체 루이스에너지그룹은 부지와 천연가스·용수 등 관련 기반시설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 범위를 넓히는 것도 주요 과제다. 양국은 발전 기자재부터 설계시공과 장기 운영·정비까지 사업 전반에 국내 기업이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미국 측은 터빈을 포함한 한국산 기자재가 향후 미국 내 다른 유사 사업에도 공급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 미국 원전 8기 건설 협력…한국형 원전 첫 미국 진출
'프로젝트 파워'(Project Power)로 명명된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위한 양국 협력 구상을 담았다.
한국형 APR1400 원전 2기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전 6기를 건설한다는 내용으로 최대 1200억달러 규모의 사업이다.
이번 협력에서 주목되는 점은 한국형 원전의 최초 미국 진출과 국내 기업의 시공·기자재 공급 참여다. APR1400 2기가 실제 건설로 이어지면 한국 원전 기술의 미국 시장 진출 첫 사례가 된다. AP1000 건설에도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계획이어서 원전 설계시공과 공급망 분야에서 협력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양국은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장기 제작 품목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국내 절차와 사업성 검토를 전제로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먼저 지급하는 방안도 협의했다. 향후 AP1000 원전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을 양국이 나누기 위해 한국 기업들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 역시 추진하기로 했으며 구체적인 투자 조건은 기업 간 협상을 통해 정할 예정이다.
다만 원전 8기 건설이 개별 사업별로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원전 프레임워크는 양국 간 협력의 기본 틀을 마련한 단계로 실제 건설을 위해서는 부지와 사업 구조·일정 등을 구체화하고 사업별 경제성 검토와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3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래스카 LNG 사업, 아직 '검토' 단계인데…한미 간 '엇박자'
세 번째 사업인 '프로젝트 노스'(Project North)는 알래스카 북부의 천연가스를 남부까지 운송하는 대규모 가스 파이프라인과 수출용 LNG 터미널을 건설하는 내용이다.
양국은 사업에 대한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다.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따져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사업이 실제로 추진되면 미국은 철강 등 사업에 필요한 한국산 기자재에 대한 관세 인하 혜택과 경제성 있는 조건의 장기 LNG 구매계약 그리고 한국의 알래스카 LNG 우선 접근권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 발표 과정에서 한미 간 입장 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9월30일(현지시간)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기정사실화 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투자 규모와 사업 참여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미국 측의 발표에 대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게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상업적 합리성이 없으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데에 한국과 미국이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미투자 안전장치 마련…원리금 회수 전까지 수익 배분 5대 5
정부는 사업 추진과 함께 투자금 회수와 국내 기업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한미 전략투자 프로젝트의 전체 투자 원리금을 한국이 회수할 때까지 개별 프로젝트의 수익 배분 비율을 양국 간 5대 5로 유지하기로 했다.
또한 전략투자 규모는 연간 200억달러, 총 2000억달러 한도로 운영계약에 명시하기로 했다. 프로젝트 사업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계획·예산·수익 배분 비율 등을 정부 간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개별 사업의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전체 투자금 회수 구조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려는 취지다.
김정관 장관은 "이번 한미 전략투자 프로젝트는 단순히 한미 관세 합의 이행을 넘어 AI·원전·LNG 등 미래 산업과 경제안보에 직결된 전략 분야에서 한미 양국의 강점을 결합해 함께 사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협력의 지평을 여는 것"이라며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겠다. 또 한미 전략투자가 우리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